풀소유의 상징이 된 버킨 백, 무소유로 떠난 제인 버킨

김의향 THE BOUTIQUE 기자 2023. 7. 2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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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Inside] Legendary Item ③ 에르메스 버킨백

에르메스 버킨 백은 어느새 여자들의 욕망이 됐다. ‘섹스 앤더 시티’의 한 에피소드에서 에르메스 버킨 백 웨이팅 기간이 5년이란 말에 안달복달하는 사만다에게 던지는 에르메스 매장 직원의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이건 백이 아니에요. 버킨이에요!” 아무나 차지할 수 없는 백. 그래서 백이 아닌 버킨 그 자체가 신분이자 지위가 된 세계 최고의 하이엔드 백! 그러나 정작 이 초고가의 백을 탄생하게 한 뮤즈이자 이름의 주인공인 프랑스의 여배우, 가수, 아티스트 제인 버킨은 버킨 백 하나 없이 자유롭고 가볍게, 지난 7월 16일에 7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스타그램@janebirkindaily

76세, 버킨 백 하나 없이 자유롭게 살다 떠난 제인 버킨

“그 가방이 제 이름으로 불러졌을 때 매우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요즘 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그 가방이 먼저 나와 조금 덜 기뻐요. 하지만 에르메스는 매년 제가 지정한 기부 단체에 일부 기부금을 전달하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해요.”

사람들은 제인 버킨 이름이 최고의 명품 백에 사용되는 만큼 로열티 수입만 해도 천문학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에르메스가 제인 버킨의 이름을 사용하는 로열티로 제공되는 연간 4만 달러는 그녀가 원하는 단체에 기부 되었다. 또한 제인 버킨이 소유한 버킨 백은 5개인데 자선 경매를 통해 기부됐고, 마지막에는 단 하나의 버킨 백도 소유하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버킨 백 컬렉터로 유명한 빅토리아 베컴은 2억 원을 호가하는 악어가죽 버킨을 비롯해 100여 개의 버킨백을 소유하고 있고, 카다시안 자매들의 어머니인 크리스 제너는 에르메스 매장보다 많은 버킨 백을, 카다시안 자매 중 한 명인 카일리 제너는 버킨 백 전용 룸을 따로 갖고 있다. 래퍼 카다비는 원하는 버킨 백을 차지하기 위해 전 세계 에르메스 매장 대부분을 뒤졌다고 말했다. 이들의 드레스 룸을 보면 버킨 백은 마치 승리의 면류관처럼 진열되어 있다. 버킨 백만을 위한 장식장을 따로 맞춤 주문하며, 정기적으로 가죽을 윤기 있게 닦고 여왕처럼 귀하게 모신다.

인스타그램@janebirkindaily

런던행 비행기에서 우연한 만남이 탄생시킨 버킨 백

에르메스 버킨 백의 탄생 스토리는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제인 버킨은 라탄 바스켓을 주로 들고 다녔다. 제인 버킨은 백이 아니라 바스켓이라 표현했고, 실제 가방보다는 바구니에 가까웠다. 당시 이 라탄 바스켓을 따로 물품 보관소에 보관하지 않으면 레스토랑 입장이 되지 않는다 하여, 이런 레스토랑은 들어가지 않겠다며 ‘쿨’하게 뒤돌아선 에피소드도 있다. 또한 라탄 바스켓에 언제나 많은 물건들을 꽉꽉 채워 들고 다녔는데, 덮개가 없어 바닥에 모든 물건을 엎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1984년 파리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탄 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어린 아이의 엄마였던 제인 버킨의 라탄 바스켓에서 아이 용품과 여러 물건들이 쏟아졌다. 옆자리에는 드라마처럼 우연하게 에르메스의 최고 경영자 장-루이 뒤마가 앉아 있었고, 그녀에게 포켓이 있는 백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제인 버킨은 ‘왜 켈리 백의 4배 크기로 열려 있는 가방을 만들지 않나요?’ 라고 반문했고, 장-루이 뒤마는 즉석에서 멀미용 봉투에 20세기 초 탄생한 에르메스 최초의 백 ‘오뜨 아 꾸르아(Haut à Courroies)’를 변형한 스케치를 그려 보여준다. 초고가 하이엔드 백의 첫 스케치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행기 멀미용 봉투에 그려졌다.

1984년 파리에서 런던행 비행기에 동승한 제인 버킨과 에르메스 최고 경영자 장-루이 뒤마의 우연한 만남에서 탄생한 '버킨 백'. / 에르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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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버킨이 버킨 백을 길들이는 법, 마구 밟고 구기기

제인 버킨은 자신을 위해 디자인되고 이름 지어진 버킨 백을 가장 자유롭게 소유하고 스타일링한 버킨 백의 진정한 소유자였다. 그녀가 공개한 버킨 백 길들이기 법은 처음에 모두를 경악게 했다. 수천만원 짜리 버킨 백을 바닥에 툭 던진 후 양 발로 마구 밟고, 양 손으로 힘주어 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찢어질 듯 많은 물건들을 쑤셔 담은 후 발 밑이나 땅바닥에 넘어질 듯 툭 던져 놓곤 했다. 그야말로 무심한듯 세련된 ‘프렌치 시크’ 애티튜드의 절정이었다. 워낙 백이 넘치도록 짐을 들고 다니는 스타일이라 버킨 백을 옆구리에 끼고 들고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초고가의 명품백을 장바구니 들고 다니듯 함부로 또는 편안하게 막 들고 바닥에 놓는 셀럽들의 백 애티튜드의 시작은 제인 버킨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제인 버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킨 백을 장식하곤 했다. 자신이 활동하거나 지지하는 사회단체, 또는 여행지에서 산 장식품 등을 주렁주렁 매달고 스티커를 붙이거나 백 안감에 빽빽하게 그래피티 낙서를 하기도 했다. 에르메스 시계를 손목에 차지 않고 버킨 백에 참(charm) 장식처럼 매달기도 했다. 제인 버킨은 명품 브랜드들의 백 참 장식이나 여러가지 패치워크 장식에 앞선 트렌드 리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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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ictoria & Albert Museum)에 전시됐던 제인 버킨이 소장했던 버킨 백. J. B 이니셜이 새겨져 있고 모서리가 다 닳은 채로 들고 다녔다. /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출처.

오래되고 낡아서 더 근사한 ‘웰 에이징 버킨 백 룩’의 아이콘

동시에 제인 버킨은 흐트러져서 더 근사한, 프렌치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 꾸미지 않은 듯 멋스러운 스타일)의 버킨 백 룩으로 그녀의 스타일 추종자들을 열광시켰다. 바닥에 끌리는 길고 통이 넓은 낡은 청바지와 역시 오래 입은 듯 늘어진 티셔츠에 낡은 컨버스 슈즈를 신고, 구김 가고, 오염 되고, 모서리가 닳은 버킨 백을 들고 다녔다. 백에 미세 주름 하나만 생겨도 기겁을 하는 요즘 명품 백 주인들과 너무나도 다르다. 세계 최고 하이엔드 백 이름의 주인공 다운 차원이 다른 패션 세계를 지닌, 영원히 오마주될 스타일의 창조자다. 나이 들어가는 대로, 오래 된 대로, 낡아 가는 대로 ‘웰 에이징 버킨 백 룩’을 보여주는 제인 버킨은 진정한 버킨 백의 주인이자 아이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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