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00이 아빤데, 나 변호사야”··· 학교의 법정화와 뒤틀린 교육열 속 멍드는 선생님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내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숨진 사건은 교육에 대한 관심이 큰 지역의 과밀학교에서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각종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고충이 극단적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사소한 갈등까지 학교폭력 사건으로 확대되고 학교가 법정처럼 이를 해결해야 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이 민원에 취약해졌고, 저연차 교사들이 구조적으로 ‘민원이 많은 지역’ 학교에 많이 배정받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교사노조가 21일 해당 초등학교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교사들의 증언을 종합해 공개한 내용을 보면, 이 학교에서 2020년 이후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했던 한 교사는 “학폭 사안을 처리할 때 한 학부모가 ‘나 OO이 아빠인데 나 뭐하는 사람인지 알지? 나 변호사야!’라고 말한 일이 있다”고 전했다. 이 학교는 서초구의 유명 신축 대단지 아파트 3곳에 둘러싸여 있고, 학급당 학생수가 30명을 넘어서는 과밀학교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징계 등을 학폭위에서 결정하는 시스템이 정착된 이후 특히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사소한 갈등까지 학폭 사안이 되면서 부모 간 법정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지역적 특성상 학부모 가운데 법조인이 많은 이 학교에서는 학폭 관련 민원이 유독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교사는 “이 학교의 민원 수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학교폭력 관련해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의 상당수는 법조인이었다”며 “학부모 민원이 너무 많아 대부분의 교사들이 근무를 어려워하는 학교”라고 말했다.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서울 초등교사들은 ‘강남권 학교’에 발령받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초등교사는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이 과도한 강남권이나 신도시 학교는 교사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지원청별 초등교사 전출입 현황을 보면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서 타 교육지원청으로 전출된 교사는 346명, 타 교육지원청에서 강남서초교육지원청으로 전입한 교사는 298명으로 전출이 전입보다 많았다.
빈 자리는 그 해에 신규임용된 초임교사들이 채우는 구조다. 경험이 많지 않은 낮은 연차의 교사들이 가장 어려운 자리로 내몰리는 셈이다. 이번에 숨진 교사도 2022년 3월 첫 부임지로 해당 학교에 발령받았는데, 이 학교에는 고인을 포함해 저경력 교사가 더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또다른 교사는 서울교사노조에 “2022년 3월부터 저경력교사 5명이 근무했다”며 “경력이 있는 나도 힘든데 저경력 교사가 근무하기에는 매우 힘든 학교였다”고 전했다. 이 교사는 “울면서 찾아온 후배교사에게는 위로를 해주고 도움을 준 적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해당 교사가 근무했던 학급에서 교사에게 심적인 부담감을 줬을 만한 사건들이 더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초등학교에 현재 근무하는 한 교사는 해당 교사의 학급에 공격적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어 고인이 매우 힘들어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서울교사노조를 통해 밝혔다. 고인의 학급에 “선생님 때문이야”라고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는 학생이 있었고, 출근할 때 이 학생이 소리를 지르는 환청이 들린다고 고인이 말한 적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서울교사노조는 “경찰과 교육당국이 유족과 전국 교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규명을 위해 철저히 조사해달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숨진 교사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교원노조나 특정 단체가 주최하지 않는 집회에 교사들이 모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와 별도로 같은 날 오후 종로구 광통교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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