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인정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책과 삶]

최민지 기자 2023. 7. 2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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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저자가
코로나 이후 겪은 ‘혼자만의 삶’ 고찰
외로움을 ‘극복 한다’는 전제 아닌
긍정적 수용 통한 새 가능성 찾기
에세이스트 다니엘 슈라이버는 팬데믹으로 ‘우정 중심의 삶의 모델’이 위태로워졌음을 깨닫고 외로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언스플래쉬

홀로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강명순 옮김 | 바다출판사| 224쪽 | 1만6000원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 인간으로 태어나 느끼는 외로움은 근원적인 것이라고,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들 한다. 안다. 아는데, 그래도 어렵다. 주위를 돌아보면 모두 행복해 보인다. 고통은 오로지 혼자만의 것인 듯하다. 인간은 원래 고독하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나만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 텐데.

독일에 사는 미술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다니엘 슈라이버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슈라이버는 40대 중반의 동성애자 남성이다. 그는 최근 몇년간 의도적으로 혼자 사는 삶을 추구해 왔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슈라이버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며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꿈꿨고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길든 짧든 누군가를 늘 만났고, 그중 몇몇과는 꽤 오래 같이 살기도 했다. 독점적인 연애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관계와 관계 사이 빈 공간을 견디기 어려워 “시덥잖은 연애나 원나잇으로 채웠다”고 그는 고백한다. 일종의 로맨스 강박이었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사는 것은 많은 사회에서 개인의 실패로 여겨진다. 혼자인 사람에게는 매력 결핍, 경제적 빈곤, 정신적 불안정이란 낙인이 자주 덧씌워진다.

<홀로>는 슈라이버가 홀로 지내는 동안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들여다본 책이다. 미국 작가 수전 손택의 평전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으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그가 이번에는 혼자 사는 삶과 외로움을 탐구한다.

책 초반부, 슈라이버는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다루는 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 듯했다. 돈독한 관계의 친구 가족과 여행을 떠나고, 친구의 자녀들에게 줄 선물을 열심히 골랐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찾아오는 고독에 대비해 강박적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거나 전통빵 슈톨렌을 구워 여기저기 선물했다.

그러나 2020년 갑작스럽게 닥친 팬데믹은 슈라이버의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는 그의 생계가 위태로워졌고, 무엇보다 친구들과의 만남이 끊겼다. 사람들의 둥지 본능이 강화되는 동안 슈라이버의 불안감은 커져 갔다. 그가 설계한 ‘우정 중심의 삶의 모델’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저자가 ‘사회적 삶이 중단된 문지방 시기’라고 명명한 이 기간은 그가 독신 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슈라이버는 몽테뉴, 시몬 베유, 지그문트 바우만, 롤랑 바르트 등 여러 학자들의 문장을 빌려와 혼자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외로움은 치유하거나 해소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감정’이며,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숨기거나 치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고독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고독을 택하기도 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어느 섬으로 떠나 두 달간 살면서 고독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책은 외로움과 고독에 관한 탐구이면서 우정에 관한 고찰이기도 하다. 로맨틱한 관계의 파트너가 없을 때, 우정 관계의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낸다.

이 책을 집어드는 독자들이 품을 가장 큰 기대는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일 것이다. 그러나 슈라이버는 그 기대를 저버린다. 그는 이 질문이 근본적으로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다. 슈라이버는 미국 작가 폴린 보스의 생각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모호함을 받아들이며 그걸 인정한 상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다. (중략) 그것은 방임이나 금욕주의 혹은 순응이 아니라 내면의 자유를 확립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삶을 살아간다. 그게 잘 안될 때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종종 이런 전제로부터 결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로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슈라이버의 깨달음이다.

그럼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고독에 당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슈라이버는 실용적인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가 일종의 ‘자기 구제의 시간’이라고 정의하는 섬에서의 두 달은 독자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뜨개질을 하고, 프랑스어 강좌를 수강하고, 식물원에서 꽃을 관찰하는 것이 “삶의 난기류를 통과하도록 도와주고 한동안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수용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는 요가의 도움을 받았다.

신비로운 것은 슈라이버의 답이 독자의 기대를 배반함에도 묘한 위로가 된다는 점이다. 이 위로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는 듯하다. 시인 김소연은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다니엘 슈라이버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의 경험들에 내 경험들을 포개보며 중요한 것을 알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렸기 때문이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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