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바로 안 판다”던 HMM, 매각 속도 빨라진 이유는
KDB산업은행(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HMM 민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바로 (HMM을) 팔 일이 없다”고 했으나 매각이 늦어지면 2조6800억원 규모의 30년 만기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처리부터 전 세계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 등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21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산은과 해진공은 ‘HMM 주식 매각 공고’를 내고 본격적인 경영권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산은과 해진공은 HMM의 1·2대 주주다. 전날 산은과 해진공은 “매각자문단(삼성증권, 삼일회계법인, 법무법인 광장)을 구성해 컨설팅을 진행한 결과 올해 중으로 HMM 경영권 매각에 착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해진공은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계획’에서 HMM 민영화 완료 시점을 ‘2025년 말’로 예상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자문단 검토 과정에서 올해를 넘기면 갈수록 HMM 경영권을 매각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평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HMM의 30년 만기 CB·BW 처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오는 10월부터 2025년 4월까지 2조6800억원어치 CB·BW의 금리가 오르는 스텝업(Step-Up) 시점이 차례대로 돌아온다. HMM은 이때를 사실상 만기로 보고 조기에 갚을 계획이다. 산은과 해진공이 조기 상환을 받아들이지 않고 CB·BW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면 총지분율이 40.7%에서 71.7%로 치솟아 HMM 인수자 입장에선 부담이 커진다.
산은과 해진공이 CB·BW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조기 상환을 받아들일 수 있으나 HMM의 주가가 전환가액(5000원)보다 4배 가까이 높은 상황이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산은과 해진공은 오는 10월 HMM이 조기상환을 신청할 수 있는 4000억원 규모의 CB와 6000억원 규모의 BW를 주식(2억주)으로 전환해 기존 주식과 합쳐 총 3억9879만주를 매각할 방침이다. 남은 1조6800억원어치의 CB·BW는 인수자와 협의해 처리 방안을 결정한다.
해운 시장 상황도 산은과 해진공이 HMM 매각에 속도를 내는 요인이다. HMM의 주력 사업인 컨테이너선 운임은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해 2분기 평균 983.5로 전년 동기보다 77.6%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컨테이너선 공급은 계속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인도된 컨테이너선의 선복량(적재능력)은 97만5000TEU(1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로 지난해 전체와 맞먹는다.
이달 초 기준 향후 3년여간 인도 예정인 컨테이너선의 선복량도 기존 선복량의 27.7%에 해당한다. 2025년까지 컨테이너선 공급이 높은 증가율을 보일 전망이다. 증권사들은 HMM이 올해 연결기준 1조143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선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이 계속되면 꾸준한 실적을 담보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컨테이너선사인 이스라엘 ZIM은 최근 올해 실적 전망을 적자로 하향 조정했다.
시장 재편도 예정돼 있다. 세계 1·2위 컨테이너선사인 스위스 MSC와 덴마크 머스크(Maersk)는 해운동맹 2M을 2025년 1월부로 해체하기로 했다. 3대 해운동맹 중 하나인 오션얼라이언스(Ocean Alliance)의 계약도 2027년이면 종료된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2017년부터 이어져 온 컨테이너선 업계가 새판 짜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MSC는 이미 단독 운항을 할 수 있도록 현재 보유한 컨테이너선 선복량 516만TEU에 더해 149만TEU 규모의 컨테이너선을 주문한 상태다. HMM의 인도 예정 컨테이너선을 합쳐도 7배 수준이다.
산은과 해진공은 HMM 매각 성사를 위해 매각대상 주식 수를 바꿀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인수자의 요구를 최대한 맞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달 21일까지 진행하는 예비 입찰에 얼마나 많은 예비 인수자가 참여하는 지가 매각 성공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산은과 해진공은 예비 입찰 이후 실사와 본입찰을 진행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주식매매계약체결(SPA)까지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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