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와 3점슛…, 성공한 스페셜리스트 외인선발
조 잭슨(31‧180cm), 키퍼 사익스(29‧179.1cm) 등이 훗날 맹활약을 펼치면서 '외국인 포인트가드는 팀을 우승시키기 힘들다'는 징크스가 깨지기는 했지만 가드 외국인 선수중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은 슈팅가드가 먼저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수비장군' 로데릭 하니발(51‧ 193cm)과 '3점의 암살자' 데이비드 잭슨(45‧191.8cm)이다.
숫자로만 따지면 외국인 가드는 포인트가드보다는 슈팅가드가 훨씬 더 많았다. 프로 초창기 잠시 인기를 끌었던 외인 1번은 소통, 적응 문제 등 국내 무대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내려지며 해당 선수를 뽑을 때 신중을 거듭하게 됐던 것에 비해 외인 2번은 자신이 잘하는 것만 집중하면 되기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던 이유가 크다.
케빈 비어드, 래리 데이비스, 버나드 블런트, 숀 이스트윅, 토니 해리스, 존 다지, 퀸시 브루어, 쉔드릭 다운스, G. J. 헌터, 루이스 로프튼, 숀 더든, 말린 킴브루, 제이미 부커, 채드 핸드릭, 앤트완 홀, 처드니 그레이, 드숀 해들리, 알렉스 스케일, 조셉 쉽, 웬델 화이트, 리차드 로비, 라샤드 제임스, 드워릭 스펜서, 드웨인 미첼, 브랜든 필즈, 다이온 베리, 마리오 리틀, 안드레 에밋, 론 하워드, 마이클 이페브라, 테리코 화이트, 디온테 버튼, 조쉬 셀비, 프랭크 로빈슨, 마커스 쏜튼, 크리스 로프튼, 마커스 킨, 새넌 쇼터, 저스틴 에드워즈, 기디 팟츠, 투 할로웨이, 조던 하워드 등 많은 2번 외인들이 KBL무대를 밟았다.
그중에서도 하니발과 잭슨은 특별했다. 기량 자체만 놓고 따졌을 때는 언급했던 수많은 슈팅가드중 독보적인 투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소속팀이 우승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품 외국인 슈팅가드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확실한 자신만의 특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소속팀의 가려운 부분과 딱 맞아떨어졌고 우승이라는 윈윈으로 이어졌다.
누구든지 꽁꽁, 특급 수비수로 공헌한 하니발 장군
특정 부분의 전문가를 가리킬 때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그런점에서 하니발과 잭슨은 ‘KBL의 스페셜리스트에 가까운 선수였다. 예나 지금이나 국내 각팀에서 외국인선수에게 바라는 점은 많다. 공격에서는 에이스, 수비에서도 중심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국내 선수에게는 ’이것만 잘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외국인선수에게는 사실상 어렵다.
특히 외국인 가드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장신 빅맨형같은 경우 포스트 사수만 평균 이상으로 해줘도 수준급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가드는 다르다. 신장의 불리함까지 감안하고 선발한만큼 다재다능한 테크니션을 원하는 팀들이 대부분이다. 사이즈에서의 마이너스를 테크닉 혹은 빼어난 운동능력 등으로 메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니발과 잭슨은 달랐다. 소속팀에서는 당초부터 그들을 뽑을 때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기대 이상으로 잘해준다면야 물론 좋겠지만 우선적으로 원했던 플레이가 따로 있었다. 애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니발의 임무는 수비였다. 당시 SK 최인선 감독은 토종 최고 센터 서장훈과 다재다능한 외국인빅맨 재키 존스의 트윈타워를 앞세운 높이 농구를 승부수로 들고나왔다.
서장훈은 외국인 빅맨과 일대일로 경합이 가능한 유일한 토종 빅맨이었다. 존스같은 경우 골밑파워는 다소 떨어져도 기동성, 슈팅, 패싱능력 등 다양한 옵션을 바탕으로 여러부분에 걸쳐서 공헌할 수 있는 재주꾼이었다. 거기에 현주엽과의 트레이드로 국가대표 슈터 조상현을 데려와 확실한 저격수를 확보했으며 약점으로 꼽히던 1번 자리에는 신인드래프트 3순위로 뽑은 황성인을 내세웠다.
골밑 수비는 걱정없었다. 서장훈은 탄탄한 웨이트를 바탕으로 힘좋은 외국인 빅맨에게도 쉽게 밀리지 않았으며 기동력에서 나오는 공간수비의 약점은 존스가 전천후로 메워주었다. 일단 높이 자체에서 당시 KBL 최강이었다. 하지만 외곽같은 경우 조상현, 황성인만으로는 불안했다. 이에 최감독은 수비 하나를 믿고 하니발을 선택한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좋은 선택이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테크니션, 에이스 유형의 단신 외국인 가드가 선호되던 상황에서 수비를 주무기로 들고나온 스타일은 하니발이 사실상 최초였다. 이전 루이스 로프튼이 가드 수비는 물론 언더사이즈 빅맨 조니 맥도웰까지 막아내며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하니발같은 수비 전문 외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니발은 전천후 수비력을 뽐냈다. 빠른 발과 힘 거기에 노련미까지 있었던지라 이상민같은 국내 가드부터 어지간한 4번 외국인선수까지 너끈히 수비가 가능했다. 하니발이 전천후로 수비의 중심을 잡아주자 SK의 팀디펜스는 그야말로 철옹성의 위용을 뽐냈다. 거기에 더해 리딩능력도 갖추고있어 황성인의 부족한 부분도 상당부분 채워줬다.
주로 국내선수와 매치업되는 특성상 공격에서의 공헌도도 적지않았다. 외국인가드치고는 평범했지만 국내선수 기준으로 봤을 때는 평균은 해줬다. 팀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국내선수를 상대로 포스트업을 치거나, 속공시 존스의 아웃렛 패스를 잡아 득점으로 곧잘 연결시켜줬다. 이러한 하니발의 활약이 더해진 SK는 해당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잭슨 타임! 터지면 게임 접수
잭슨은 이른바 ’슛 원툴‘ 외국인 선수였다. 단신 외국인 선수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발적인 운동능력이나 다재다능한 테크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놀라운 센스로 경기 흐름을 바꾸는 선수도 아니었다. 간혹 어이없는 플레이로 전창진 감독을 비롯한 팀 동료들까지 뒷목잡게 하기 일쑤였으며 외국인 선수답지 않게(?) 수비 좋은 국내 선수에게 꽁꽁 묶이는 경우까지 더러 있었다.
때문에 당시 TG(현 DB) 팬중에는 여전히 잭슨을 높게 평가하지않는 팬들도 많다. 가드치고 BQ도 높지않았으며 감독이 시키는 것 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경우가 적지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G는 잭슨을 버릴 수 없었다. 슈팅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영점이 안 잡히는 경우 다소 헤매기도 했으나 손끝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무섭게 폭발했다. 안정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기복있는 유형이었지만 한번 흐름을 잡을 때 왕창 몰아치는 슈터였다. 그로인해 높은 점수를 받지못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특유의 폭발력은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를 붙여놓아도 감당이 안됐다. 거리조차 따지지 않고 난사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던져댔는데 그럼에도 성공률이 높았던지라 이른바 ’잭슨타임‘이 시작되면 상대팀은 초토화가 되어버렸다. 빈공간에서 패스를 받아 슛을 성공시키는 역할도 잘했지만 자신이 드리블을 치면서 수비 움직임을 살피다가 냅다 던져버리는 유형의 무빙 3점슛에 특히 자신감을 보였다.
이러한 능력을 앞세워 정규리그 3점슛 성공률 1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 2003년 올스타전에서 외국인 선수로는 첫 3점슛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파워 센터 데릭 존슨과 함께 할 때는 외곽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으나 팀 플레이에 능한 리온 데릭스로 파트너가 바뀐 이후 좀 더 공격적으로 플레이 스타일이 바뀐 바 있다.
잭슨이 3점슛 라인 바깥에서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치면 수비수의 머릿 속은 복잡해졌다. 잠깐 만 한눈 팔면 번개같이 치고들어가 돌파를 성공시켰고 순간적으로 멈춰서서 쏘는 스탑 점프슛도 위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벼락같이 뛰어올라 던져대는 3점슛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3점슛이 워낙 위력적이었기에 다른 옵션까지 더욱 까다롭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침묵에 가까울 정도로 잠잠하다가도 어느 시점에서 폭발을 반복하던 KBL역사상 최고의 도깨비 슈터였다. 물론 하니발이 그랬듯 잭슨 또한 팀내에 김주성, 데릭스라는 든든한 트윈타워가 함께 해줬다. 함께 슈터로 활약하던 스몰포워드 양경민은 3점슛도 정확했지만 국내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자랑하던 명품 디펜더였다. 잭슨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신경쓰지않고 3점슛만 던지기에 적절한 환경이었다는 평가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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