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 교사' 이틀째 추모 행렬···“터질 게 터졌다”

정유민 기자 2023. 7. 2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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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추모 행렬···교사·예비교사·시민
"저연차 교사에게 실질적인 선택권 없어"
"1년 내내 같은 악성 민원인에 시달려"
교사들 22일 서울 보신각서 집회 계획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극단적 선택을 한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정유민 기자
[서울경제]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어제에 이어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임시 추모공간은 이날부터 23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 운영된다. 분향소가 설치된 지 1시간 만에 20명이 넘는 조문객이 방문했다. 더운 날씨에도 조문객들은 말 없이 애도를 표하며, 메모지에 고인을 추모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돌아갔다.

서울 성동구 소재의 중학교에서 근무한다는 20년 차 교사는 “주변 선생님들 모두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라며 “소식을 듣고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서 조문하러 왔다”며 눈물과 땀을 동시에 흘렸다. 또 다른 선생님도 “정말 남일 같지 않다”며 “젊은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냐”고 울먹거렸다. 청주에서 동료 교사들과 조문하러 온 김 모(49) 씨는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지방에서도 민원·업무 스트레스로 정신과에 다니는 동료 선생님들이 많다”고 착잡해했다.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분향소에 한 추모객이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정유민 기자

분향소 설치 소식에 일반 시민들의 조문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서 왔다는 김유진(23) 씨는 “아직 대학생이고 고인과는 접점이 없지만 같은 나이의 친구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소식에 조문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 씨와 함께 온 학원 선생님 변지석(34) 씨도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교권과 학생 인권 사이 균형이 맞춰질 필요는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교사들, “학교 측 입장 말도 안 돼”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정유민 기자

이틀째 눈물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동시에 전국 각지의 교사들은 분노를 표하고 있다. 2년 차 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제기된 여러 의혹에 학교 측은 공식 입장문을 내고 부인했다. 학교는 고인이 학교 폭력 업무가 아닌 나이스 업무를 담당했으며, 1학년 담임도 본인이 희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학교 측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안일하고도 형식적인 태도라고 입모아 말했다.

서울 성북구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조 모(29) 씨는 “사실상 신규·저연차 교사에겐 담당 업무나 학년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며 “고인이 올해 담당했다던 나이스 업무도 올해 개편되면서 업무량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도 “저연차 선생님에게 1학년, 6학년 담임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학교 측의 입장에 반박했다.

또한 학교 측은 입장문을 통해 해당 학급에는 학교 폭력 심의 사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이 역시 어불성설이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한다. 이날 분향소를 찾은 한 선생님은 “학급의 아이들은 다 내 새끼인데 어느 교사가 교육청으로 사안을 쉽게 넘기겠냐”며 “교육 지원청에 해당 사안이 없었다는 게 학교 폭력 관련 학부모 민원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예견된 일”···교권 보호 장치 시급 목소리 커져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정유민 기자

교사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언제든지 예견됐던 문제'라고 입모아 말한다. 곪을 대로 곪은 ‘교권 추락’ 문제가 젊은 교사의 죽음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불합리한 민원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날 추모 현장을 찾은 한 교사는 “근무하는 학교에서 1학기에만 교권보호위원회가 2번이나 열렸다”며 “결국 한 선생님은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고, 경찰의 신변 보호 조치도 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형식적”이라고 전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근무하는 3년 차 교사 김 모(28) 씨도 “사건 전에도 올해 들어 학부모 민원이 극심해져서 모두들 무력감과 회의감에 빠진 상태”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현실에 교사가 더는 소명감과 사명감으로 일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30년 가까이 서울 강남·서초 일대에서 교편을 잡아온 박 모(55) 씨는 “조금 큰 소리로 꾸중 했다고 학생이 바로 경찰에 신고하더라”며 “상황이 이런데 무슨 지도가 가능하겠냐”며 푸념했다. 서울교대 재학생 김 모(22) 씨도 “아이들이 좋아서 교사라는 꿈을 꾸게 됐는데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길이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주변에서 다른 진로를 고민하는 교대생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12시 30분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분향소를 찾았다. 정유민 기자

교권 보호를 위한 장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모양새다. 익명의 한 교사는 “선생님들은 1년 내내 같은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학생 인권이 물론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교육과 지도가 가능할 수 있게 교권도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는 22일 오후 2시께에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교사 인권 보호', '교권 정상화'를 외치는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날 오후 12시 30분께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며 교권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헌화 후 이 장관은 “뒤늦게 나마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학교 문화가 학생 뿐만 아니라 교사도 행복할 수 있는 문화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교권과 학생 인권 간의 대립 양상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날 분향소를 찾은 한 40대 교사는 “교권과 학생 인권은 양립 불가능한 게 아닌데 이번 사건으로 갈라치기 될 까봐 우려된다”며 “이번 안타까운 사건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교권 보호 정책이 속도감 있게 논의될 것 같은데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께 온 동료 20대 교사도 “교권과 학생 인권이 조화롭게 보장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 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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