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극대화하면서 리스크 최소화하는 외교전략 필요”

박노벽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대사 2023. 7. 2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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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벽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대사 기고]
尹 대통령의 우크라 전격 방문 세 가지 의미
자유 연대 의지 피력하고, 국제사회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러시아의 반발은 최소화
“지금은 냉전 때보다 더 복잡한 국제질서 과도기…외교정치력 필수”

(시사저널=박노벽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대사)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전격적이었다. 대통령 내외는 나토 정상회의 참석 후 폴란드에 이어 7월15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전격 방문했다. 우크라이나는 평소에도 직항편이 없어 불편한 여정이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 편도로 10시간 넘는 열차로 가는 일 자체가 모험이다. 시기도 엄중했다. 윤 대통령 방문 전날 저녁까지도 우크라이나는 공격해온 드론을 격추했다. 언제든지 공격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엄중한 보안이 요구됐다. 여기에 한반도 문제에 러시아의 영향력과 관여도 등을 감안하면 우리로서는 외교적 부담감도 있었다. 

윤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은 큰 틀에서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한국의 위상과 국제적 자유 연대, 한반도 안보 상황 등을 반영하며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방문이 됐다. 한국은 그동안 북미와 유럽의 나토 회원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함께 불법 전쟁을 규탄하며 젤렌스키 정부에 연대와 지원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런 만큼 키이우를 직접 방문한 것은 윤 대통령이 정부 입장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한국은 전쟁으로 피해와 손실이 큰 우크라이나에 시급한 지원은 물론 전후 재건 지원을 확대하는 데 우리 정부가 더 적극 나서길 바라는 국제사회의 기대에도 부응했다. 전쟁 발발로 한국은 뜻하지 않게 유럽과 동남아, 중동 등으로 방산 수출길이 대폭 늘어났다. 특히 작년 폴란드와 120억 달러 규모 방산 수출계약 성사로 총 방산 수출액이 170억 달러를 기록해 세계 8위권 방산 수출국이 되었고 올해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군사, 인도적, 재건 지원 약속을 골고루 언급했다. 특히 군사 지원은 우리 정부의 기존 방침에 따라 방탄복, 헬멧 등 비살상용 군수물자와 시급히 필요한 지뢰 탐지기 등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조태용 안보실장이 설명함에 따라 외교적 부담을 덜게 되었다. 윤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에 대해 러시아 측에서 한-러 양국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등의 비난이 당장 없는 것을 보면, 러시아도 이러한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의미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7월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 이르핀 민가 폭격 현장을 살펴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어 인도적 구호품을 포함한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과거 냉전시대 미·소와 달리 지금의 미·중은 상호의존적

지금은 냉전 때보다 더 복잡한 국제질서의 과도기다. 국제질서의 흐름을 냉정하게 입체적으로 읽으면서, 외교적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면서도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이 꼭 필요하다. 

현 상황은 냉전 당시처럼 가치이념적 대결 속 진영싸움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나토 회의 등 해외 방문 시 동맹국들과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이를 위한 미국의 지원을 약속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는 게 대표적이다. 북핵 및 미사일 문제에 대한 안보리의 분열된 논의 과정에서 러시아·중국이 북한을 두둔하거나,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응해 중·러 합동훈련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안보와 관련된 진영논리가 강화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시대를 신냉전의 진영 간 대결 시기로만 간주하는 것은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핵무기를 미국과 유사한 규모로 보유했지만, 재래식 군사력의 취약점이 노출됐다. 즉 군사력 면에서 미국과 대등하지 못하다는 점이 증명됐다. 둘째, 상호의존성의 차이다.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상호 기술적·경제적 상호의존성을 갖지 않았지만, 지금의 미국은 최대 도전국인 중국과 기술적·경제적 상호의존적 관계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이를 단계적으로 분리 차단하려 하면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셋째, 이념보다 더 중시되는 실익이다. 이번 전쟁이 보여주듯 강대국 간 갈등의 근본적 요소는 결국 자유 수호 외에도 주권, 영토 보전, 영향력 유지 등과 같은 실질적인 이익 문제다. 

미국은 지금 동맹국과 함께 국제체제의 안정성을 지켜내고자 한다. 자유민주체제와는 다른 권위주의적 사회인 중국이 군사·경제력을 갖춘 패권국이 되어 주변 지역에서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맹국과 공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중국 지도부가 대만 문제 등 주변 지역 문제에 무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그 기회비용을 높이고 있다. 전쟁 시 치러야 할 비용을 높여 놓아야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서방에서는 중국의 국력 팽창 추세가 인구와 해외투자 감소 등의 문제로 일정 시기가 지나면 그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과도기에 대한민국 같은 중견국들에는 동맹관계를 견고히 유지하는 가운데 나름의 자율성을 갖는 것이 중요한 외교 과제다. 한국으로서는 다변화 추구 등 여러 방안을 추진할 국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외교적 지혜를 발휘할 정치적 지도력과 이를 뒷받침할 정치적 안정이 중요하다.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7월15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AP 연합

외교정치력에 국내 정치적 지지는 필수적 

외교적 자율성과 신뢰도 축적은 미국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의 트럼프 등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민감한 대외문제 개입에 대해 분열된 입장을 보임에 따라 앞으로 대선 이후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트럼프 1기에서 경험했듯이, 고립주의 성향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미국 주도 세계질서는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함께 극복해야 할 공통의 문제다.

한편 동맹국 간에는 동맹 유지에 관한 공약과 지지 수준이 달라짐에 따라 동맹국 상호 간 방기(abandonment)와 연루(entrapment)가 충돌하는 딜레마가 발생하곤 한다. 공약 수준이 높아지면 상대 동맹국에 의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해 방기될 가능성은 낮아지지만 그 대신 원치 않는 분쟁에 말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상호 공약 수준을 낮춘다면 동맹국은 자신이 원치 않는 분쟁과 갈등에 말려 들어갈 가능성은 줄어들지 모르나, 위기 때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방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강대국 간 대결 가능성이 커진 현 국제 여건하에서는 동맹 강화가 주는 이득, 즉 안보와 번영 달성이라는 이익을 위해 지불할 비용과 연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위험을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외교정치력이 요구된다. 그 외교정치력을 발휘하는 데는 폭넓은 국민의 이해와 국내 정치적 지지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질문은 '러시아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안보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다. 우선 이는 이번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러시아가 전면적으로 승리해 우크라이나를 통제 아래 두기는 불가능해 보이고,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어느 정도 회복하며 승리할지도 아직 미지수다. 따라서 미국과 서방은 여러 정치·경제적 상황 변화에 따라 현재 전선의 변화 추이를 보면서 휴전 추진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권유할 가능성도 있다.

현 상황의 지속은 두 개의 문제를 낳는다. 먼저 전쟁 장기화 시나리오에선 러시아의 핵 사용이나 러시아와 나토 간 전쟁으로 확대될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전쟁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군대가 특정 지점을 넘어 밀려나더라도 상대측이 반격을 지속하려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키이우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둬 러시아 군대를 국경을 넘어 후퇴시켰더라도, 크렘린이 전투를 중단할지는 미지수다.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 발생, 국경과 같은 핵심 문제에 대해 모스크바와 키이우 간 근본적인 차이가 계속 깊어져 현재로서는 양측이 관계를 정상화하는 평화조약이나 포괄적인 정치적 해결도 불가능해 보인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인지,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간절한 염원과는 달리 나토 가입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고, 나토 가입을 위해 민주화나 개혁이 필요하다는 막연한 조건을 달아 보류했다. 러시아가 나토 확장을 레드라인이라고 주장했기에 미국과 일부 서방국가는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고 앞으로 휴전을 유도할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종전까지 러시아와의 관계 더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편 G7 정상들은 7월12일 별도 협의를 가지고 우크라이나에 대해 나토 가입 유보를 대신해 장기 안전보장 제공을 약속하고 군사와 재정 지원을 강화하기로 선언했다. 이러한 다자틀을 근거로 G7 국가와 다른 참여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와 개별 교섭해 지원 약속을 구체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러시아에는 전쟁 장기화나 전쟁 확대 시 정치·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해 주고자 했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 취지를 이해하고 당초 나토 가입 거부 때 보인 격한 반발 반응을 수정하며 바이든 대통령과 G7 정상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이와 같이 우크라이나는 다자 장기 지원 약속을 통해 나토 가입 대신 러시아군을 최대한 격퇴하고, 휴전 후 군대 강화와 경제 재건을 위한 국내 개혁을 추진해 나갈 종합 지원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아직 전쟁의 결말을 내기까지 어려운 고비가 많이 남아있다. 우크라이나의 대공세가 어떤 방향으로 전선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아직 시기상조이긴 하나 러시아도 서방의 결의를 고려하고, 우크라이나의 입장 변화까지 있어 만약 전쟁이 끝나게 된다면 러시아가 야기할 수 있는 리스크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한·러 관계 측면에서 본 러시아 리스크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수준이 되도록 양측이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양국 관계는 현재 상호 제재와 러시아의 비우호국 지정으로 사실상 동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쟁이 확전되지 않고, 종전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갈 수 있다면 이는 상호 이익에 부합하며, 특히 한반도 안정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건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우리의 국력과 위상에 부응해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실현하는 가운데,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러시아와 중국 간 잠재된 갈등, 북·러 관계와 북·중 관계 간 차이 등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새롭게 발전해 나갈 한일 관계도 적절히 잘 활용해 나간다면,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북한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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