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삼킨 해병대, 1200명 다시 수해복구 현장으로
실종자 수색 인원 복구에 투입
“내 새끼 같아 불쌍하고 대견해”
해병대원들 “준비없이 투입돼
원래는 수색대에서 맡았어야”
故 채수근 상병 보국훈장 수여
내일 영결식 임실 호국원 안치
예천=강한·박천학 기자
“중학생 손자가 커서 해병대에 간다고 하면 보낼 겁니다. 동료를 잃은 상황인데, 이렇게 달려와줘서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21일 오전 경북 예천군 벌방리에서는 토사에 파묻혔던 윤재순(69) 씨의 단독주택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병대 하사 1명, 상병 1명, 일병 3명은 산비탈에 근접해 특히 피해가 컸던 이 집 안에서 허리까지 쌓인 토사를 밖으로 파내고 있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사과농사를 지으며 두 아들을 홀로 키웠다는 윤 씨는 “동료를 잃은 지 하루 만에 땀꽃을 흘리는 모습을 보니 불쌍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며 “우리 집인데, 내가 거들려고 하면 해병대원들이 ‘할머니 저희가 다 할 테니 하지 마세요’ 하며 말린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실종자 수색 중 숨진 고 채수근 상병을 잃은 해병대 1사단 해병들은 이날 실의에 빠진 주민들을 위해 슬픔을 딛고 다시 피해 복구 작전에 나섰다. 해병대 1사단은 이날 집중호우·산사태 피해를 입은 경북 예천군 일대에 1200여 명을 투입했다. 채 상병이 실종된 이후 수해 지원 작전을 일시 중단했다가,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던 인원까지 모두 복구 작전에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실종자 수색은 채 상병 사망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복구 작전이 재개된 이날 이 마을에는 정보중대 등 1사단 해병대원 70명이 투입됐다. 주민 전어탕자(86) 씨는 “토사부터 빨리 치워야 병들고 있는 고추밭에 약을 칠 수 있다”며 “내 새끼 같다.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주민은 “할머니 1인 가구가 70%인 동네고 전부 늙어서 비실비실하는데, 1당 10을 내는 해병대가 안 오면 복구 엄두도 못 낸다”며 “실종자가 2명이 남아 있어 중장비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비가 닿지 못하는 건물 사이나 집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하는 해병대의 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해병대원들은 벌방리 외에도 동사리·진평2리·금곡1리 등 주요 피해 지역에 100∼300여 명씩 나눠 복구 작업을 재개했다. 급수차 등 중장비 30여 대도 투입됐다. 해병대원들은 침통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복구에 힘을 모았다. 해병대 관계자는 “애도 기간에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한 해병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벌방리 인근 은풍면 동사리에도 해병대원 140여 명이 농가 창고 내부에서 침수된 물품과 쓰레기를 분리해 마당 앞 도로에 놓고 토사를 제거하고 있었다. 48가구 중 10여 가구가 급류와 토사, 돌덩이로 파손된 곳이다. 주민 박철호(64) 씨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며 “해병대 장병들이 나서서 복구해줘 너무 고맙다”며 대원들에게 시원한 생수와 물을 건넸다. 주민 변화성(56) 씨는 “자연재해가 없는 고향에 이런 일이 발생해 너무 속상하고 암울했다”며 “동료를 잃은 아픔에도 찾아온 해병대원들 때문에 복구에 힘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날 복구 작전에 나선 해병대원들은 채 상병에 대한 말을 아꼈다. 다만 일부 해병대원들은 “수색대가 맡아야 할 임무였다” “포병대대에는 수색에 필요한 장비도 제대로 없을뿐더러 교육훈련도 충분히 받지 않았을 것이다” “급박하게 지시가 하달되는 과정에서 준비 없이 투입된 것이다” 등의 말들을 주고받았다.
한편 전날 해병대 1사단 강당에 빈소가 마련된 채 상병에게는 이날 보국훈장 광복장이 수여된다. 유해는 오는 22일 오전 9시 영결식을 거쳐 전북 임실 호국원에 안치된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전 11시 반 기준 이번 집중호우에 따른 사망자는 46명으로 집계됐다. 실종자 4명에 대한 수색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1426가구 2200명이 긴급 대피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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