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는 죽어서도 영원히 연기한다?...'AI 배우 시대'가 던지는 질문들
"AI가 영화계 일자리 빼앗는다"
최근 할리우드 파업 원인 되기도
어떤 상상
인공지능(AI)이 '진짜처럼' 만든 '가짜' 톰 크루즈를 스크린에서 만나면 어떨까.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증강현실을 통해 그와 소통도 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라면.
AI 기술이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에도 손을 뻗치면서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19일(현지시간) AI가 죽은 배우를 되살리는 것이 가능해지자 업계가 골치 아픈 문제들과 직면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 할리우드에서 작가와 배우가 63년 만에 동반 파업에 나선 이유 중에도 "AI가 우리 밥그릇을 빼앗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포함돼 있다.
AI로 ‘진짜’ 불멸의 스타가 된 제임스 딘
BBC는 AI 배우의 대표 사례로 1955년 교통사고로 요절한 배우 제임스 딘을 꼽았다. AI로 부활한 제임스 딘이 영화 ‘백 투 에덴’(Back to Eden)의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것이다. BBC는 “제임스 딘의 AI 아바타는 평면 스크린뿐 아니라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 대화형 플랫폼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후에 두 차례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불멸의 스타’로 불린 그가 ‘진짜’ 불멸의 스타가 되는 것이다.
AI 배우의 등장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80세인 해리슨 포드가 AI 디에이징 기술을 통해 ‘인디아나 존스’에서 40대의 외모로 나왔고, 2014년 ‘분노의 질주 7’ 촬영 당시 사망한 폴 워커도 영화에 생전 모습 그대로 출연했다.
AI의 급속한 진화는 업계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싱가포르 배우인 제이미 여는 딥페이크(이미지 합성) 기술을 활용해 본인의 이미지, 음성을 무제한 활용해도 된다는 초유의 계약을 금융 기술회사인 '휴고 세이브'와 맺었다.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와 데이비드 베컴이 딥페이크 방식으로 상업광고를 찍긴 했지만 여처럼 퍼블리시티권(초상, 음성, 이름 등의 사용권) 전체를 넘기진 않았다.
사후 AI 배우 수익은 누구에게?
관객 입장에서 AI 배우의 등장은 희소식일 수 있다. 좋아하는 배우가 사망하거나 은퇴해도 영원히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다. 수익 배분 등 퍼블리시티권 문제로 넘어가면 복잡하다. BBC는 “사망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 거친 역할을 했던 배우가 갑자기 바보 같은 코미디나 포르노에 출연하면 어떻게 되는지 등 여러 불편한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배우의 의사와 무관한 이미지로 소비되거나 수익이 배우에게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제임스 딘이 살았던 195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문제들이다.
글로벌 영화 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에는 사후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는 법률이 사실상 전무하다. 특정인의 디지털 유산으로 AI 아바타를 만들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 에릭 칸 변호사는 BBC에 “사후 퍼블리시티권 사용과 수익 배분 문제를 유언장에 남긴다 해도 계약 상대가 없으므로 법적 효력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2014년 사망 당시 "내 디지털 초상권을 보호해달라"며 ‘잊힐 권리’를 요구했지만, 유언의 효력은 2039년까지다.
AI에 일자리 빼앗길라… 톰 크루즈에 지원 요청
일자리 문제도 간단치 않다. AI 배우가 시장을 독점하면 배우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성우, 작가, 스태프 처지도 다르지 않다. 컴퓨터그래픽(CG) 사용을 최소화하고 스턴트맨 없이 액션 신을 찍는 것으로 이름난 톰 크루즈도 지난 6월 배우를 AI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고 미국 CNN방송은 보도했다.
“제작비용 절감”… 반기는 이들도
그러나 ‘AI 배우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반지의 제왕’ CG를 담당한 엔지니어 스티븐 리제러스는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2045년에는 AI 배우가 활약할 것이다. 이 방식은 제작시간을 단축하고 예산을 아낄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계약에 따라 막대한 저작권을 챙길 수 있는 만큼 배우 입장에서도 불리하기만 한 건 아니다. 제이미 여가 “(딥페이크를 활용하면) 일하는 것에 비해 많이 번다"고 하고, 톰 행크스가 “내가 내일 버스에 치여도 계속 연기할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 배우는 이제 막 도입 단계인 만큼 한동안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안드레아 슈나이더 카도조 로스쿨 교수는 BBC에 “AI가 직업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며 "할리우드 배우 파업 협상이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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