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날 땐 운동이 특효약이다[살며 생각하며]

2023. 7. 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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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김창기정신과 원장, 그룹 ‘동물원’ 멤버
난 늘 나 자신에 불만… 화가 나
어린이들처럼 남 탓 더 하게 돼
뇌의 분노 반응 2초 정도 지속
그 찰나를 잘 넘기면 성인군자
성숙한 어른이라 여길 수 있어야
화 줄어들 텐데…그게 쉽지 않다

화가 많아졌다. 수시로 화가 나고, 세상은 화나는 것들로 가득하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화가 난다. 한 사람이 외친다.

“어이가 없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왜 화내는 줄 알아?”

‘살아보면 무엇이든 어떻게든 그럴 수도 있단다. 퀴즈로 대화를 이어가지 말자. 화가 날 때면 더욱 그러지 말자. 어차피 원하는 정답을 얻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더 화가 난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소음의 진원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곳에 또 다른 폭탄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빈자리가 생겼다. 그런데 왼쪽은 ‘쩍벌이’고, 오른쪽은 ‘꼰다리’다. 뭐라 한마디 하고 싶지만 꼰대라 할까봐 참는다. 나도 다리를 ‘맞꽈주고 맞벌려주고’ 싶지만, 무례한 짓은 싫다. 그래도 앉았으니 다행이라고, 잘 참는 성숙한 어른이라고 자위하지만 화 때문에 열이 올라 내 몸은 더 뜨거워진다.

진료실에서도 화가 난다. 의사의 처방과 권유를 따르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일까?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좋아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어쩌란 말인가? 똑같은 말을 수없이 되풀이해서 확인하고, 나갔다가 다시 고개를 들이밀며 또 같은 질문을 하면 다른 대답을 해 줘야 하는 걸까? 한 시간 상담을 예약해 놓고 ‘노쇼’하면 또 어쩌란 말인가? 급한 문의를 위한 전화는 가능하지만, 전화로 몇 분 동안이나 상담을 하면 진료비를 내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가 인간의 복잡하고 힘든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느라 스트레스받는 줄 알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런 작은 억울함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분노는 생존과 자기 보호를 위한 감정이다. 가장 원초적인 분노는 신체적 가해나 위협을 받을 때의 것이다. 그다음은, 자신의 가치를 무시당하거나 피해를 볼 때의 분노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윤리나 신념을 부정당할 때의 고차원적 분노지만, 그런 분노를 느껴본 적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내 가치가 무시되거나 폄훼됐을 때, 또는 나의 기준에 내가 못 미쳤을 때 느끼는 분노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정당화하려고 윤리나 신념을 운운하곤 한다.

화가 많은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에 대해 화가 나 있다. 이 세상은 상황과 위치의 차이는 분명 있지만, 그래도 비교적 평등하다. 그리고 행복의 근원은 외부의 세상이 아니라 내 내면의 안정성과 내게 소중한 몇몇 대상과의 관계다. 세상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은, 부족하고 불만스러운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를 세상에 투사(projection)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 나는? 솔직히 나도 그렇다.

분노를 줄이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축적된 부정적인 정신적 에너지를 신체적 에너지로 바꾸어 해소하는 육체적 운동은 단기적으로 분노를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보다는 ‘마음의 운동’이 더 중요하다. 마음의 운동은 크게 다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체중 조절을 하는 것 같이 불필요하거나 비현실적인 욕망을 줄이는 ‘감량 운동’, 갈등과 분노의 원인이 되는 과거의 상처들에서 비롯된 잘못된 사고 및 적응 방식을 바로잡는 ‘교정 운동’, 그리고 마음의 적응력을 키워 자신감을 향상시키는 ‘마음의 근력 운동’이 그것이다.

가장 먼저 내게 진정 중요한 게 뭔지, 찾고 얻고 싶은 게 뭔지 잘 파악해야 한다. 조급하게 눈앞의 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삶이라는 큰 그림을 잊기 쉽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발전과 안정의 첫걸음이다. 결국, 많은 현인이 말했듯이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대개 사랑과 평화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그들과 사랑하며 평화롭게 생활하고 싶은 것이다.

과다한 욕망은 대부분 과거로부터 비롯된 열등감과 분노 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다. 배부른 소리라고 잘난 척한다고 질시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난 늘 나 자신에 불만이고 화가 난다. 그런데 요즘 몇 가지 일로 내가 더 못나 보인다. 그래서 아이처럼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한다. 그러니 화가 더 많아진다.

분노는 뇌 중앙의 ‘편도’라는 엄지손톱만 한 기관이 담당한다. 편도가 작동하면 교감신경이 항진돼서 몸이 흥분하게 된다. 나쁜 짓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뛰고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기온이 높아지면 몸은 분노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돼서 더 쉽게 화를 내게 된다. 내가 더위 때문에 화를 더 낸다는 변명은 아니다.

편도의 분노 반응은 2초 정도 지속된다. 그 찰나를 잘 넘기면 성인군자가 된다. 화가 날 때 속으로 열을 세면 그럴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도 분노 조절은 어렵다. 머리를 써야 한다. 화가 날 때 세 번 생각한 후 말할 수 있다면 현명한 어른이 될 수 있다. 먼저 상대방의 기분 나쁜 언행이 혹시 나의 착각은 아닌지 확인하고, 또 그러면 상대방의 실수나 버릇이 아닌지 확인하고, 끝으로 그러면 나를 화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러는지 차분하게 말로 확인하는 것이다. 요즘 나에게 꼭 필요한 방법이다. 내가 성숙한 어른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화가 줄어들 테니까.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아,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김창기 김창기정신과 원장, 그룹 ‘동물원’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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