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우리가 윤동주 시인처럼 살진 못할지라도('기적의 형제')
[엔터미디어=정덕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JTBC 수목드라마 <기적의 형제>를 보다보면 윤동주 시인의 '서시' 그 한 구절이 떠오른다.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하필이면 김지우 작가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을 육동주(정우)라고 붙인 데는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작품 소개에도 '윤동주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빚뿐인 작가 지망생 육동주'라고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가던 작가 지망생 육동주. 비 오는 날 그의 차에 뛰어든 소년 강산(배현성)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그의 백팩에서 나온 '신이 죽었다'라는 원고를 읽고는 결코 넘지 말아야할 유혹에 빠져버린다. 그걸 자신이 썼다 속여 출간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 그런데 문제는 이 원고가 결코 세상에 나와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27년 전 소평호수에서 벌어진 노숙자 살인사건을 저지른 진범들이 그들이다. 육동주는 몰랐지만 그 소설 속에는 바로 그 사건의 전말이 직접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디테일로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원고는 누가 쓴 것이고, 그걸 갖고 갑자기 육동주의 차로 뛰어든 미스터리한 소년 강산은 누구일까. 옷깃만 스쳐도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아픔을 읽어내고 그 마음의 소리를 듣는 데다 저도 모르게 순간이동을 하기도 하는 이 소년은 1995년에서 현재로 타임슬립한 인물이다. 기억을 잃어 본인이 누군지도 또 왜 이렇게 시간을 뛰어넘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가 하필이면 육동주의 차에 뛰어들게 된 건 전혀 우연이 아니었다.
동주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주서점에 강산의 형인 이하늘이 자주 찾아왔고 강산이 타임슬립을 하기 직전 바로 이 동주서점에서 동주의 아버지로부터 가방을 받았다. 강산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형 이하늘을 백방으로 찾고 있었지만, 경찰들조차 이를 외면했다. 이하늘이 소평호수에서의 살인사건을 목격했고 그래서 그 진실을 밝히려 경찰서에 갔다가 실종됐다는 사실은 누군가 진실을 덮기 위해 모종의 범행을 저질렀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또 그 즈음 동주의 아버지가 뺑소니에 의해 사망하게 된 사건 역시.
타임슬립이나 초능력 같은 판타지가 더해져 있지만 결국 <기적의 형제>가 그리고 있는 건 동주와 강산이 각각 자신의 아버지와 형에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하늘은 실종되어 사망한 줄 알았지만 카이(오만석)라는 이름으로 살아있었다. '스카이'의 의미를 가진 닉네임으로. 그는 당시 소평호수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진범들에게 복수하려는 모종의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 사건의 진범 중 한 사람인 유명 영화감독 신경철(송재룡)과 악덕 사채업자이자 당시 사건의 가짜 목격자였던 전두현이 살해된 사건과 연루되어 있어 보인다.
사람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에 대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잘 살아가는 유력 집안의 자제들. 그들은 대기업 회장이 되고 현지 검사장이 되고 유명 영화감독 또 교수가 되어 살아간다. 이들의 죄를 덮기 위해 무고한 노숙자를 강요 자백으로 진범으로 만든 비리 경찰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저들은 죄를 짓고도 잘 살아가고, 그런 사회 속에서 저들의 죄를 덮는 죄를 짓는 이들 또한 권력의 줄을 잡는다.
하필이면 강산이 타인의 고통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건 돈과 권력에 눈 멀어 타인의 고통에 눈감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경종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잊고 현재를 살라는 동주에게 강산이 일갈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난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 것뿐이야. 나쁜 기억이든 고통스런 기억이든 그게 전부 나라고. 현재를 살라고? 신의 계시? 개소리 하지 마.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현재를 살아?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처럼 살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진실을 들여다보려는 삶을 사는 건 진짜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강산의 말처럼 과거의 일이라고 덮어버리고 현재를 살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공허하다. 그건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적의 형제>가 그리려는 기적이란 동주와 강산이 서로의 아픔은 물론이고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비극들을 함께 직시해가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공감의 기적'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시구는 그래서 다른 의미로도 읽힌다. 카이로 불리는 하늘이 찾으려 했던 그 진실을 향해 나가는 동주와 강산의 의미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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