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희망’ 밑줄 친 서이초…분노한 교사들에 “가만히 있으라”

이혜영 기자 2023. 7. 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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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교사 극단 선택 파장 축소에 급급한 학교와 교육당국
추모 열기 속 ‘학부모 악성 민원’ 실재했다는 제보 계속돼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7월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다 사망한 A(24) 교사의 임시 추모 공간에서 추모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소속 20대 교사 사망과 관련한 학교와 교육청, 학부모의 대응을 둘러싼 일선 교사들과 여론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 장관과 전국 교육감들이 일제히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약속했지만,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추모에 나선 교사들을 향해 돌아온 것은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는 메시지다. 

서이초 1학년 담임교사 A(24)씨의 사망 사실과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원인이라는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른 후 서이초 앞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시민과 교사들의 추모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오전 서이초 앞은 1500개가 넘는 근조화환이 학교를 둘러쌌고 먼 길을 떠난 교사를 추모하고 영면을 기원하는 편지가 빼곡히 들어찼다. 전날 하루 약 2300명이 서이초를 찾아 조문한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학교 측은 추모객 규모가 점점 커지자 난색을 표하며 출입을 막아서는 등 '학생들에게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방문객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학교 측의 미온적 대응에 교사들이 직접 나서 전날 오후 교내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교장 면담을 요구하는 교사들과 막아선 학교 측이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학교와 교육청의 대응은 교내에서 저연차 교사가 극단 선택으로 사망하고, 이 사실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확산되며 사안이 일파만파 하는 순간까지 사태 여파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20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서이초등학교에 재직중이던 2년차 교사가 학부모와의 갈등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교사 명예' 위한다는 학교…고인 "소름끼친다" 고통 호소해

특히 전날 서이초 교장 명의로 나온 입장문은 교사들의 공분을 샀다. 서이초 측은 교사들과 여론을 향해 "사망한 교사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무리한 억측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극단 선택을 했다'는 의혹에 대한 언급을 삼가해달라는 취지다. 

그러나 정작 학교 측은 이번 사태 본질과 동 떨어진, 진상규명과 관계 없는 일방적 주장을 나열한 입장문을 내놓았다. 

서이초는 '담임 학년은 본인 희망대로 배정' '학폭 아닌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으며' '해당 교사가 교육지원청을 방문한 일도 없었다' '해당 학급서 발생한 사안은 다음 날 마무리 됐다' 부분에 밑줄까지 쳐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학교 측 입장을 확인한 동료 교사들은 "예상했던 대로 참담하다"는 반응이다. 

고인의 동료 교사인 B씨는 서울교사노동조합에 구체적인 내용을 제보했다. 제보에 따르면, 고인의 학급에서 학생 간 연필로 이마를 긋는 사건이 있었고 이후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학부모가 고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수십 통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당시 고인은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모르겠다"며 "소름끼친다. 방학 후 번호를 바꿔야겠다"고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학교 측은 해당 사안이 발생 다음 날 마무리 됐다고 했지만, 정작 교사는 학부모들로부터 지속적인 민원에 시달리고 있던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고인은 학부모로부터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거냐'는 항의를 들어야 했고, 이 상황을 교무실 내 다수의 선생님이 목격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고인 학급에 '선생님 때문이야'라고 소리지르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고인은 '출근 때 그 학생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교사노조가 접수한 동료 교사들의 제보 및 유족 입장을 종합하면, 고인 학급 내 4명 학생의 문제적 행동이 계속됐고 해당 학생의 학부모들로부터 과도한 요구 및 항의, 비난에 교사는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선 한 교사는 "(고인이 맡았던) 4세대 나이스 오류로 현장에서 얼마나 혼선이 컸나. 학부모 민원 속에 그 업무까지 저연차 교사가 쳐내며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지 정말 먹먹하다"고 전했다. 

학교 측은 파장이 커지자 교사들에게 "함구하라"며 제보나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일부 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대한 '복무감사'에 돌입하는 등 교육당국이 사태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7월20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서이초등학교에 재직중이던 2년차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경찰이 사흘째 수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교원단체와 노조는 일제히 교육당국의 적극적인 대응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고인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비통함을 금할 수 없으며 전국의 모든 교육자와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간절히 빈다"며 "학교폭력 관련 학부모 민원이 원인이었는지 등을 철저히 수사하고 하루 속히 진상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도 성명을 내고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에서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구성원들을 떠나보내고 있다"며 "철저한 진상 조사와 안전하게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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