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S·유한양행 등 6개 백신총판, 25개 의약품도매상 짜고 백신 가격 높여

조민규 기자 2023. 7. 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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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개 백신 입찰서 낙찰자 사전 선정…들러리 섭외 후 투찰 가격 공유

(지디넷코리아=조민규 기자)국가예방접종 백신 입찰에서 백신제조사를 비롯해 34개 업체가 담합해 낙찰가격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백신제조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유한양행‧녹십자‧광동제약‧보령바이오파마‧에스케이디스커버리‧한국백신판매 등 6개 백신총판,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 관련된 입찰담합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잠정금액)을 부과키로 결정했다.

25개 의약품도매상은 그린비, 그린위드, 금청약품, 메디원, 비앤씨메디칼, 새수원약품, 강승구 새수원약품 대표, 송정약품, 신세계케미칼, 에디팜, 에이치엘비테라퓨틱스, 에이치원메디, 우리약품, 웰던팜, 웰팜, 인투바이오, 정동코퍼레이션, 지엔팜, 코리아팜, 태성메디텍, 팜스원, 팜월드, 하메스, 한스피엠아이, 김종산 삼성바이오약품 대표 등이다.

‘백신제조사’는 백신을 실제 생산하는 회사, ‘백신총판’은 백신제조사와 공동 판매계약을 체결한 회사, ‘의약품도매상’은 이들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아 병․의원 등에 유통하는 회사를 의미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출처=e-브리핑 캡처)

이들은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질병관리청‧국방부 등을 수요기관으로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 23건은 유찰되거나 제3의 업체 낙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공정위는 피내용 BCG 백신공급과 관련한 한국백신 등의 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에 대해 2019년 9월 검찰에 고발했고, 사건 수사과정에서 백신 관련 입찰담합을 인지한 검찰은 공정위에 고발 요청 후 관련 자료를 제공에 따라 조사한 결과이다.

자궁경부암‧폐렴구균백신 등 국가예방접종 24개 백신 입찰 담합

공정위는 이들이 담합한 대상 백신은 모두 정부 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대상 백신으로 인플루엔자 백신, 간염 백신, 결핵 백신, 파상풍 백신, 그리고 자궁경부암 백신(서바릭스, 가다실), 폐렴구균 백신(신플로릭스, 프리베나) 등 모두 24개 품목에 이른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백신입찰 시장에서의 장기간에 걸쳐 고착화된 들러리 관행과 만연화된 담합 행태로 인해 입찰담합에 반드시 필요한 들러리 섭외나 투찰가격 공유가 용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낙찰예정자는 전화 한 통으로도 쉽게 들러리를 섭외할 수 있었고, 낙찰예정자와 들러리 역할을 반복적으로 수행함에 따른 학습효과로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면 굳이 투찰가격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투찰함으로써 이들이 의도한 입찰담합을 용이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백신제조사가 자신의 공급확약서 발급 권한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가격으로 낙찰받을 수 있도록 다른 사업자들을 이용하는 것인데, 백신입찰에서 최저가 투찰로 낙찰받은 업체가 공급확약서를 요구했을 때 백신제조사는 해당 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그보다 투찰가를 높게 쓴 2순위 업체에게 공급확약서를 발급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공급확약서는 백신을 제조하는 회사가 해당 회사에게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하는 증표(2009년 도입)로, 백신입찰에서 최저가 투찰로 1순위로 낙찰받은 업체는 최종 계약 전에 조달청에 제출해야 한다.

낙찰예정자는 최대한 높은 금액으로 낙찰받기 위해 '기초금액'(조달청이 시장가격, 전년도 계약가 등을 참고하여 검토한 가격으로 입찰참여자들은 상한가격으로 인식)의 100%에 가깝게 투찰하고, 들러리는 이보다 몇 % 높게 투찰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한 백신 입찰 담합 업체와 과징금 현황

정부조달방식의 변화에 따라 담합참여자들의 변화도 있었다. 정부가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하는 백신(자궁경부암 백신, 폐렴구균 백신 등)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제3자단가계약방식’(정부가 전체 백신 물량의 5~10% 정도였던 보건소 물량만 구매)에서 ‘정부총량구매방식’(정부가 연간 백신 전체 물량을 전부 구매)으로 2016년(일부 백신은 2019년)부터 조달방식을 변경하자 글로벌 제약사와 백신총판이 백신입찰담합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백신총판이 낙찰예정자로 등장했다.

기존 의약품도매상끼리 낙찰예정자와 들러리 역할을 바꿔가면서 담합하던 것에서, 낙찰예정자가 의약품도매상이 아니라 백신총판이 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유일한 백신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자신의 백신(서바릭스, 신플로릭스) 총판인 유한양행과 광동제약을 위해 직접 의약품도매상을 들러리로 섭외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번에 적발된 업체 중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에스케이디스커버리(구 에스케이케미칼) 등 3개사는 지난 2011년 6월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이 사건 입찰담합에 참여함으로써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됐다.

이 사건 담합으로 낙찰받은 147건 중 117건(약 80%)에서 낙찰률이 100% 이상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 100% 미만으로 낙찰받는 것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백신제조사, 백신총판 그리고 의약품도매상 등 국내 백신 시장에서 수입, 판매 및 공급을 맡은 사업자들이 대부분이 장기간에 걸쳐 가담한 입찰담합의 실태를 확인하고 백신 입찰 시장에서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제재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라며 “앞으로도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백신 등 의약품 관련해서 입찰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행위가 적발되는 경우 엄정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민규 기자(kio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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