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목표 = 통일부 해체
● 尹 “통일부=대북지원부여선 안 된다”
● 강제 북송으로 北 체제 강화 기여… 억울할 것 없다
● 남북·한미 관계 최악일 때 탄생한 통일부
● 北 아니라 타 부처·국민 협력 우선해야
필자는 2004~2009년 통일부 자문위원을 지낸 사람 관점에서 대통령이 집도하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통일부 처지를 상상해 봤다. 초상집 분위기나 다름없을 것이다. 통일부를 위한 변명을 할 생각은 없다.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귀순한 북한 주민을 강제로 돌려보내 놓고도 너무나 당당하게, "잘했다"고 대답하던 김연철 장관의 모습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이제 통일부는 비전·업무 조정 등 큰 수술을 거쳐 새로운 생명과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 역시 통일부의 역사적 소명을 재건하고 국민의 통일 의지를 복구해 내야 한다. 통일 준비는 '선택'이 아닌 '소명'이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다른 부처와 함께 주어진 현실에 발맞춰 차분하게, 차곡차곡 통일을 준비해 가면 된다. 창설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면 해답이 보인다.
"통일부 달라질 때 됐다"
윤 대통령은 통일부가 '대북지원 강박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북지원과 이를 위한 남북대화·교류가 없으면 부처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전전긍긍한다"고 평가했다. 과거 통일부에 대한 진단이면서도, 윤석열 정부 1기 통일부 장관 권영세에 대한 질책이다. 정치인 장관과 통일부 고위관료 출신으로 구성된 윤석열 1기 통일부에서 학자, 타 부처 출신 관료로 장·차관을 바꾼 배경이기도 하다."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는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 속에는 집권 기간 중 대북지원부라는 평판을 떼어내겠다는 정치적 결기가 담겨 있다. 이미 개성공단·남북교류 사업 관련 통일부 조직 및 예산에 대한 대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는 대통령 개인의 인식을 넘어 현 한국 헌법 정신과 정합한다는 메시지다. 예상되는 야당·시민단체의 비판에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펀치'를 미리 날린 것이다. 반대 여론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뚝심으로 판단된다.
통일부는 어떤 심정일까. "꿀 먹은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이 속담에 대해선 뉘앙스 차이가 있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달콤한 꿀은 먹었지만 비밀을 지켜야 하는 상황, 둘째는 저질러놓은 죄가 있어 말은 못 하고 속만 끓이고 있는 상태다. 현재 통일부 당국자의 심정엔 두 가지 해석이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역대 통일부 당국자 가운데 정무직 공무원들은 첫째 상황이었던 이가 많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의 신뢰'라는 달콤한 꿀을 먹었기에 최고 권력자는 물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입을 다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입 열 개라도 할 말 없을 강제 북송
이들을 제외한 공무원 대부분은 억울하다고 느끼리라고 본다. 정부의 결정을 성실하게 집행했을 뿐인데 나쁜 평판을 받는 현실이 야속할 것이다. 필자가 만난 많은 통일부 공무원이 "5년, 10년 주기로 교체되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맞추다 보면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고충을 토로한다.통일부가 '대북지원부'라는 직격탄을 맞는 것을 보며 국민은 문재인 정부의 원칙 없는 대북 경제 지원을 먼저 떠올릴 것이지만 순전히 그것이 대북지원부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경제 지원은 문재인 정부만의 정책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한국의 북방정책이 일정한 성과를 낸 이후, 역대 모든 정부는 남북관계 물꼬를 트고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각각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대북 경제 지원 카드를 활용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담대한 구상'이라는 대북정책에 대북 경제 지원을 담았다.
문제는 김씨 일가의 내구력을 강화해 준 조치와 정책들이다. 통일부가 대북지원부라는 비판을 받는 데엔 역대 장관을 비롯한 정무직 공무원의 책임이 크다. 2019년 11월 강제 북송이 대표 사례다. 1997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이 귀순 의사를 표시하면 한국 국민이 된다. 당연히 한국에서 사법적 권리가 확보된다. 강제 북송은 대법원 판례와 헌법 정신을 어긴 사건이다. 당시 의원이던 필자는 대정부 질문에서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따져 물었다. 김 장관은 태연하게 "북한 주민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고 증언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검찰조사 결과 귀순 의사가 명확히 확인됐다. 이로 인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안보실장,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 모두 기소 상태다.
더 가관인 것은 김 당시 장관의 발언이다. 그는 2019년 강제 북송 직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강제 북송 결정을 누가 내렸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외교·안보 쪽은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제 북송을 결정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임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당국이 강제 북송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 필자는 '신동아' 1월호 '文 탈북자 강제 북송, 김정은 키우고 통일 좌절시켰다'로 밝힌 바 있다. 북한 당국은 강제 북송이 '북한 당국과 문재인 정부의 합의에 따른 남측의 약속 이행'이라며 동영상과 교재를 만들어 교육함으로써 추가 탈북을 막는 데 적극 활용했다. 강제 북송이 북한 김정은 체제 내구력을 키우는 데 이용당한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의 권리와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통일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신임 통일부 장·차관은 '이젠 바뀌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을 전폭 수용해야 한다.
최악 안보 환경에서 태어난 통일부
어려울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통일부 창설 당시, 즉 국토통일원 창설 무렵을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다. 통일부의 전신 국토통일원은 6·25전쟁 이후 남북관계가 가장 긴장된 시기에 국회가 주도하고 행정부가 국회 논의를 수용해 1969년 창설됐다. 구체적 탄생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66년 7월 14일 국회 여야 의원 10명이 '통일연구특별위원회'를 설치해 통일 문제를 논의할 상설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1967년 1월 말 통일연구특별위원회는 정부 내 국무위원을 수장으로 하는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국회에도 해당 상임위원회를 둘 것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1967년 2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1968년 4월 19일 박정희 정부는 국토통일원 설치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고 이 역시 통과됐다. 국토통일원은 1969년 3월 1일 개원식을 열었다. 당시 국토통일원은 1과 3실, 장·차관 포함 45명의 소규모 조직으로 출발했다.같은 해 1월 23일엔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승무원 83명을 태우고 북한 해안으로부터 40㎞ 떨어진 동해 공해상에서 정찰 업무를 수행하던 미군함정 푸에블로호가 북한의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납치된 일이다. 이로 인해 6·25전쟁 이후 미국과 북한 간 긴장이 가장 고조된 상태가 되기도 했다.
10월엔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불화에 한미동맹이 위기를 맞았다. 정치적 시련기에 한국을 방문한 적 있는 닉슨 대통령은 당시 한국 정부의 홀대에 섭섭함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닉슨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에 맡기겠다"는 공약으로 베트남전 출구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결국 이듬해 "핵공격을 받지 않는 한 아시아 지역 분쟁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닉슨 독트린'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국토통일원 창설 시기 안보 환경은 정부 차원에서 통일을 거론하기가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특수부대를 직접 보내 자신을 암살하려고까지 한 김일성 정권과 통일 업무를 다루라는 국회의 요구에 난감했을 것이다. 또 베트남 파병으로 공고하게 된 한미동맹이 닉슨 정부 출범 이후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 통일 논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자주국방을 강화하는 이원 전략을 선택한다. 1968년 4월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미국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안보를 지키기 위한 자주국방을 설계하게 된다. 짐작건대 이 무렵 박 대통령이 한국의 독자적 전략무기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듯하다.
부(部) 아닌 원(院) 시작 의미 새겨야
국토통일원은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노태우 정부 때 통일원으로, 김대중 정부 때 통일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외교통일부로 통폐합이 논의됐으나 "통일을 포기하느냐"는 여론에 밀려 통일부로 남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부처 창설 초기에 부(部)가 아닌 원(院)으로 정한 까닭은 임무·역할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다른 부처와 조정·협력을 통해 추진해야 하는 업무와도 관련 있다.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을 거쳐 2008년 기획재정부로 변경)이 예시가 될 수 있다. 경제기획원은 업무상 정부 모든 부서의 예산 편성·집행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통일 업무 부처가 원(院)으로 시작된 까닭은 통일 준비가 모든 부처와 함께 조정하고 추진해야 갈 업무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통일 준비를 모든 부처가 하되, 국토통일원이 이에 대해 부처 간 업무와 완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 것이다.
1969년 12월 12일 시행된 '국토통일원 직제' 시행령에서 이와 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총 9개조로 구성된 시행령 5조 4항엔 국토 통일 문제에 관련된 관계 부처와의 협조 및 조정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며, 8조엔 "국토통일원 장관은 관계 부처에 대해 자료 또는 의견 제출 등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해 협조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현재 시행하는 '통일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은 9장 27개조로 돼 있다. 창설 이후 업무 증가 및 다양화가 반영된 결과다. 초기에 없던 △남북협력기금 운영 △북한 인권 문제 △남북 교류협력 △북한이탈주민 복지 등이 중심 업무다. 놀랍게도 초기 존재하던 다른 부처와의 협력은 강조되고 있지 않다.
윤 대통령이 내민 메스에 통일부는 답해야 한다. 향후 남북관계는 △한국 정부의 의지 △북한의 태도 △북·미관계 변화 △진영 질서 변화 등 변수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질적인 변화를 이끌 가장 큰 변수는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향후 남북관계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가운데 가장 가능성 높은 것에 맞춰 통일 준비를 하면 된다.
첫째, 지난해 후반기와 같은 상황이 그럭저럭 진행되는 시나리오다. 한국 정부가 담대한 구상을 유지하며 조급하게 남북 간 교류협력을 추진하지 않는 가운데 핵에 대한 북한 태도가 요지부동인 상황이다. 자연스레 글로벌 차원 진영 대결도 심화되고 북·미 대화를 위한 모멘텀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다. 결국 현재 상황이 그대로 이어지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새로운 남북관계가 개척되는 전개다. 북한 지도자가 핵 폐기를 결심하고 남북관계가 복원돼 핵문제 등 핵심 의제를 다루는 낙관적 상황을 말한다.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이뤄지고 민간교류가 획기적으로 복원된다. 인도적 지원·교류가 성과를 내면서 비핵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남북 정상회담 등이 준비·추진되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셋째,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한국에 피해를 미치는 국지도발을 감행하는 경우다. 진영 대결 심화 등 부정적 요소가 작용해 긴장이 최고조로 높아진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다. 북측이 핵무기를 과신하며 한국의 군사적 보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해 한국을 괴롭히게 된다.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단기적 남북관계는 첫 번째 상황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실현되기 가장 어렵다. 세 번째 시나리오도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체제를 소멸(the end of regime)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엄포를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통일부 궁극적 목적 = 부서 해체
통일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1988년 14대 국토통일원 원장으로 임명된 이홍구는 취임 인사에서 "1990년대엔 일을 끝내고 해산한다는 생각으로 임하자. 우리가 일하는 보람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통일 달성 순간을 곧 통일부가 해산할 때로 인식한 것이자 1990년대까지 통일을 완수하자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 말에 해답이 있다. 통일부의 목표는 통일부 업무를 종식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임무를 재편해야 한다.첫째, 다른 부처를 상대로 통일 업무를 해야 한다. 초기 부처 이름이 부(部)가 아니고 원(院)인 이유와 맥을 같이한다. 북한을 상대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처와 국민을 상대로 통일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국내에 유포되는 통일 장애 담론을 극복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통일의 가장 큰 적은 통일을 방해하는 담론들이다. 필자는 통일 의지 앙양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로 △북한식 통일지상주의 △과도한 통일비용 부담론 △통일 한국의 치안불안론 △사실상 통일만족론(defacto unification) △단계적 통일론을 거론한 바 있다.
셋째, 대북 지원을 통일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버려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유엔(UN) 제재가 완화되면 경제 지원이 진행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범정부 경제부처가 주도하는 경제 지원을 하면 된다.
넷째, 한국의 공식적 통일 방안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홍구 전 원장이 제시한 개념 '코리아 커먼 웰스(korean common wealth)'를 기반으로 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시대 여건에 맞게 업데이트해야 한다. 통일 방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통일 국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통일 이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단군왕검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을 기반으로 하면 좋으리라고 사료된다. 얼마 전 주한프랑스대사 필립 르포르를 만났다. "한국에서 근무하며 가장 흥미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한강의 기적과 홍익인간 정신"이라고 했다. 특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필자는 홍익인간 사상이 프랑스혁명 정신, 중국 삼민주의, 미국 독립정신보다 더 빛나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을 견인하는 이념으로서 홍익인간을 내세우면 어떨까. 통일부가 해산하는, 통일부가 필요 없어지는 날이 속히 오길 희망한다. 통일부는 부서 해체가 곧 부서 목표라는 것을 깨달아야 다시 빛날 수 있다.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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