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령도 못 넘은 장벽… 이민2세 눈으로 본 분단 역사[북리뷰]
한요셉 지음│박지선│옮김위즈덤하우스
실향민 혼령, 손자의 몸을 빌려
DMZ서 월북 시도하는 이야기
하와이 오가며 기발한 상상 펼쳐
미국서 주목받는 작가 한요셉
“이산가족 이별의 아픔서 출발
미군 월북, 소설과 흡사해 놀라”
한요셉 작가의 소설 ‘핵가족’(Nuclear Family)은 영화 ‘미나리’와 소설 ‘파친코’,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 등을 잇는 디아스포라 작품이다. 제이컵의 가족은 하와이에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판다. 가게 이름은 ‘조씨네 델리’. 제이컵의 아빠 조정엽의 성을 딴 이름이다. 이들은 밥과 고기를 재료로 한 메인 요리와 콩나물 무침, 달걀말이, 그리고 ‘아무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잡채’를 한 그릇에 담아 판매한다. 하와이 전역에 프랜차이즈를 내고 멋진 집을 사는 게 이들의 꿈이다. 하지만 그 꿈은 한국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간 제이컵이 DMZ를 넘어 월북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한 작가는 이민 2세대로,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하와이에서 자랐다. 그의 첫 책 ‘핵가족’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고 있는데 지난해 ‘펜/헤밍웨이상 데뷔작 부문’ 후보에 올랐고, ‘타임’지는 이 책을 ‘202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32살인 작가는 전미도서재단에서 주관하는 ‘35세 이하 가장 주목받는 작가 5인’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디아스포라 작품들과 같이 이민자, 특히 이민 2세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소설 전반을 둘러싸고 있다. 제이컵이 한국에 왔을 때 느낀 이유 모를 간지러움과 고통, 그리고 매일 대마초에 절어 시도 때도 없이 폭식과 구토를 하는 제이컵의 여동생 그레이스의 모습은 ‘야곱’과 ‘제이컵’, ‘은혜’와 ‘그레이스’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진,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 위치한 이들이 느끼는 혼란과 고통의 은유다.
‘핵가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책은 하와이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38선이 그어지고 한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산산조각 난 가족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소설은 대체 왜 제이컵이 월북이라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그 의문을 흥미롭게 풀어가는데 그 속에서 드러나는 혼령 ‘백태우’의 존재는 아픈 한국사를 드러낸다. 북한 출신인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남한으로 내려왔고, 이후 다른 살림을 차려 제이컵의 엄마를 낳지만 끝내 홀로가 된 채 혼령이 됐다. 혼령이 된 그는 남과 북을 갈라놓은 벽을 뛰어넘으려 애쓰지만 벽은 예외 없이 단단할 뿐이고, 이에 그는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자신의 외손주인 제이컵의 몸 안으로 들어가 월북을 시도했던 것이다.
지난 20일 줌을 통해 만난 작가는 “학교에선 6·25 전쟁이 필요했고 정의로운 것이었다고 배웠는데 ‘정말일까’ ‘꼭 그랬어야 하는 걸까’라는 의구심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며 “6·25 전쟁으로 300만∼500만 명이 사망했다. 그들 각각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억울하게 죽은 혼령들이 아직 한반도 여기저기에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며 책을 썼다”고 했다.
남북 분단을 이야기하는 배경이 하와이라는 점은 특히 인상적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여행지 상위권에 항상 오르는 이곳이 사실 전쟁 위에 세워졌다는 건 우리가 모르고 잊고, 또는 알고도 잊는 사실이다. 본래 원주민의 땅이었지만 사실상 강제로 미국에 편입됐으며 태평양 전쟁의 시발점이자 중심이었던 하와이와, 강대국들에 의해 둘로 나뉜 우린 같은 상처를 지닌다. 소설 속에는 지난 2018년 하와이에 탄도미사일이 발사돼 대피해야 한다는 경보가 내려져 수백 명이 대피했던 일이 그려지는데, 지난 5월 잘못 온 위급 재난문자 하나로 모두가 20분간 공포에 떨었던 우리의 일과 겹쳐 보인다. 작가는 “한국과 하와이 사람들 모두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 살고 있다. ‘핵’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한국과 하와이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다. 그래서 제목에 ‘핵’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주한미군이 판문점에서 월북한 일이 있었다. 소설 속 제이컵과 비슷하게 말이다. 작가는 “소설의 이야기와 너무 흡사해 놀랐다”면서 “분단이라는 현상이 얼마나 작위적인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산가족의 이별은 이 책을 쓰게 된 출발점이었지만, 이 책을 쓰는 동안 그 이별을 애당초 불가능하게 만들 방법을 찾고 싶었다”며 “장벽이 지속될지라도 우리 모두의 결의는 그보다 오래 지속돼서 언젠가 그 벽을 넘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416쪽, 1만75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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