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가장 솔직하게 들렸던 미국 관리의 말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브리핑에서 수십 년째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이슈 중 하나가 북한 문제입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지난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맞아 미국이 대북 선제 타격까지 검토했을 만큼 한 때 심각하게 다뤄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뒷방 신세'입니다. 6차까지 거듭된 핵 실험과 세는 것조차 지칠 만큼 쏴 대는 미사일로 이제는 미국에서도 북한 도발은 '늘 있는' 일 정도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북한이 이런저런 성명을 내고 미사일을 쏠 때마다 미 정부 관계자에게 관련 질의하면 돌아오는 답은 거의 같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다수의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강력 규탄한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은 철통 같다", "조건 없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 "외교적 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등등…
'조건 없는 대화'의 실체
'미국은 북한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미국에서 북한 문제를 취재하다 보면 가장 근본적으로 느끼게 되는 질문입니다. 주무 부처인 국무부는 북한 문제의 중요성을 늘 강조합니다. 국방부도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은 물론 미 본토까지 타격하는 ICBM,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도 마쳤으니 괜히 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다만 우선 순위가 관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은 북한을 향해 '조건 없는 대화'를 늘 강조합니다. 성 킴 대북특별대표와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때 좀 직설적으로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늘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하는데 '그 말 외에 미국이 실제로 북한에게 취한 행동이 뭐가 있는가?' 성 킴 대표는 대북 인도적 지원 제안 등을 예로 들며 말뿐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바이든 행정부 내 북한 문제 우선 순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타이완 해협 갈등, 그 뒤에 있는 러시아, 중국과의 경쟁 같은 시급한 현안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이지만 위협의 강도로 볼 때 북한 문제도 쉽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신뢰 구축이 중요?"…"당장은 아니다"
최근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미 하원에서 한 발언은 미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현지시간 18일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평화협정보다는 당장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원하느냐는 브래드 셔먼 의원 질문에 "당장의 위협은 점점 더 위험해지는 북한의 미사일 및 핵 프로그램과 전례 없는 횟수의 미사일 발사"라고 답한 겁니다.
셔먼 의원은 평화협정 같은 신뢰 구축 조치가 더 중요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크리튼브링크 차관보는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재 정부는 "대북 억제력과 동맹인 한국, 일본에 대한 안보 공약의 힘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참고로 셔먼 의원은 민주당 소속으로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를 촉구하는 '한반도 평화 법안'을 지난 3월 발의한 인물입니다.
'급한 일도 많은데'…미국의 속내
물론 미국이 북한을 향해 외치고 있는 '조건 없는 대화'가 진정성 없는 수사(修辭)에 불과한 건 아닙니다.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대화 테이블에 나선다면 만날 의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에게 필요한 건 '조건 있는 대화'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북미 회담에서 최고 지도자가 '빈손 망신'을 당한 그들에게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말뿐인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얻을 게 없는 대화에는 응할 이유가 없다며 도발을 이어가는 북한과 위협에 맞서 힘을 보여주는 게 먼저라는 미국 사이에서 접점은 없어 보입니다. 미국이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은 '현상 유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른 급한 일도 많은데 어차피 쏘지도 못할 핵을 들고 턱도 없는 조건만 요구하는 북한에게 시간 낭비하지 않겠다'… 어쩌면 이게 진짜 속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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