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연세대 꺾은 고려대, 철저한 준비와 지략의 완승
고려대는 20일 상주체육관 신관에서 열린 제39회 MBC배 전국대학농구 상주대회 남자 1부 대학 결승에서 연세대를 69-58로 물리치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주축 선수들이 빠진 건 똑같았지만,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이를 코트에서 보여준 덕분이다.
주희정 고려대 감독은 이날 우승한 뒤 “오늘(20일) 경기는 라이벌과 경기이고, 결승이라 다음 경기가 없었다”고 했다. 최근 결과만 놓고 보면 연세대를 고려대의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고려대는 지난해 대학농구리그에서 82-71로 연세대를 꺾은 뒤 MBC배 예선과 결승에서는 72-50, 77-60으로 제압했다. 올해 대학농구리그에서 한 때 30점 차이까지 벌린 끝에 62-45로 또 두 자리 점수 차 승리를 챙겼다. 이번 대회 결승까지 더하면 2년 동안 열린 5차례 공식 경기에서 고려대는 연세대를 모두 두 자리 점수 차로 승리했다.
고려대와 연세대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지난해 정기전에서는 72-64, 한 자리 점수 차이로 이겼다.
고려대가 연세대를 이렇게 압도하는 이유는 이번 MBC배 결승에서 잘 드러난다.
주희정 고려대 감독은 지난 달 15일 건국대와 경기를 앞두고 “MBC배에서는 1학년이 중심이 될 것이다. 이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문유현과 윤기찬은 수비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유민수는 외곽수비가 굉장히 좋아졌다”고 예고했다. 실제로 고려대는 MBC배에서 문유현, 유민수, 윤기찬, 이동근을 중심으로 팀을 운영했다.
하지만, 윤호진 연세대 감독은 지난 12일 경희대와 맞대결에서 승리한 뒤 “강지훈과 홍상민을 중심으로 동계훈련을 시작하고, 이 선수들에 맞춰서 나왔으면 이 선수들이 적응하기 편했을 거다. 나도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 못했다”며 “김보배와 이규태를 섞어서 조합을 맞췄다. 저 두 선수(강지훈과 홍상민)로 맞춰가는 걸 많이 연습하지 못했다. 두 선수도 보배나 규태에게 선배로 의지했다. (김보배와 이규태가)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뽑혀서 못 뛰게 되니까 급하게 (강지훈과 홍상민의) 조합을 맞췄는데 조금 더 집중해서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보배와 이규태 정도의 기량이라면 당연히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뽑힐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김보배와 이규태가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뽑히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면 두 선수의 기량을 굉장히 떨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느 쪽이라고 해도 윤호진 감독의 판단 실수다. 더구나 김보배는 지난 4월 10일 성균관대와 경기부터 부상으로 출전하기 힘들었다. 5월 2일 중앙대와 경기 후에는 아예 출전하지 않았다.
대비를 한 팀과 대비를 하지 않은 팀의 결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주희정 감독은 상명대와 예선에서 팀 내 가장 긴 28분 46초 출전한 박정환에 대해 “20분 이상 뛰어본 경기가 없다. 30분 이상 뛸 거라고 예상하라고 했다. 발에 통증은 없다. 경기 체력을 올려야 한다. 그걸 주문했다. 나머지도 괜찮게 하지만, 박정환이 기술자라서 경기 체력이 관건이다”고 박정환을 길게 기용할 의사를 밝혔다.
사실 박정환은 대학농구리그 막판 중앙대와 경기에서는 34분 46초, 상명대와 경기에서는 39분 42초 출전했다. 박정환이 20분 이상 뛰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번 대회에서 30분 이상 출전하도록 미리 준비한 것이다. 박정환은 연세대와 결승에서 가장 긴 38분 16초를 뛰었다.
이에 반해 연세대는 결승에서 30분 이상 출전한 선수가 없었다. 고르게 기용했다. 다만, 21점 차이로 뒤지다 9점 차이로 좁힌 경기 막판 이민서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지쳐서 숨을 돌린 뒤 투입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 그랬다.
고려대 1학년 포워드들은 다리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뛰다 벤치로 물러났다. 이것이 좋은 것만 것 아니지만, 고려대는 그렇게 준비했다. 이에 반해 연세대는 한 순간 흐름에 따라서 우승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 승부처에서 주축 선수를 벤치로 불러들여야 했다.
윤호진 감독은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이주영과 이채형을 제외한 7명의 선수가 지금까지 열심히 훈련했고, 경기에서도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걸 했다. 선수 전원인 7명에게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선수 기용하는 방식을 보면 결선 토너먼트부터 이주영과 이채형을 최소한 식스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보이는데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반복적으로 이주영과 이채형의 출전을 억제하려고 한다며 나머지 7명 선수들의 선전을 강조했다.
선수들에게는 실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인터뷰만 보면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럼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이 차이는 경기 결과에서도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연세대가 3-2 지역방어를 서려고 하자 고려대는 작전시간을 요청했다. 누가 봐도 고려대의 작전시간은 3-2 지역방어를 공략하려는 의도였다. 그렇다면 연세대는 작전시간 직후에는 다른 수비를 서는 등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연세대 수비 변화는 없었고, 박정환이 3점슛을 터트렸다. 17-14에서 박정환의 한 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한 고려대는 4분 즈음 지난 뒤 35-24, 11점 차이로 벌렸다. 더구나 이 한 방으로 박정환은 3점슛 감을 잡았고, 이날 4방을 터트렸다.
주희정 감독은 “박정환이 아주 중요할 때 3점슛 두 방, 그 때 흐름이 연세대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우리가 안 뺏기고 잘 지켰다”고 했다.
#사진_ 문복주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