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엄마가 직접 겪는 기후 변화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은 2023. 7. 2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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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폭염, 산불, 그리고 홍수로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는 미국

설거지를 하려고 주방 개수대의 물을 틀다가 깜짝 놀랐다. 벌써 일주일 째인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습관처럼 찬물 쪽이 확실한지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당연히 찬물 쪽이 맞다. 하지만 미지근함과 뜨거움의 경계에 있는 온도의 물이 찬물 쪽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오늘 낮 최고 기온은 섭씨 43도. 작렬하는 햇빛 아래 체감 온도가 얼마나 될지는 알 길이 없다. 이곳은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근 도시이다. 지난 주부터 이번주 내내 고강도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나는 펜실베니아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막 이곳으로 이사했다. 우리가 이사 올 즈음에 펜실베니아 북부 및 뉴욕 등지는 캐나다의 대규모 산불 여파로 하늘이 뿌옇게 되거나 공기 질이 현저히 떨어졌으니 영유아 및 노약자는 외출을 삼가하길 권장한다는 주의보가 발효되었다. 캘리포니아 공기 상태는 좀 나을 거 같다는 기대를 하며 이사를 왔다.

우리는 미국 동부에서부터 미국 서부 끝단인 캘리포니아까지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이사 비용도 그렇고 언제 또 이렇게 본의 아닌 대륙 횡단을 해볼까 싶다는 사실도 그렇고 다소 무모하게 자동차를 타고 보름 가까운 시간을 운전을 하며 캘리포니아로 이동하게 되었다. 미국 시골 도시에서 포장 이사 서비스를 찾는 것도 불가능하고 설사 있더라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을 비용 때문에 잦은 이사에 잔뼈가 굵은 두 내외는 끙끙 거리며 모든 짐을 셀프로 옮겼다. 그렇게 옮긴 짐은 대형 컨테이너 박스에 차곡차곡 실어 넣어 장거리 화물 운반 배달 업체에 맡기고 식구들은 우리 자동차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사 나오는 날 비가 너무 심하게 쏟아져서 정말 조심조심 운전해서 겨우 펜실베니아를 벗어난 기억이 난다.

이 후에는 미국 중부도 지나게 되었는데 하늘이 이상할 정도로 노랬다. 마스크 쓰는 걸 참 싫어하는 미국 사람들이 판데믹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되어서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미국 중부에도 캐나다 산불의 여파가 영향을 끼치는 바람에 공기의 질이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동부에 이어 중부까지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원래 살던 곳에 있던 지인과 중간 중간 짧게 연락할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떠난 날 쏟아진 비는 그 때까지 오다가 멈췄다가 하며 몇 날 며칠 계속 되고 있었고 엄청난 강수량에 무서울 정도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미국의 아름다운 국립공원과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지나서 점점 서부로 갈수록 이번에는 고온 현상에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살던 동부는 겨울에 눈은 엄청나게 내리지만 여름은 기온이 높더라도 그늘은 항상 시원하고 기온 자체도 그렇게까지 높지 않아 쾌적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캘리포니아에 다 와 갈 때 네바다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 때 한 두시간 정도만 밖에 있었을 뿐인데 아이의 맨다리가 까맣게 되었길래 검정 가죽 의자에 앉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뭐가 묻었나 어리둥절했다. 목욕을 시키며 열심히 닦아줘도 없어지질 않았는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아이의 다리가 새까맣게 타버린 것이었다. 햇볕에 타서 그을린 정도가 아니고 아예 정말 새까맣게 타버린 모습이었다. 얼굴이나 목은 꼼꼼하게 선스크린을 발라줬는데 바쁘게 외출하다 보니 다리 부분은 대충 발라줬더니 그런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었다.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우고 실내로 들어가는 그 짧은 거리를 걷는데도 숨이 콱콱 막히고 건식 사우나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날 낮 기온이 43도 였다고 했다. 게다가 미국 서부와 남부의 햇볕은 정말 강하게 작열해서 두피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덥고 건조한 네바다까지 거쳐 드디어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니 처음에는 오히려 캘리포니아가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폭염주의보로 펜실베니아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더위 탓에 수도관까지 뜨겁게 달아오른 탓인지 찬물 쪽을 틀어도 물을 튼 다음 한 동안은 계속 더운 물만이 나왔고 낮에 창문이라도 열면 더운 바람이 들어와 실내 온도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환기 차 낮에 잠시 창문을 열면 작은 아이는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큰 아이는 밤에 너무 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텍사스에 있는 지인은 폭염에 아예 외출을 하지 못한다고 했고 아리조나에 있는 지인은 어제 기온이 48도였다며 조만간 50도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푸념을 했다. 이 와중에 펜실베니아에는 여전히 계속에서 비가 쏟아진다고 한다.

펜실베니아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와이퍼를 아무리 빨리 작동시켜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운행을 포기하고 멈추는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은

미국 전역이 폭염이나 홍수 그리고 공기 질 저하 같은 다양한 기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더위에 원하는 만큼 계속해서 에어컨을 걱정 없이 틀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진 못해도 아이들을 안전한 지붕 밑에서 키울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하다. 하지만 지금도 곳곳에는 다양한 문제로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미 주정부들도 대피소나 쉼터 들을 운영하며 이들을 도우려 노력 중이지만 길게 봤을 때 우리 아이들이 겪을 이 기후 변화의 여파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더위를 피해 아이들과 공립 도서관에 갈 준비를 한다. 오늘은 아이들과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한 책을 함께 읽어 볼 생각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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