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빼닮은 우리 뇌… 자연서 힐링하는 이유[북리뷰]
미셀 르 방키앵 지음│김수영 옮김│프런트페이지
파도의 리듬은 뇌파와 흡사
뇌속 피질은 나무와 닮은꼴
“뇌는 거대 식물성기관 같아”
“자연이 주는 만족이 病치유”
다양한 과학적 근거로 입증
뜨겁고 탁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는 걸 마다할 사람은 없다. 바다의 수평선은 즉각적인 평온함을 주고, 조용한 숲 속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 우리는 일상의 소음에 가려진 내면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사람은 자연을 마주할 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될까. 자연 앞에서 수많은 감정에 휩싸이곤 하면서도,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프랑스의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저자가 코로나19를 거치며 더욱 강력해진 ‘자연을 향한 애정’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책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머물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행복 메커니즘’을 탐구한다. 사실 자연이란 ‘감각’하고 ‘경험’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그것으로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지기에 따져 묻는 일이 무용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은 우리가 자연의 품에 안겨야 할 이유를 아는 것, 즉 자연과 ‘나’의 관계 속에 가득한 과학적 근거를 인식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그것은 자연이 주는 만족감의 비밀을 파헤치며 얻게 되는 순수한 ‘지적 경험’과 함께, 이것이 불안, 우울, 피로와 같은 현대인의 만성 질환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치유법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맨발로 흙길을 걷고, 밤하늘의 별을 응시하고, 새벽의 여명을 맞이해야 한다. 왜냐하면 흙 속 마이코박테리움 백케이가 항우울 효과가 있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고, 핵융합에 의해 형성됐다 죽어간 별은 우리가 우주의 먼지임을 깨닫게 하고, 또, 눈을 통해 뇌에 전달된 새벽빛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화학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책은 인간이 신체부터 심리까지 전방위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받는 긍정적 혜택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내는데, 선구적 연구로는 1984년 ‘외과 수술 후 창밖을 바라보기가 회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예로 든다. 논문에 따르면, 10년에 걸쳐 복부 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회복 추이를 추적한 결과, 창밖으로 자연이 보이는 병실에 머물렀던 환자들이 벽돌만 보이는 병실에서 지낸 환자들에 비해 회복 속도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들은 진통제도 덜 요구했으며, 평균적으로 하루 일찍 퇴원했고, 합병증의 발병률도 낮았다. 저자는 자신의 안면 근육 마비를 자연의 고요함 속에서 치유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 역시 저자가 자연의 능력을 수치화, 정량화하는 데 한몫했으며, 궁극적으로 이 책을 써내려가게 한 동기로 작용했다.
저자가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는 나무의 피톤치드가 인간의 자율신경계를 조절한다거나 파도의 리듬과 뇌파가 흡사하다는 등 잘 알려진 사실부터 최신 연구를 망라한다. 여기에, 19세기 산업 혁명의 물결 속에 ‘숲에서 살기’를 실천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나 숲을 예찬한 장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을 가져와 독자들의 다각적 이해를 돕고, 나아가 과학만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지식 너머의 감동까지 선사한다. 따라서, 책은 과학서이면서 동시에 명상서의 한 자리를 노리기까지 하는데, 절정은 식물 구조와 인간의 뇌 구조 사이의 건축학적 유사성에 주목한 7번째 장 ‘식물처럼 뉴런을 재배하다’이다.
저자는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뇌를 ‘식물성 기관’이라고 말한다. 뉴런은 복잡한 조직망으로 얽혀 있는 자잘한 식물들이고, 인간의 뇌는 하나의 거대한 식물로 볼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과학자들은 피질, 소뇌, 선조체 등 극도로 풍부하고 섬세한 뇌를 “아름다운 식물계”라고 했고, 피질의 뇌 이랑에서 발견한 수목형에 ‘생명의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저자는 사람들의 머리에 나무 한 그루가 있고, 뇌는 복잡한 식물이라고 한 질 들뢰즈의 말을 빌려, 점차 식물의 본질적인 특성에 가 닿는다. 그것은 정주성(定住性)과 ‘뿌리내림’이다. 식물은 뿌리내린 곳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포식자를 맞닥뜨린 것과 같은 역경에 처했을 때 도망치는 대신 맞서는 방법을 배웠다는 의미가 된다.” 또, 식물은 생태계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인내와 고집을 배웠다. 저자는 시몬 베유의 말을 인용해, 식물의 삶을 ‘인간의 뿌리내림’으로 확장, 환원한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실질적이고 자연스러운 참여를 바탕으로 뿌리를 내린다는 것. “정착과 성장을 강화하기 위해 자기 뿌리에 의지하는 식물처럼 인간은 가까운 사람들, 견고하게 세워진 친근한 장소 그리고 본유적 가치를 되찾아 성장을 돕는 자연에 의지해야 한다.”
책은 우리의 오감을 숲과 바다로 데리고 다니며 뇌를 깨우는데, 출발 전에 자연에의 이끌림을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을 숙지하면 그 여행이 더울 즐겁다. 우선 자연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 애정은 에드워드 윌슨이 제안한 ‘바이오필리아’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진화했기 때문에 자연을 향한 과학적 이끌림이 유전자에 내재해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이론은 심리학자 케플런 부부가 발전시킨 ‘주의 회복 이론’으로, 인간이 자연에 주의를 기울이는 독특한 방식 덕분에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연은 감각할 수 있는 갖가지 요소를 제공해서, 인간이 어두운 생각을 반복하는 행위를 멈추게 한다. 흐르는 물, 바람의 속삭임, 나뭇가지의 움직임 등이 부드럽게 우리의 주의를 끌고, 뇌에 휴식을 준다. 책은 이 지점에서는 두 이론 다 설득력이 있고, 동시에 둘 다 충분하지 않다면서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간다. 소로의 말처럼 “매 순간 당신의 안녕을 돌보는” 자연을 직접 만나라고.
“물, 바람, 숲, 별, 흙, 동물, 식물, 색깔 등 자연이 제공하는 다채롭고 감각적인 환경을 직접 감각하고 몰입함으로써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과학적 지식 이전에, 자연은 개개인이 겪은 일인칭 경험이다.” 264쪽, 1만6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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