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선 곧 일본 출항, 한국 흔적 덜 지운 그 곳 [함영훈의 멋·맛·쉼]
한옥 닮은 전각 있는 히로시마는 가을 축제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일본 에도시대(1603~1867년)가 막을 내린후, 실권을 장악한 명치 세력들은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 탈출 유럽 들어가기)와 한국 정벌까지 도모하면서 일본내 도래문화(한국이 전해준 문명) 흔적 지우기를 감행했지만, 교류가 빈번해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던 중부 이남 지역에는 여전히 많은 도래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문화의 전래와 교류가 1500년 이상 지속적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전면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모든 흔적을 다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폐지했던 축제,풍속을 지자체를 중심으로 부활시키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한 히로시마현의 조선통신사 축제와 대마도의 이즈하라항 축제 등이다. 일본 중남부 전역에 걸쳐, 한국과 유사한 풍속과 유적, 유구 등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주지하다시피, 에도시대의 시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정유재란이라는 실패한 도발로 일본 민중을 도탄에 빠트린 도요토미 일파들을 제거한 뒤 집권했고, 실제 도쿠가와 가문은 조선침략전쟁에 참전하지 않아, 집권후 전후 조선정부의 요구 조건을 전면 수용하면서 선린외교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일본에 파견된 우호친선 사절단이다. 외교관계와 관련한 메시지를 전하고 답을 받아오는 외교특사 ‘사신’과는 다르고, 성신교린 문화관광단이다. 이즈하라항 축제는 여름에, 히로시마현 조선통신사 축제는 가을에 열린다.
대마도의 이즈하라항 축제는 1964년에 부활했으며, 1980년 쓰시마에 조선통신사행렬진흥회가 발족돼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되어왔다.
매년 8월 첫째 주 주말에 개최되며, 그동안 노저팬 자발적 캠페인-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었던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개되는 것은 올해가 4년 만이다.
부산문화재단은 행렬에 참가하는 3사(정사, 부사, 종사관) 및 예술단을 파견할 예정이며 조선통신사선은 이즈하라항 축제 기간에 입항해, 쓰시마 시민을 대상으로 선상박물관을 운영한다.
조선통신사선 규모는 길이 34.5m, 너비 9.3m 높이 5m로 복원됐다. 출항에 앞서 오는 28일에는 통신사선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해신제를 조선통신사역사관과 영가대 일원에서 개최하며, 29일에는 출항식을 열어 조선통신사선의 일본 쓰시마 출항을 알릴 예정이다.
지금의 한국형 한옥전각 비슷한 것도 남아있는 히로시마현의 조선통신사축제는 가을에 열린다. 히로시마현 역사책은 “조선통신사 일행이 오면 ‘섬이 가라앉을 정도’로 성대하게 맞았다. 500명의 조선 손님 환대가 끝나면 지방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였다”고 적었다.
조선통신사 이방언이 1711년 당도해 “일본 동쪽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승(日東第一形勝:일동제일형승)”이라고 칭송했던 말은 지금도 히로시마현 후쿠야마(福山) 고을 사람들이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자랑하는 명언이다.
‘日東第一形勝’은 히로시마현 도모노우라(の浦) 마을을 지키는 사원 후쿠젠지 타이초로(福禪寺 潮樓)에 남아있다. 바위 위에 돌계단을 쌓아, 마을 높은 곳에 지은 후쿠젠지의 이 글귀 아래, 세토나이(瀨戶內) 바다와 섬 풍경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다.
이곳이 히로시마 조선통신사 축제의 주무대이다. 히로시마현 주민들이 한복과 일본 전통복식으로 코스프레한 채 당시 상황을 재현한다. 히로시마에서 세토나이 바다 섬으로 이동하는 상시 생활선-여객수송선은 조선통신사선을 닮았다.
앞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부산문화재단은 지난 5월 5~7일 부산 용두산공원·광복로·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 일원에서 ‘2023 조선통신사 축제’를 열었다.
한편 나라현은 ‘우리 나라’라고 말할 때 그 발음과 의미가 동일하며, 일본이라는 나라가 형성된 기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도래인 즉, 한국이 전해준 이식 문명과 토착 문명의 조화로 형성된 것임은 물론이다.
바로 옆 고을 교토의 탄생, 발전 과정도 비슷하다. 교토에 1500년 가량 터잡은 일왕 가문은 한국이 자신의 조상임을 분명히 한 적이 있다.
명치세력들은 일본 전역에 있는 한민족 흔적들을 지우려 했지만, 유독 쿄토,나라, 이시카와, 기후현 등에서 부터 남서쪽 끝 미야자키, 가고시마현 까지 광범위하게 남았던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고려, 조선의 흔적을 다 지우지는 못했다.
사실 히로시마, 주부지방 북알프스, 큐슈 등지는 일본 중앙정치 경쟁에서 밀려난 거물들의 은둔지였거나 귀양지였고, 그들이 굳이 기존의 문화유산을 분서갱유하듯 지울 이유는 적었다고 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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