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심실은 하나였으나…깃든 기적은 '여럿'이었다
증례1
붙임성이 좋은 아이는 일년에 두어 번 진료를 올 때마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엄마가 라면을 많이 못 먹게 해요.
(부종이 있어서 짠 음식을 피하기 위해서 인데……)
형이 엄마 안 볼 때 못살게 구박해요.
(병치레를 하는 동생에 대한 엄마의 강력한 편애 때문 ㅎㅎ)
반장 선거에 나갔는데, 다른 애들이 일곱 명이나 같이 나왔어요!
(꼭 반장이 되고 싶음!!)
중학교가 싫어요. (왜~애?)
초딩 때보다 집에서 멀어져서요.
(진단서 내고 근거리 배정을 못 받았니?)
받았어요. 친구랑 떨어져서 싫어요.
(누군데?)
ㄱ.ㄴ.ㄷ.
(여자 친구?).
빙그레.
(잘 될 거야~~ ㅎㅎ 귀여운 것)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나면 마지막으로 나랑 인증 샷 하나, 그리고 명랑하게 집으로.
아이는 좌심 형성부전 증후군[사진1]이라는, 단심증 중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복잡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병에 대하여,생후 일주일에 긴급한 폐동맥 밴딩 수술,
생후 두 달에 폰탄 수술을 위한 일차 수술,
생후 네 달에 이차 수술(양방향성 상대정맥-폐동맥 문합),
이어서 세 돌 직전에 폰탄 수술[사진2]을 받음으로써 계획된 치료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폰탄 수술 후 7개월 만에 단백 상실성 위장증(Protein-losing enteropathy)이 발생하였다. 너무도 일찍 치명적인 합병증이 온 것이다.
설사를 심하게 하고, 얼굴은 붓고, 배는 불러오고……
혈액 속 단백질이 장내로 빠져 나가 단백질과 칼슘 수치가 떨어지면서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나며, 차차 면역기능이 저하되므로 감염에도 취약하게 되어, 결국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는 합병증이다.
여러 가지 약제들을 복용하고, 칼슘과 알부민 주사로 보충해 주며 경과를 보게 된다.
반응이 없으면 헤파린을 피하주사로(당뇨 환자들이 인슐린을 맞듯이) 꾸준히 투여하기도 한다.
이 어린 것에게 수 없이 많은 주사를 놓아야 하니 옆에서 보는 부모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드디어 아이 엄마는 용기를 내어 자격 시험에 도전하여 스스로 아이의 주사를 감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무려 3년 동안, 교과서에 실려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으나 증상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심장 이식 대기 명단에 등록을 했다.
기회가 오려나???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그러던 중, 합병증이 나타난 지 3년 6개월 만에 혈액 단백질 수치가 오르기 시작했고, 증상들이 좋아졌다.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반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마다 찍는 아이와 나의 인증샷은 쌓여가고 있다.
증례 2.
세 돌이 막 지난 아이는 이미 모 대학병원에서 폰탄 수술까지 받은 후였다.
좌심 형성부전 증후군으로 태어나
생후 5일 째에 일차 수술(Norwood op),
생후 6개월에 이차 수술(양방향성 대정맥-폐동맥 문합술),
생후 2년 6개월에 폰탄 수술과 삼첨판막 성형술,
생후 2년 8개월에 인공 심박동기 거치술을 차례로 받았으나,
심실 수축력이 20% 미만의 심한 심부전 상태로 나에게 왔다. 중환자실로 입원하여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등록과 동시에 심장 이식에 필요한 검사들을 하던 도중 심정지가 발생하였다. 다행히 심폐 소생술에 반응하였으나 에크모(심-폐기능 보조 장치)에 의존한 채로 연명하게 되었다[사진3].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가슴을 열지 않고 목에 있는 혈관을 통해 에크모를 구성할 수 있는 도관도 마지막이었다.) 세 돌이 막 지난 체중 12kg 아이가 심장 이식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일 주일 만에, 나이 27세, 체중 52kg, 같은 혈액형을 가진 뇌사자가 나타났다.
체중 차이가 4배 이상으로 수술 수기 상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필자가 이미 공여자와 수혜자 사이의 체중 차이가 큰 경우의 심장 이식에 대한 수술 결과를 학회지에 보고한 바 있었다. 보호자에게 이러한 정황들을 설명하고 심장 이식 수술에 들어갔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사진4].
이제 아이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식 수술 후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림프암 치료를 비롯한, 그간에 있었던 긴 이야기를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증례 3.
아이는 이제 스물 다섯이다.
좌심 형성부전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다
생후 보름이 지나 일차 수술(Norwood operation)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의 회복은 더디었고 기관 절개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결국 길고 긴 싸움을 이겨냈고,
생후 14개월에 이차 수술,
생후 네 돌 무렵에 폰탄 수술까지 받았다
다행히 이후에는 초기 간경화 소견 외에는 별다른 합병증 없이 잘 커서 학업에 충실하면서 조기 축구 모임에도 열심히 나간다고 한다. 아마도 국내에서 좌심 형성부전 증후군으로 폰탄 수술을 받은 가장 고령(?)의 친구 중 하나일 것이다.
@ 단백 상실성 위장증(Protein-losing enteropathy)이란?
폰탄 수술 후 어쩔 수 없이 처하게 되는 '우심실 부재'로 인한 결과이다.
우리 몸의 중심 정맥 혈류가 낮은 우심방 압력(<5 mmHg) 대신에, 높은 폐동맥 압력(30/15 mmHg)에 직접 지속적으로 노출되므로 장 림프액 순환에 문제가 생겨, 장 점막이 붓고, 혈액내 단백질이 장내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병태 생리학(Pathophysiology)적으로는 폰탄 수술을 받은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상황이나, 실제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약 2.5~10%로 알려져 있다. (마치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는 3261 만명이나 치명률은 0.1% 인 것처럼.)
앞선 연재들에서 정상 심장은 두개의 심실을 가져야하며, 특히 좌심실의 구조적인 특징이 중요함을 강조했던 것을 감안하면, 구조적으로 취약한 우심실 하나만으로 기능하는 심장의 상황에서, 단백 상실성 위장증의 발생 빈도는 높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위험은 매우 크다. 앞에서 살펴본 환자들의 경우에서 증상의 발현은 각각 수술 후 12년, 수술 후 7개월 만에 나타난 것처럼, 그 발생을 수술 후 경과 기간이나 해부학적 차이점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치료에 대한 반응도 다르다.
즉 우리가 이러한 합병증에 대해서 더 알아내야 하고 고민해야 되는 여지가 남아있는 것이다. 아울러 근본적 문제인 '우심실 부재'라는 상황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 지가 흉부외과 의사에게 주어진 커다란 숙제이다.
서동만 교수 (seodm@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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