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전화에 소름 끼친다고"...숨진 교사 동료들의 제보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사건과 관련해 동료 교사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21일 “고인의 사인이 개인적 사유에 있다는 일부 보도가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짊어져야 할 고질적인 문제를 전혀 짚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 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2n년부터 2023년까지 서이초등학교에서 근무했었거나 현재도 근무하는 교사들의 제보를 받았다”며 “용기를 낸 제보 교사들 또한 신상이 특정될까 두려워하는 상황이므로 제보 교사가 근무한 해를 202n년으로 기록한다”며 그 내용을 공개했다.

서울교사노조에 따르면 서이초에서 202n년 학교폭력을 담당했던 A교사는 근무 당시 한 학부모로부터 “나 OO 아빠인데 나 뭐하는 사람인지 알지? 나 변호사야!”라고 들었다고 했다.

A교사는 “서이초의 민원 수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며 “학교폭력 민원과 관련된 대부분의 학부모가 법조인이었다”고 떠올렸다. 또 “학부모 민원이 너무 많아, 대부분의 교사들이 근무를 매우 어려워했다”고 전했다.

올해 고인과 같은 학년 소속은 아니었으나 같이 근무했던 B교사는 “고인 학급에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어 고인이 매우 힘들어 했다”고 제보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교사 C씨는 “고인 학급 학생이 연필로 뒷자리에 앉은 학생의 이마를 긋는 사건이 있고 난 후,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학부모가 고인의 개인 휴대전화로 수십 통의 전화를 했다”며 “고인은 ‘내가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고, 교무실에도 알려준 적이 없는데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모르겠다. 소름 끼친다. 방학 후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야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C교사는 또 “고인 학급에 ‘선생님 때문이야’라고 수업 시간에 소리를 지르는 학생이 있다고 내 앞에서 재연했고, 고인은 출근할 때 그 학생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제보했다.

D교사는 “고인 학급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그은 사건과 관련해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고인에게 ‘애들 케어를 어떻게 하는 거냐’,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서울교사노조는 이 같은 제보 내용을 공개하며 “아직 경찰에선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외부 정황이 없다’는 의견만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과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을 추가 제보를 받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과 교육 당국은 유족을 비롯한 전국의 교사 등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진상 규명을 위해 철저한 조사를 거듭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오전 11시께 서이초등학교 안에서 20대인 1학년 담임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CCTV 등을 확인해 타살을 의심할 만한 흔적이 없어 해당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숨진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로 힘들어했다거나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발견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추가로 제기되는 의혹도 모두 들여다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이초도 20일 교장 명의 입장문을 통해 숨진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다며 “해당 학급에서는 올해 학교폭력 신고 사안이 없었고, 학교폭력과 관련해 해당 교사가 교육지원청을 방문한 일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수원에서 열린 전국 시·도 교육감과의 간담회에서 “교사가 학교 내에서 생을 마감한 것을 두고 심각한 교권 침해가 원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21일 서초구 교총회관에서 현장 교원들과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열어 교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청 본청과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등에 숨진 교사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21∼23일 사흘간 운영할 계획이다.

박지혜 (noname@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