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좋았던 외인 1번, 금세 사그라들었던 이유는…

김종수 2023. 7.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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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토리⑨] 원년부터 5시즌 기준, 외인 포인트가드 돌아보기

 

최근 농구 팬들 사이에서 ‘외국인 가드’는 흡사 유니콘같이 느껴진다. 분명 존재하기는 했지만 본지가 워낙 오래되어서 어느덧 낯설게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외국인 가드는 KBL의 외국인선수 제도와 궤를 함께 한다. 장단신으로 나누게되면 영입 비율이 부쩍 늘어지지만 그렇지않은 경우에는 어지간히 잘하는 선수라해도 구단별 선호도에서 멀어지기 일쑤다.


각팀이 외국인 선수에게 공통적으로 바라는 부분과 가드라는 포지션의 활용성이 맞지않는 이유도 크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드가 문제가 아니다. 신장 등 사이즈적인 측면에서 최소한으로 바라는 조건의 유무가 중요하다. 공격력이 아무리 좋아도 상대 장신 외국인 선수를 수비에서 감당하지 못한다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모 해설위원의 발언으로 화제가 된 ‘스테판 커리가 KBL에 와도 (자밀)워니는 누가 막을 것인가?’라는 논란성 발언이 나오게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현재같은 1인 출전제에서는 더더욱 쓰기가 힘들다. 물론 어지간한 빅포워드급 사이즈를 가진 기량좋은 가드라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장신 외국인 가드를 데려온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쉽지않다.


외국인 가드의 전성시대는 역시 프로 초창기였다. 장단신으로 영입기준이 확실히 나뉘어져있던 상황에서 눈에 확띄는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선수가 많았던지라 다양한 스타일의 가드가 KBL무대를 밟았다. 원년 포함 초창기 다섯 시즌을 살펴보면 포인트 가드로는 칼레이 해리스, 제럴드 워커, 토니 매디슨, 에릭 탤리, 마이클 엘리어트, 케이투 데이비스, 키이스 그레이, 아도니스 조던, 드와이트 마이베트, 토니 러틀랜드, 스테이스 보스먼 등이 있다.


슈팅가드로는 케빈 비어드, 래리 데이비스, 버나드 블런트, 숀 이스트윅, 토니 해리스, 존 다지, 퀸시 브루어, 쉔드릭 다운스, 로데릭 하니발, G. J. 헌터, 루이스 로프튼, 숀 더든 등이 활약했다. 원년 시즌만해도 외국인 포인트가드가 각광받았으나 2번째 시즌부터 점점 숫자가 줄어들더니 5번째 시즌에 들어서서는 한명도 없을 정도로 전멸해버렸다.


외국인 1번에게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기기에는 확실한 한계를 느꼈고 그럴바에는 어렵게 리딩을 시키느니 득점에 집중하는 슈팅가드 쪽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슈팅가드 역시 포인트가드보다 조금 더 쓰여졌을뿐 가드 포지션 자체의 인기는 갈수록 떨어져갔다. 중간에 외국인선수 신장제도가 변하기도 했지만 가드보다는 스윙맨이나 언더사이즈 빅맨 쪽이 성적을 내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방향으로 각팀들의 생각이 바뀐 탓이 크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성비가 떨어진 것은 맞지만 외국인 포인트가드가 실패만 한 것은 아니다. 프로농구 개막을 앞두고 진행됐던 초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당시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있던 기아는 언더사이즈 빅맨 유형의 클리프 리드(52‧190.4cm)를 뽑는다. 신장은 크지않았지만 골밑 몸싸움이나 리바운드 쟁탈전에 강한 모습을 높이샀다.


강동희-허재 라인이 건재했던 기아 입장에서는 가드는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팀은 사정이 달랐다. 어떤 외국인선수를 뽑아야 팀 성적에 도움이 될지 경험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화려한 개인기가 돋보이는 1번 유형이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를 입증하듯 2순위 SBS와 3순위 나래는 각각 제럴드 워커(49‧184cm)와 칼레이 해리스(53‧183㎝)라는 외국인 포인트가드에게 높은 지명권을 사용한다.


실제로 이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원년 선발된 외국인 1번은 모두 5명이었는데 기량이나 성적에서 둘은 나머지 셋보다 확실히 앞섰다. SBS같은 경우 오성식이라는 검증된 국가대표 1번을 보유하고 있었던지라 어찌보면 가장 외국인선수가 덜 필요한 포지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김동광 감독은 엄청난 탄력을 활용해 빅맨들 머리 위로 덩크슛을 펑펑 찍어대고 화려한 드리블로 코트를 휘젓고 다니는 워커의 개인기에 매료됐다. ​


단순히 개인 기량만 빼어난 것이 아닌 상대의 허를 찌르는 노룩패스, 빨랫줄같은 속공패스 등 다양한 패싱 플레이에 더해 빠른 손에서 나오는 스틸도 위력적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화려함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중 단연 으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워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던 것이 사실이다.


분명 국내 선수들과 격을 달리할 만큼 신체능력, 개인기가 탁월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료들간 호흡 등에서 아쉬움이 많아 활용도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워커같은 경우 자신과 잘맞는 멤버들 사이에서 쇼타임 농구를 펼치기에는 좋은 유형이었다. 하지만 리딩, 패싱플레이 등으로 팀플레이를 끌어올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던지라 '빛좋은 개살구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원년 기준 외국인 1번의 덕을 가장 많이 본팀은 단연 나래였다. 나래는 정인교 외에는 대부분 선수가 무명일 정도로 토종 전력이 좋지않은 팀이었다. 그로인해 나산과 함께 꼴찌후보로 꼽혔지만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며 최대 돌풍의 팀으로 떠오른다. 여기에는 해리스 덕이 컸다.


득점왕을 차지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리스는 무늬만 포인트가드였을뿐 그냥 앞선의 돌격대장이었다고 보는게 맞다. 상당수 볼을 독점하다시피한채 내외곽을 휘젓고다니며 주포 역할을 했다. 당시 나래의 패턴은 해리스가 개인기 위주로 공격을 하다가 여의치않으면 골밑의 제이슨 윌리포드와 외곽의 정인교에게 볼을 빼주는게 대부분이었다. 

 


당시 대우 소속으로 워커, 해리스와 경기를 치러봤던 조성훈(50‧185cm)은 “워커는 뭐 저런 선수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플레이 하나하나마다 화려함이 넘쳐흘렀다. NBA중계에서나 보던 플레이를 실제로 보니 신기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비해 동료들을 살려주는 플레이 등에서는 국내 정상급 포인트가드들보다 나아보이지 않았다. 해리스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득점머신이었다. 경기내내 쉴새없이 득점을 몰아치는 통에 수비하기 매우 까다로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대우에서 공격형 가드로 상당한 임팩트를 남겼던 옛 동료 스테이스 보스먼(48·190cm)과 해리스 중 누가 더 나은 것 같냐는 질문에는 “내외곽을 가리지않는 폭발적인 득점력에 한 성깔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국내 무대에서의 영향력을 보면 해리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해리스가 운동능력, 신체 밸런스 등에서 더 낫다. 정신없이 코트를 헤집고 다니면서도 어떻게 저런 자세에서 공격을 성공시키지하고 허탈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워낙 공격옵션이 많은지라 득점력을 꾸준하게 가져갔다. 반면 보스먼은 슛이 터지는 날은 어떤 외국인 공격수 못지않지만 상대적으로 슛감의 영향을 크게 타는 선수인지라 기복도 심했다. 개인적으로는 보스먼과 무척 친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하는게 맞을 듯 싶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가장 과소평가되거나 덜 알려진 외국인 포인트가드를 꼽으라면 광주 나산 시절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겼던 아도니스 조던(49‧177.8cm)이 떠오른다. 조던은 플레이의 화려한 맛은 적었지만 대신 실속이 높은 스타일의 1번이었다. 단신 중에서도 단신이었으나 탁월한 테크닉과 완급조절을 바탕으로 주포와 리딩가드 역할을 모두 해줬다.


흑인 가드 특유의 묘기성 플레이보다는 간결하고 정확한 움직임을 통해 팀원들과 호흡을 맞춰나가며 팀 승리를 우선시하던 선수였다. 경기당 2.9개를 던져 45.8%의 성공률을 기록할 정도로 굉장히 정확한 3점슛 능력을 자랑했다. 워커, 해리스, 보스먼 등은 어떤 멤버와 함께 뛰느냐에 따라 경기력이 달라질 스타일이었다.


조던은 달랐다. 그러한 부분과 관계없이 자신이 맞춰나갈 수 있는 성격과 플레이스타일을 가진 선수였다. 나산 ‘헝그리 베스트5’의 돌풍을 주도하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가 불의의 부상으로 시즌을 완주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 그지없다. 만약 여러시즌 동안 꾸준히 뛸 수 있었다면 조던을 기억하는 팬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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