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지구가 우리 집에…생태계 창조자는 희열을 느낀다 [ESC]

한겨레 2023. 7.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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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커버스토리 테라리엄·비바리움 인기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문화실험공간 호수’의 이끼 테라리엄 클래스에서 수강생들이 만든 작품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부서 안에서 큰 목소리가 확실히 줄었습니다. 테라리엄을 놓으면서 부서원의 감정이 조금 안정된 듯해요.”

블로그 활동명 ‘그린백작’인 이영진(가명·46)씨가 말했다. 그는 수도권 대용량 화력발전소의 보일러, 터빈, 연소기를 유지·정비하는 부서에서 일한다. 일터 업무 강도가 세고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데, 이씨는 그런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직접 만든 테라리엄을 가져다 놨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잠시 멍때리기 좋은 것 같습니다. 더운 현장에 다녀온 직원들이 테라리엄 앞에서 물 한잔 마시며 여유를 찾는 모습을 종종 보죠.”

불편한 침묵을 타개할 이야깃거리도 된다.

“외부 방문객의 어색한 시간도 줄여줍니다. 함께 테라리엄을 보고 얘기를 나누면서 긴장도 풀고, 잠시 쉴 수 있어요.”

테라리엄은 땅을 뜻하는 ‘테라’(terra)와 장소를 의미하는 접미사 ‘아리움’(arium)의 합성어로, 투명한 용기 속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뜻한다.

밀폐식 테라리엄은 그 자체로 순환 체계를 갖춘다. 식물이 증산작용으로 배출한 수분이 병뚜껑에 맺혔다가 ‘비’가 돼 내린다. 흙과 암석 그리고 무엇보다 식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마치 자연의 한 조각을 떼어 온 듯하게 조성하는 게 핵심이다. 크기는 한뼘짜리 유리병부터 가로·세로·높이가 수미터에 달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테라리엄이 작은 동물도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면 ‘비바리움’이 된다. 최근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김대호 아나운서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성스레 가꾸던 바로 그 유리 상자다.테라리엄과 마찬가지로 식물 생태계가 기본이지만, 비바리움은 양서·파충류를 키우기 위한 인공 서식지다. 여기에 수생태계까지 추가되면 ‘팔루다리움’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관리하기가 까다롭다.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문화실험공간 호수’의 이끼 테라리엄 클래스에서 한 수강생이 배양토 위에 돌 조각을 배치한 뒤 고사리를 심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이끼·고사리·개구리·도롱뇽…

“가장 기본 중 기본은 테라리엄이죠.”

환경의 날(6월5일)을 맞아 지난달 21일까지 서울 성동구 모나미 콘셉트스토어 성수점에서 비바리움 전시회를 연 작가 삭(SAC·29)이 말했다.테라리엄, 비바리움, 팔루다리움의 핵심은 ‘식물’이다.

국민 대다수를 실내로 몰아넣은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국내 식물 소비량은 증가했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국민 1인당 화훼 소비액은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3.5%씩 감소했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021년에는 6.1% 증가하며 16년 만에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였다. 인스타그램에서 ‘플랜테리어’, ‘반려식물’, ‘식집사’를 해시태그로 단 게시물은 각각 137만, 115만, 40만개나 된다. ‘테라리엄’ 관련 해시태그도 20만개로, 비슷한 취미로 묶이는 ‘분재’보다 2배가량 많았다.

테라리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면 먼저 스스로 식물 기르는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 삭은 “아무리 비싸고 희귀한 식물도 죽으면 끝”이라며 “입문자들은 서서히 난도를 올려야 한다”는 현실적 조언을 건넸다. 입문자에게 주로 추천되는 식물은 이끼·고사리·다육식물·선인장이며, 용기는 지름 30㎝ 안팎으로 너무 크거나 작지 않은 것을 골라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덜하다.

관리의 기본은 습도와 온도다. 5년째 테라리엄 수업을 열고 있는 배성숙 한국테라리움협회 서울남부지부장은 입문자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로 과한 물 주기와 직사광선을 꼽았다.

“테라리엄에 배수층은 있지만 배수구는 없어요. 물이 고여 있으면 식물이 거뭇거뭇하게 썩을 수 있으니 스포이트로 빨아내야 해요. 또 이끼나 고사리처럼 반그늘에서 자라는 식물을 햇빛에 내놓아 갈변시키는 일도 많아 주의해야 해요.”

여러 종을 하나의 테라리엄에 심을 땐 생육 환경이 같은 것들끼리 모아야 한다. 습한 환경에 사는 이끼와 사막 식물인 선인장을 한곳에 심으면 함께 생장시키기 어렵다. 서로 요구하는 빛의 양과 습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오토프 갤러리’ 작가 삭이 자신의 팔루다리움에서 키우는 뱀파이어크랩. 삭 제공

“식물이 공간에 잘 적응하면 동물도 무조건 잘 살아요. 디자인은 취향의 영역이고요. 식물이 얼마나 본연의 모습으로 잘 자랐나, 얼마나 잘 관리됐나가 중요합니다.”

‘이상적인 비바리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삭의 답이다. 물론 비바리움에는 공기를 순환시켜줄 환기와 개구부, 열 조절용 램프, 탈출 방지용 철망, 배설물과 오염물질을 청소하는 분해생물 등이 필수다. 특히 삭은 동식물 모두에게 환기가 잘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완전 밀폐형보다는 반밀폐형 구조를 권했다.

“작은 동물이 들어가면 배설물도 생기니까 관리하기가 더 까다롭죠.”

동시에 작은 동물은 식물을 더 풍성하게 기를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동물이 들어간 비바리움 또는 팔루다리움에서 식물이 더 잘 자라요. 배설물이 영양분이 되는 거죠.”

단, 동물 개체수와 크기는 식물과 사육장의 크기에 비례해야 식물도 망가뜨리지 않는다. 삭은 비바리움에서 키우기 쉬운 동물로 개구리와 도롱뇽을 추천했다.

식물이 느리게 자라는 테라리엄

유튜브 채널 ‘한뼘수조’에서 이끼 테라리엄 만들기를 하고 있는 장면. ‘한뼘수조’ 화면 갈무리

직장인 한민지(가명·31)씨는 퇴근 뒤 지친 마음을 ‘풀멍’과 ‘물멍’으로 달랜다.유튜브 채널 ‘한뼘수조’를 운영하는 그는 이름답게 딱 한뼘짜리 작은 테라리엄에 핀셋으로 오밀조밀 식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씨는 “새로운 테라리엄을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 그래도 지름 10㎝ 이하 작은 통 안에 섬세하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식물들이 자라며 생태계가 구성되는 걸 보면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직장인 김인선씨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테라리엄을 직접 조성했다. 김씨는 “처음엔 작은 테라리엄으로 시작했고, 만든 지 두달이 지나자 이끼와 정글플랜츠가 유리병 안에 가득 차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최근에는 욕심내서 좀 더 큰 30큐브(가로·세로·높이 30㎝)짜리 테라리엄을 만들었다”며 “곧 비바리움을 꾸며서 게코도마뱀도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우영(가명·44, 블로그 활동명 ‘잔월청풍’)씨는 15년 전부터 테라리엄을 가꿨고 동물을 키우며 비바리움까지 나아갔다. 그는 “계절에 상관없이, 특히 한겨울 창 너머 풍경과 상관없이 내가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최근 그는 ‘이 구역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난초 테라리엄인 ‘오키다리움’까지 시작했다.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였던 고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에겐 자연에 대한 선천적 갈망, ‘녹색갈증’이 있다고 했다. 인간은 자연을 가까이할 때 행복하고 평안하며 안정감과 영감을 얻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 만 65살 이상 국민기초생활수급자·기초연금수급자 중 돌봄이 필요한 1400명에게 우울감과 외로움 해소를 위해 반려식물을 제공했다. 201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서울시가 지난 1월 발표한 ‘2022 반려식물 보급사업 결과 보고’를 보면, 사업 참여자의 94.1%가 반려식물을 돌보며 생활에 활력을 얻는다고 답했다. 반려식물을 바라보고 잎을 닦는 돌봄을 통해 행복감을 느낀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테라리엄과 비바리움을 가꾸고 있는 이들도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희열과 정서적 위안을 얻는다’고 입을 모은다.

작가 삭이 대전 파충류숍 ‘디어렙’에 만든 비바리움에 사는 베일드카멜레온. 삭 제공

작지만 온전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테라리엄을 보면 경이롭다. 하지만 인공적인 생태계 조성이 생물의 자연스러운 생장을 저해하는 측면은 없을까. 배성숙 지부장은 “테라리엄 속 흙에는 비료나 거름을 섞지 않아 식물이 느리게 자라난다. 일부러 양분을 주지 않거나 약품 처리를 해서 성장을 막는 것과는 다르다”며 식물이 공간 크기에 맞춰 자라게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바리움엔 그곳에서 살아갈 동물의 습성에 맞춘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문대승 서울연희실용전문학교 반려동물계열 전임교수는 비바리움에 동물이 살아갈 토양과 구조물 조성이 가능하다면서도 “완벽한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기르는 동물에 대한, 그들의 서식지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바리움이 가진 관상 효과가 크지만, 보기 좋은 것보다도 생물의 속성을 숙지하고, 생물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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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면 블로그

테라리엄·비바리움 관련 정보의 보고는 블로그다.

“진짜 고수들, 양질의 자료는 블로그에 많아요. 많은 입문자들이 ‘처음에 뭘 검색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요, 레판테스, 운시나타 등 관심 있는 식물이나 동물 이름부터 검색해보세요.”

작가 삭의 조언이다. ‘그린백작’과 ‘잔월청풍’ 모두 블로그에서 활동 중이며 요령과 지식을 아낌없이 공유해온 재야의 고수들이다. 마음에 드는 동식물을 발견했는데 이름을 모른다면 사진을 찍어 ‘구글 렌즈’나 ‘네이버 렌즈’ 앱, 그리고 식물도감 앱 ‘모야모’를 사용하면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끼 테라리엄 클래스에서 수강생들이 재료를 꺼내 테라리엄을 만들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희귀 애완동물이 아닌 흔한 반려동물을 꿈꾸는” 서울 중구의 파충류 가게 서울렙타일은 비바리움 입문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도 제공한다. 서울렙타일 블로그 카테고리 중 ‘집사의 길’에는 소동물을 기를 때 필요한 각종 정보와 지식이 축적돼 있다. 네이버 카페 ‘파충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비바리움 파크’에도 참고할 만한 정보가 많다.

간단한 테라리엄·비바리움 체험을 해보고 싶다면 디아이와이(DIY) 키트를 주문하거나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면 된다. 배성숙 지부장이 서울 송파구 문화실험공간 호수에서 진행하는 ‘이끼 테라리엄 클래스’는 오는 8월까지 이어진다.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는 ‘두꺼비 서식처 테라리엄 만들기’가 8월10일까지 운영된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비오토프 갤러리에선 초급자 대상의 테라리엄·비바리움 제작 수업이 진행 중이며, 8월에는 팔루다리움 수업도 개설된다.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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