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은 유니콘이 아니다”
2016년 〈나를 잊지 말아요〉로 데뷔한 이윤정 감독은 최근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부대표로서 저작권법 개정을 촉구하는 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감독, 작가 등 창작자들(저작자)이 영상물의 최종 공급자로부터 보상받을 권리를 갖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의 ‘지구적’ 흥행에도 넷플릭스와 별도 수익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식재산권(IP)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2021년 ‘영화감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영화감독의 평균 연봉은 1800만원이다. 이윤정 감독에게 ‘한국 영화의 위기’를 물었다.
감독들은 엄혹한 시기를 어떻게 버티고 있나.
버티는 건 원래 잘하는 사람들이다. 기회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직종이고 기회는 항상 부족했다. 다만 업계의 상황과 전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6개월 단위였다가 요즘은 2개월 단위로 바뀌는 것 같다. 작품을 준비해서 발표하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2년, 평균적으로 4년, 더 길게도 걸리는데 그런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산업의 동향에 적응해 어떤 기획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창작 직군이 처한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다.
영화감독들이 OTT로 가고 있는데.
넷플릭스의 투자 방향조차 짧은 주기로 바뀌고 예측이 어렵다. 그런 부분에서 저작권 운동과 연결이 된다. 혼란의 시기일수록 창작자들이 묵묵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걸 묵묵히 해서 내놓았을 때 모든 창작자가 행운을 누리지는 않지만 일부 작품이 산업의 다양성이나 진보를 떠받치게 된다. 창작의 자유는 여유와 권한에서 나온다. 권한은 성공한 일부에 해당하고, 자유는 금전을 의미한다. 현재 감독들 대부분 제작사에 종속되어 있고 투자가 가능할 것 같은 기획에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그조차도 씨가 말랐다. 스스로를 먹여 살리면서 내 것(영화)을 준비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지금의 기획을 통해 얻는 것 외에도 과거 작품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입이 생계 일부를 보전해줘야 한다.
최근에 발생한 문제 같지는 않은데.
문제 제기를 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한국 영화의 수익 구조가 극장에 집중되어 있어서 극장이 잘될 때에는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제작사도 수익이 극장에만 집중되어 있지 않은 지 오래다. 팬데믹 시기 한국이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작품을 찍었다. 신작이 멈춘 세상에서 신작이 나오니까 넷플릭스에서 한국 작품이 두드러진 측면이 있다. 반대로 코로나 때 사람들이 예전 작품을 많이 보기도 했다. 콘텐츠에 돈이 몰리고 플랫폼 산업이 팽창하고 있는데 이럴 때 수익 일부를 작품 만든 사람과 나눠 가져야 다음 작품을 준비할 수 있다.
창고에 있는 한국 영화가 다 개봉되면 분위기가 살아날까.
묵은 영화가 사라지면 새로운 재미난 영화가 나올 거라는 기대는 창작자를 유니콘처럼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어떤 순간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유가 있어야 작품도 나온다. 더한 위기가 올 거다. 주변을 봐도 많은 감독이 떠났고 조감독은 데뷔하지 않으려 한다. 투자가 없기 때문에 시나리오도 쓰지 않는다. 이 산업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 너무 단기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직접 쓰려는 사람들은 영화가 아니라 웹소설, 웹툰으로 가기도 한다. 그쪽도 힘들지만 더 이상 영화감독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극장의 위기는 영화의 위기인가.
2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집중력은 공간과 관련되어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감정과 사상을 느끼고 호흡하며 볼 수 있는 장르라 사회적 파급력이 있었다고 본다. 영화산업이 사라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있다. 콜롬비아가 한국으로 치면 아침 드라마의 메카인데 서구권에 콘텐츠를 제공한다. 영화산업 자체는 미미하다. 그렇게도 영상산업이라는 게 유지는 되지만 문화적 가치를 탄탄하게 갖춘 산업인가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도 결국 영화가 그 부분을 견인한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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