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의 계절, 극장으로 돌아올까
〈범죄도시 3〉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날, 주연배우 마동석이 SNS에 글을 올렸다. “8년 전 작은 방에 앉아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영화의 기획을 시작했다.”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서울 가리봉동 일대의 왕건이파, 흑사파 사건 등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범죄도시〉를 구상했다. 그해 1000만 관객을 모은 〈베테랑〉에 카메오로 출연해 ‘아트박스 사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흥행이 〈범죄도시〉 1·2편에 이은 ‘세 번째 기적’이라고 말한 그가 벌써 시리즈의 8번째 작품까지 계획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국 영화로는 역대 21번째이고 지난해 5월 개봉한 〈범죄도시 2〉 이후 첫 1000만 영화다. 시리즈의 연속된 흥행으로 ‘잔칫집’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극장가는 의외로 조용하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투자배급사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사랑받은 건 감사한 일이지만 잘되다 보니까 약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라며 공식 메시지 이외의 발언을 삼갔다. 조심스러운 이유는 뭘까. 〈범죄도시 3〉 개봉 이전의 상황에 힌트가 있다.
올해 〈범죄도시 3〉를 제외하고 100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는 〈교섭〉과 〈드림〉 두 편에 불과하다. 각각 임순례, 이병헌 감독의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월로만 한정하면 한국 영화 매출액은 216억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5월 한국 영화 매출액 평균(554억원)의 39% 수준에 불과하다. 관객 수 역시 229만명으로 2017~2019년 5월 한국 영화 관객 수 평균(673만명)의 34%다. 5월 마지막 날 〈범죄도시 3〉가 개봉했지만 이전까지의 부진이 극심해 2009년 이후 팬데믹 기간을 제외한 5월 중 한국 영화 매출액, 관객 수, 점유율 모두 최저치를 기록했다. ‘잔인한 5월’이었던 셈이다.
1년 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기시감이 든다. 지난해 5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후 개봉한 〈범죄도시 2〉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기대를 모았다. 칸 영화제에서 남자배우상을 탔던 〈브로커〉와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이 연달아 개봉하고 〈외계+인〉 〈비상선언〉 등 대형 한국 영화가 뒤를 이었지만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한산: 용의 출현〉과 〈공조 2〉가 500만 관객을 넘겼다. 팬데믹이 끝나면 관객들이 돌아올 거라 예상했던 영화계의 기대는 빠르게 식었다.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 해석이 낙관적으로 보일 만큼 한산한 영화관 자체가 ‘뉴노멀’이 된 것 같았다.
분위기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2022년 한국 영화산업 시장 규모는 1조7064억원으로 집계됐다. 팬데믹 이전이던 2019년의 68% 수준을 회복한 수치다. 극장 매출은 2019년의 60.6%에 불과했다. 2019년은 한국 영화가 역대급 매출을 기록한 해다(〈그림〉 참조). OTT를 포함한 ‘극장 외 시장’ 매출 규모는 4539억원으로 전년 대비 18.3% 증가했다. 2022년 한국 국민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2.2회로 2019년(4.4회, 전 세계 1위)의 절반에 그쳤다.
최근에는 CGV가 재무구조 안정화를 위해 1조원(유상증자 5700억원에 모회사 CJ의 현물출자 4500억원을 합친 규모)에 이르는 대규모 자본 확충에 나섰다.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도 3년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관객 수 조작 의혹 수사를 위해 경찰이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압수수색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관의 위기이자 한국 영화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 연구본부 영화정책연구팀 정혜란 연구원은 “올해 들어 한국 영화 점유율이 최저치를 경신한 달도 있고 일본 영화에 밀리는 등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블록버스터 중심 관람 행태가 두드러졌다면 올해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나 〈스즈메의 문단속〉 같은 중간 크기 혹은 작은 영화들이 흥행했다. 〈범죄도시 3〉를 시작으로 상반기보다 점유율이 올라갈지 관심 있게 보고 있지만 코로나 이후 100만 관객이 넘는 한국 영화도 드물어졌다는 점에서 예측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침체된 극장가의 변화를 보여주는 풍경 중 하나가 ‘개싸라기(개봉 첫 주보다 2주 차에 더 많은 관객이 드는 것을 뜻하는 영화계 은어) 흥행’ 현상이다. 과거에는 첫 주말 관객으로 승부를 보는 모양새였다면 영화관을 찾는 횟수가 줄면서 영화 선정에 신중해졌다. 개봉 첫 주에 반응을 보고 평이 괜찮다 싶으면 극장을 찾는 식이다. 〈모가디슈〉 〈탑건:매버릭〉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이 ‘뒷심’을 발휘했다.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요인은 OTT의 영향력 확대와 티켓 값 상승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OTT를 통한 시청각 경험이 극장을 대체했고 영상을 소비하는 패턴 자체가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다 보니 극장에서는 ‘큰 화면으로 볼 만한 영화’ 위주의 관람 형태가 자리를 잡았다. 〈아바타:물의 길〉 같은 영화를 4DX 상영관(영화 장면에 따라 의자가 움직이거나 향기가 난다)에서 관람하는 걸 선호하는 흐름과 연결된다. 6월21일 개봉한 영화 〈인드림〉의 신재호 감독은 “예전에는 큰 영화와 작은 영화로 나누어졌다면 이제 극장에서 볼 영화, OTT로 볼 영화로 나뉘는 것 같다. 큰 영화에 쏠리는 현상은 원래도 있었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심화됐다”라고 말했다. 서효림·오지호 배우와 작업한 〈인드림〉은 애초부터 극장 이외의 부가 판권 시장을 타깃으로 하긴 했지만 〈범죄도시 3〉가 대부분의 상영관을 차지하는 동안 언론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극장가는 침체됐지만 OTT를 중심으로 한국 콘텐츠는 호황이었다. 특히 넷플릭스의 독주가 뚜렷하다. CGV가 유상증자를 발표한 직후 한국을 방문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는 6월29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전 세계 회원의 60%가 한국 작품을 한 편 이상 시청했다. 지난 4년 동안 넷플릭스에서의 한국 콘텐츠 시청 수는 무려 6배나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은 지금까지 (드라마) 시리즈에 많은 투자를 했다면 앞으로는 영화, 논픽션 등에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K콘텐츠에 향후 4년간 25억 달러(약 3조2600억원)를 투자한다고 예고한 상태다.
OTT가 콘텐츠 플랫폼의 중심에 서면서 ‘홀드백’도 짧아지는 추세다. 극장에서 개봉된 영화가 VOD로 OTT나 IPTV에서 공개되기까지의 시간을 일컫는다. 〈한산:용의 출현〉과 〈비상선언〉 〈존 윅 4〉 등이 개봉 직후 OTT인 쿠팡플레이로 향하면서 기존 단계를 건너뛰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OTT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영화관에 갈 유인이 더 줄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이런 풍경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플랫폼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 경쟁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나 새로운 인재의 등장이 경색되고 위축된 시기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 같다. 토종 OTT도 사정이 어렵고 잘되는 OTT도 제한적이라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기회가 역설적으로 줄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창고에 100여 편 쌓여 있다
티켓 가격의 가파른 상승도 이런 요인을 부추겼다. 팬데믹을 거치며 요금이 약 40% 인상돼 1만원 언저리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로서는 허들이 높아진 셈이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대중이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서 인식했다기보다 여가 시간을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측면이 있는데, 가격이 오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라고 말한다. 인상 자체보다 볼 만한 영화가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2019년 한국 영화산업이 호황이던 시절 기획됐다가 코로나19를 거치며 개봉이 밀린 이른바 ‘창고 영화’들이 풀리던 시기에 티켓 가격이 올랐다. ‘덮어놓고 보러 가던 시절’이 지났는데 그 시절 기획된 영화가 쏟아지면서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셈이다.
극장도 할 말은 있다. CGV 황재현 전략지원담당은 “관객으로부터 받는 요금의 절반은 극장에 가고 절반은 투자·배급·제작사가 나눠 갖는다. 표준계약서라든지 주 52시간 도입 등으로 제작비 단가가 상승했다. 극장의 어려움만 해소하기 위해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니다. 또 OTT 가격과 비교하기보다는 연극, 놀이동산 같은 또 다른 오프라인 활동과 비교하는 게 맞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영화관이 코로나 시기를 버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CGV의 경우 그간 세 차례 희망퇴직을 받았고 무급휴직을 도입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전대미문의 감염병으로 어려움이 극심했다는 설명이다. 관객이 줄자 최근에는 콘서트장, 클라이밍장 등을 영화 관람과 결합하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극장가가 경색된 상황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심재명 대표는 30년 넘게 영화 일을 해왔지만 요즘이 가장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1988년 영화 홍보 일로 시작해 영화 제작자이자 기획자로서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건축학개론〉을 제작해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어온 그로서도 지금은 엄혹한 시기다. 그는 영화계 전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진단한다. “영화계가 각자 처한 위치에서 각자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수의 1% 말고 대부분이 굉장히 힘들다는 데 생각이 일치할 것이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발화 자체도 힘든 상황에서 암중모색을 하는 분위기다.”
단적으로 새로운 영화가 제작되지 않고 있다. 창고에 쌓인 영화가 아직 많기 때문이다. 박기용 영화진흥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제작비가 30억원 이상 든 한국 영화가 80편 넘게 창고에 쌓여 있다고 말했다. 10억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까지 합하면 110편 이상이다. 영화 기획-제작-투자-배급-수입-상영 등으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순환이 끊긴 것이다. 자연적으로 장편 상업영화 감독들의 데뷔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신입 감독은커녕 데뷔를 한 감독도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일부 검증된 감독들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구조다. 제작이 되고 있는 소수의 작품은 스타 캐스팅, 스타 감독 위주이고 신인 감독과 신생 제작사는 전멸이다”라고 말했다.
영화판에서 2~3년 후가 더 위기라는 전망이 나오는 건 과장이 아니다. 영화를 제작하려면 적어도 2년, 평균 4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현재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2~3년 후에는 한국 영화의 씨가 마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윤제균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대표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의미)’의 시기다. 칼을 갈듯 아이디어를 모으며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윤정 DGK 부대표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독려하기 위한 말씀인 것 같고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창고에 묵혀둔 영화를 다 내보내고 난 뒤에 투자자가 이제 신작에 투자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만들 작품이 없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투자가 경색되다 보니 ‘낯선’ 작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다음 1000만 한국 영화가 또다시 〈범죄도시 4〉라면 어떨까? 창작과 관련된 콘텐츠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다양성 고갈'의 염려가 나온다. 이른바 중박 영화를 찾아보기가 전보다 힘들다. 이게 왜 문제일까. 2004년 〈내 사랑 싸가지〉로 데뷔한 신재호 감독은 올해 3월 개봉한 영화 〈멍뭉이〉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반려견을 소재로 한 영화다. “차태현·유연석 배우가 출연했고 김주환 감독이 연출했다. 이름난 배우와 감독이다. 그 전에 1년에 한두 편 동물 영화가 나왔다면 그래도 익숙하게 여겼을 텐데 내내 안 나오다가 한 편 나오면 사람들이 굉장히 낯설게 느낀다. 〈외계+인〉 1부도 SF 장르 영화가 몇 편 나온 다음에 나오면 자연스러운데 갑작스러운 감이 있었다. 할리우드에는 히어로 영화가 워낙 많아서 조금 색다른 히어로 영화가 나와도 전혀 낯설지가 않은데 그런 저변이 없으니 시도 자체가 힘들어진 것이다. 사실 〈범죄도시〉 1편도 등장 당시에는 새로운 문법의 영화였다.”
영화인들은 〈기생충〉 같은 영화를 신입 감독들이 만들 수 없는 구조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낯선 감독이 낯선 문법의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를 받을 만큼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데뷔했을 때는 독립영화가 메인스트림에 침투해 다이내믹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여건이었다. 현재 영화산업에서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3년 사이 상황은 더 가파른 속도로 악화되었다.
영화계의 부진 속에서 기존 감독들도 OTT를 향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도 모호해 졌다. 이준익 감독은 〈욘더〉(티빙), 윤종빈 감독과 조의석 감독은 각각 〈수리남〉과 〈택배기사〉(넷플릭스), 이종필 감독은 〈박하경 여행기〉(웨이브)를 만들었다. 〈범죄도시〉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은 디즈니플러스에서 드라마 〈카지노〉를 연출해 호평받았다. 그는 지난 3월 ‘OTT 시대 K콘텐츠 글로벌 진출 사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베이스가 영화이다 보니 〈카지노〉가 끝난 뒤 영화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영화 현장이 좋지 않다. 영화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제작할 방법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공적자금 투입이 살길?
독립·예술 영화의 관객 수 역시 2018년부터 지속적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극장에 네 번 가던 습관이 두 번으로 줄었을 때 ‘작은 영화’의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수입 영화도 마찬가지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슬픔의 삼각형〉이 관객 5만명을 넘겼고,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는 1만명에 그쳤다. 외국 영화를 수입하는 한 배급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작은 영화여도 흥행하면 10만명 정도 관객이 들었는데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5만명이 한계인 시장이 되었다. 5만명도 낙관적으로 봤을 때고 ‘웰메이드’ 예술영화의 경우 관객 1만명을 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러닝타임을 버티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OTT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일반 관객으로 확장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배급사의 전략도 바뀌었다. 예술영화 관객들이 확실히 열광할 만한 요소에 집중하는 추세다. 타깃이 확실하고 소수가 여러 번 볼 수 있는 ‘N차 관람용’ 영화를 찾는 데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한국 독립영화계는 더하다. 영화 홍보마케팅을 담당하는 조계영 필앤플랜 대표는 “독립영화의 평균 관객 수가 너무 내려갔다. 1만명 들던 영화는 5000명으로 줄고 2만명 들 만한 영화가 1만명 정도로 내려갔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자체가 번거로운 일이 되었기 때문에 더 소수만 남는 게 아닌가 싶다. 독립영화에 남은 유일한 장점은 배우들과 스킨십이 가능하다는 점 정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독립영화는 제작 지원을 받아 만드는 경우가 많아 편수 자체가 줄지는 않았지만 관객 수가 확연히 줄고 물가는 올랐기 때문에 하나의 영화에 집중하기보다 담당 편수를 늘리고 있다. 조 대표는 “한국 영화의 위기라기보다 전 세계 관객들이 플랫폼에 맞게 빠른 속도로 적응한 결과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대로 더 본질적인 위기에 대한 진단도 나온다.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공식 자체가 깨졌기 때문이다. 음악과 마찬가지다. 레코드판으로 듣든 스마트폰으로 듣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소비하는 것이다. 조 대표는 “극장의 경험이 1980년대~199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에서 사실상 끝난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유튜브를 보기 시작한, 영화관 고유의 경험이 없는 ‘새로운 관객’층이 코로나를 겪으며 차단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학과 학생들조차 영화 시나리오보다는 OTT에 관심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팝콘 씹는 소리로 시작해 같은 장면에서 울고 웃는 경험 자체가 낯설어진 것이다.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저자 이나다 도요시는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작품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 오락을 콘텐츠로 총칭하는 데 주목한다. "더 이상 그것을 영상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대신 콘텐츠라는 말을 사용한다." ‘작품을 감상한다’보다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말하는 편이 어울린다. ‘빨리감기’로 보고 유튜브의 ‘영화 요약’ 채널을 구독하며, 영상을 소비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미래는 극장이 아니라 스마트폰일까?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가 방한했을 때 박찬욱 감독은 그를 만난 자리에서 “영화를 전화기(스마트폰)로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지만 그 역시 스마트폰으로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성상민 평론가는 “블록버스터가 사라진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대기업이 제작, 투자, 배급까지 하면서 일부 영화에 개봉관을 몰아주어 수익을 창출하던 전략이 유효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다양한 영화를 향유한다는 관점에서 극장이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20여 년 경력의 한 영화사 대표 역시 “영화산업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너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수요와 공급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시장구조 논리를 위반했다. 구조조정의 기회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 보이는 문제들은 이미 영화계가 안고 있던 불안 요소에서 기인한다. ‘작가 부재’가 대표적이다. 십수 년 전부터 문제로 지적됐지만 영화판이 그런대로 굴러왔다. 한 영화평론가는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잘하는 경우가 드문데 운 좋게 한국에서 그런 감독들이 2000년대 초반 흐름을 이끌었다. 재능 있는 감독들의 작품 텀은 길 수밖에 없다. 작가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사이를 채울 수 있는 영화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영화계 양극화나 개봉관 몰아주기도 고질적 문제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펴낸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직전 〈기생충〉 등의 약진으로 호황기였던 2019년은 “시장의 편중 구조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해”였다. 코로나19가 단지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심재명 대표는 공적자금을 언급했다. “영화발전기금도 고갈된 상태에서 작은 영화나 중간급 규모의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공적기금의 수혈이 필요하다. 어디를 지원함으로써 선순환을 만들어낼 것인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점이다.” 영진위는 문체부, 상영관, 투자·배급사, 제작사, 창투사, IPTV 기업 등을 모아 ‘한국 영화 위기극복 정책실무 협의체’를 만들 계획이다. 기재부도 최근 창고에 쌓여 있는 한국 영화의 배급을 촉진하기 위해 세제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폭염과 함께 ‘영화관의 계절’이 돌아왔다. 김용화 감독의 〈더 문〉,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 류승완 감독의 〈밀수〉,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한 한국 대작 영화도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여름이 한국 영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성적표에 관심이 쏠린다.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는 팬데믹 시기 영화인 62명이 영화의 미래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장영엽 〈씨네21〉 편집장은 “관객이 떠난 극장에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이들은 관객이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라고 낙관했다. 김영진 평론가는 “꼭 극장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영화라면, 또는 영화 호흡의 드라마라면, 언제든지 기꺼이 노트북을 열 것이다”라고 썼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개봉을 앞둔 〈밀수〉의 45초짜리 예고편은 이 문장으로 끝난다. ‘7월26일 극장으로 돌아와요.’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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