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리포트] 시각적 경험의 극치 ‘오펜하이머’

문화부 2023. 7.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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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의 의회 증언을 바라보는 아내 키티 오펜하이머(에밀리 블런트 분)의 표정은 의문스럽기만 하다. 사진 제공=Melinda Sue Gordon/Universal Pictures
[서울경제]

‘원자 폭탄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분)가 “세상은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론에는 한계가 있고 그 버튼을 누르면 세상이 파멸될 수 있다는 ‘끔찍한 가능성’을 입증한 후였다. 오펜하이머가 ‘끔찍한 가능성’이라고 불렀던 두려움을 욕망의 근원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영화를 찍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한계치까지 보여준다는 IMAX(아이맥스) 카메라를 사용해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오펜하이머 사건’을 180분 영화로 완성했다. 오펜하이머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은 컬러로 제작했고 그의 내면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컷어웨이를 사용했다. 루이스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가 중심이 되는 장면은 흑백으로 촬영했다.

놀란 감독은 “트리니티(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을 앞두고 오펜하이머와 그의 팀은 버튼을 누르고 첫 번째 폭탄을 터뜨리면 대기에 불이 붙고 지구 전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에 대처하고 있었다. 아무리 작더라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수학적 또는 이론적 근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버튼을 눌렀다”고 제작 노트에서 밝혔다. 인류 역사상 특별한 순간 관객들을 그 방으로 데려가서 그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그 버튼이 눌렸을 때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던 놀란 감독은 관객들에게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불가능한 질문으로 던진다. 윤리적 딜레마, 역설 등 쉬운 답은 하나도 없다. 신비롭지만 끔찍한 폭발의 순간, 그리고 희망과 절망의 양극단에 서게 되는 오펜하이머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복잡한 심경으로 응시하게 한다.

IMAX 영화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 킬리언 머피(오펜하이머 역)의 푸른 눈동자가 응시하는 지점을 함께 바라보게 만든다. 사진 제공=Universal Pictures

영화 ‘오펜하이머’는 연도별 과학사와 세계사의 접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916년 아인슈타인(톰 콘티 분)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을 때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완성했다.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연구 소장으로 임명된 1942년 독일은 유대인 학살을 결정했다. 그리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먼 분)이 취임했던 1945년 미국은 원자 폭탄 제조에 성공했고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했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미국 정부의 수소폭탄 개발계획에 반대해 러시아(당시 소련)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고 시련을 겪는다. 수소폭탄은 1954년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 분)에 의해 미국이 먼저 만들었고 이듬해 러시아도 성공했다. 1963년 미국 정부는 엔리코페르미상을 수여해 오펜하이머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엔리코 페르미(대니 들페라리 분)는 ‘원자 폭탄의 설계자’로 193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계 물리학자이다. 1938년은 독일이 오스트리아 합병에 성공한 해이며 그 무렵 오펜하이머는 중성자별의 탄생 가능성과 중력 붕괴 과정을 유도한 업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을 집결시킨 뉴 멕시코의 황무지 로스 알라모스 ‘맨해튼 프로젝트’ 기지를 바라보는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사진 제공=Universal Pictures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에밀리 블런트 분)와 연인 태트록(플로렌스 퓨 분),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끄는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맷 데이먼 분)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 인물 탐구는 영화적 스토리텔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절심함, 도덕성, 오만함을 탐구하는 비범한 영웅과 대담한 계략에 대한 대서사는 영화 전체를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해 관객들에게 시각적 경험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고전 영화 제작 기법에 대한 놀란 감독의 열정이 IMAX 카메라의 경계를 확장해 영화 예술 자체를 재창조한 것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카이 버드와 마틴 J. 셔윈의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두고 놀란 감독은 “좋든 싫든, 오펜하이머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행동은 좋았던, 나빴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역설할 뿐이다. 촬영일수 57일, 제작비 1조 달러가 소요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 건설된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에서 상징적인 트리니티 실험의 핵폭발과 버섯구름을 CG가 아닌 실제 촬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미국 극장에서 공개된 영화 ‘오펜하이머’는 한국에서 8월15일 개봉한다./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골든글로브협회(GG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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