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우릴 배신했다”, 첨단 무기로 전쟁에서 못이기는 이유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3. 7. 2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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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을 바꿀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나 사건, 제품을 일컫는 개념이다. 

안보에서는 전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뜻한다. 고대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 중세의 화약, 근대의 연발식 소총 등은 당시 전쟁의 모습을 혁신, 세계정세를 바꿨다.
러시아가 만든 우란-9 무인전투차량. 게티이미지
이는 현대에서도 ‘게임 체인저 성격의 고성능 무기를 갖춘 나라가 전쟁에서 이긴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게 하는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첨단무기를 보유한 것이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오히려 오랜 기간 사용했던 무기가 더 위력적인 경우도 있다.

◆‘첨단무기 만능론’ 깬 우크라이나 전쟁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을 때, 첨단무기를 다수 보유한 러시아가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전쟁은 2년째 계속되고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랑했던 러시아의 첨단무기 중 다수는 전쟁터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사례가 T-14 전차다. 2015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T-14는 미국 에이브럼스와 독일 레오파르트 전차보다 강력한 위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승무원이 차체에 탑승해 포탑을 원격으로 조작하고, 레이저 유도미사일도 발사하며, 능동파괴장치(APS)를 탑재해 전차에 대한 근접 공격도 막을 수 있다고 알려졌다. 
러시아 육군의 T-14 전차가 모스크바 붉은광장을 행진하고 있다. AP통신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T-14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냉전 시절 개발됐던 T-72 계열 전차가 주로 쓰이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SU-57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제한적으로 운용되고 있고, 옛소련 시절 만든 SU-25 공격기 등이 더 쓰이는 모양새다. 

전쟁 전에 러시아가 공개했던 무인전투로봇들도 제한적인 운용만 드러났다. 세부 사항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신 일선에서 오래 전에 물러났던 T-62 계열 전차마저 등장하는 상황이다. 

첨단무기를 실전에서 전술적으로 쓰려면 정비와 보급 체계 및 운용인력 확보, 전술 개발 등의 작업부터 철저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성능을 지닌 무기라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 

T-14는 기존 러시아 전차의 성능을 뛰어넘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러시아군의 지원체계가 고강도 실전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높은 가동률을 오랜 기간 유지하려면 부품과 장비 확보, 정비 인력 충원, 보급 체계 확립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러시아군이 첨단 무기를 만들었지만, 운용을 뒷받침할 준비는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무기에 대한 일선 부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예전부터 구식 장비를 갖고 전투에 나서려는 경향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에서 지원받은 무기들 중 대다수가 유럽 내 지원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고, 기술적 신뢰성과 이력도 축적됐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서방 측이 무기를 신규 지원하는 것보다 정비·유지 역량 지원을 강화하는 것도 긍정적 요소다. 

레오파르트 전차는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등에서 사용됐다. 미국산 브래들리 장갑차나 M113 장갑차도 미군이 냉전 시절부터 운용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강력하게 지원을 요청했던 F-16 전투기도 서방 세계에서 수천대가 쓰이고 있다. 이들 모두 지원체계와 기술적 신뢰성이 확보된 것들이다. 

성능은 현대전에서 쓰이기에는 다소 떨어지지만, 믿고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아직 인도되지 않은 F-16을 제외한 다수의 서방 무기가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에서 활용되고 있다. 
러시아 공군 Su-57 스텔스 전투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첨단 무기가 불러올 수 있는 역설적 상황은 한국군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인구절벽에 따른 병력 감축에 직면한 한국군은 첨단 장비의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육군은 각종 전투 플랫폼에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 신기술을 적용하는 아미 타이거(Army TIGER)를 추진중이다.

군 당국은 아미 타이거를 통해 육군 일선부대의 전투력이 대폭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아미 타이거 장비 사용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운용효과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미 타이거에 의해 일선 부대에 대거 배치될 무인전투차량과 드론 등의 첨단 무인 장비는 기존 무기보다 전자장비 비중이 높다. 기계라기보다는 전자제품에 가까운 모양새를 갖출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전투력 발휘를 위해서는 전자장비 사용 확대가 필수다. 하지만 기계식 장비와 비교할 때, 정비와 군수지원 소요는 기존보다 양적·질적으로 더 늘어난다. 

기존의 후속군수지원 체계로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지원체계를 확대 개편해야 할 경우 소요예산과 조달 방법 등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군에 납품된 무인전투차량. 세계일보 자료사진
첨단 무인 장비가 일선 부대에서 기술적·전술적 신뢰성을 쌓는데 걸릴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미 해군 F-35C와 F/A-18E 블록3 전투기의 관계는 일선 부대에서 첨단 기술이 반영된 무기가 신뢰를 얻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국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에 따르면,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우수한 스텔스 성능을 갖춘 5세대 스텔스기 F-35C보다 통합 전술정보 공유체계를 갖췄으며 생존장비를 추가할 수 있는 4.5세대 F/A-18E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F/A-18E 블록3는 미 해군이 예전부터 쓰던 F/A-18의 최신 개량형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신뢰가 F-35C가 배치된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점으로 볼 때, 첨단 장비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충분한 기간을 두고 세부 계획을 구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첨단 장비에 대한 일선 부대원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

첨단 무인장비 운용인력 확보방안도 고민해야 할 과제다. 첨단 무인장비를 운용하고 정비할 인력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미국산 M113 장갑차에 탑승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인구감소에 따른 병역자원 부족으로 현역 군인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실전에서 첨단 무인장비를 쓸 인력을 교육하고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정비 및 군수지원을 담당할 현역 비전투요원을 확보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현역 비전투요원을 늘리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전투부대에 배치할 인력이 부족해져 전투력 발휘에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군무원을 비롯한 민간인력을 확충하고 현역 군인은 전투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군이 국방개혁 2.0을 시행할 때부터 추진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간인력의 증가는 현역 위주로 구성된 군 인적 구조와 조직문화를 비롯한 군 조직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건비 증가에 따른 국방비 부담도 고려해야 할 문제다. 

군 인적 구조에 변화가 발생한다면, 한반도 유사시 아미 타이거 부대에 배치된 현역과 예비군, 민간인력이 함께 싸울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를 가정한 인력관리 방법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 협력을 하면서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단결력을 높여야 한다. 
한국 육군 차륜형 장갑차와 무인전투차량이 유·무인 복합 전투를 시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조치를 사전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갈등을 거듭했던 러시아군과 바그너 그룹의 전례가 한반도에 재연될 수도 있다. 거액을 들여 개발한 첨단 장비의 실전 운용도 제약을 받을 위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첨단 장비 도입이 확대되는 상황을 감안해서 종합적인 차원의 고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박민섭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주간국방논단’에서 “현역 중심의 인력관리에서 벗어나 현역, 예비역, 민간인력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 국방 인력(Total Force) 관점에서 인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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