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프렌즈’ 감독이 ‘누렁이’ 데리고 한국 찾은 이유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를 산 엑스(X) 세대에게 미국 유명 시트콤 ‘프렌즈’는 각별하다. 풋풋한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위기, 가치관을 위트있게 담아낸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레전드’로 꼽힌다. 한 세대를 대변하는 작품을 만들었던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 감독(68)이 이번엔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한국을 찾았다. 그가 이번에 엠지(MZ)세대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개고기’다.
76만 시청한 ‘누렁이’ 극장 상영하는 이유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만난 브라이트 감독은 매듭단추가 달린 보랏빛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차림새였다. <애니멀피플>은 2021년 6월 그의 신작 다큐 ‘누렁이’가 유튜브에 최초 공개될 때 그를 온라인으로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도 그는 개량한복을 입었다.
당시 브라이트 감독은 개 식용에 대한 한국인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하고, 개 식용 산업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했다. 그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수차례 한국을 오가며 일반 시민, 식용견 농장주, 육견협회 관계자, 수의사, 국회의원, 동물보호 활동가 등 70여 명을 인터뷰했다. 그러나 2021년 3월 전 세계를 일시에 멈추게 한 코로나 19 팬데믹이 발생했다.
4년을 공들인 작품은 유튜브 통해 먼저 공개됐다. 그리고 2년, 다큐멘터리 ‘누렁이’를 시청한 사람은 76만명에 달한다. 브라이트 감독이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은 복날에 맞춰, 7월22일 세계 최초로 극장에서 ‘누렁이’를 선보이기 위해서다. 이미 댓글들을 통해 많은 반응을 접했지만 “한국의 젊은 관객을 만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국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긴 제작 기간을 지나 극장 상영까지 6년이 걸렸다. “지금이 바로 개고기에 대해 대화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에요.” 다큐 제작을 결심할 때부터 개 식용 문제에 대한 빠른 대답이나 해결책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사이 몇 가지 큰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영부인)도 개 식용 금지에 대해 논해야 할 때라는 말을 했고, 국회의원들도 개 식용 금지 법안을 발의한 걸로 알아요. 저에겐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이제는 결정할 때입니다”
그에게 희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무관심한’ 젊은 세대를 대할 때면 안타깝고 답답했다. “사실 젊은이들은 개고기를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서서히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야말로 한국의 미래를 쥔 사람들이 개 식용 금지를 결정한다면 그건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뤄질 수 있는 일이거든요.”
브라이트 감독은 극장 상영회가 개 식용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개고기에 대한 화두를 던지길 기대한다. 때문에 영화 상영 뒤 진행되는 간담회 ‘이제는 결정할 때입니다’에는 개 식용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전할 게스트들이 초대됐다.
브라이트 감독뿐 아니라 개 식용 금지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한국 개농장의 개들을 해외로 입양하고 있는 단체 ‘도브 프로젝트’(DoVE Project)의 공동 설립자 태미 조 저스맨, 개고기의 효용을 주장해 온 안용근 충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등이 참가한다.
과연 개 식용 논쟁이 개고기를 먹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까. 최근 개 식용과 관련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 30~40%는 ‘개고기를 먹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이유로 법적 금지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브라이트 감독은 미국에서 총기소유 금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찬반 논의와 이를 비교했다.
“내가 총을 소유할 자유를 왜 국가가 금지하냐는 것이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되돌아봅시다. 우리 사회는 서로가 합의한 규율과 규칙으로 돌아가봐요. 공공에 해악을 끼친다면 서로 약속을 해야 합니다. 만약 그런 게 없다면 모두 혼란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요?”
개 식용 금지는 ‘변화의 시작점’
브라이트 감독은 개 식용을 중단해야 할 이유를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것’. 그는 개뿐 아니라 소, 돼지, 닭 모든 동물의 집단 사육 및 공장식 축산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 시작이 왜 개여야 하냐고 물었다. “개가 우리와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를 이야기 하고 싶네요. 개는 함께 자고, 먹고, 느끼고, 우리를 도와줍니다.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 개인건 너무 자연스러워요.”
‘커다란 변화의 시작점’으로 최근 한국을 방문한 제인 구달 박사와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금지를 언급한 점을 꼽았다. 그는 이미 한국이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지닌 나라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은 높은 교육 수준과 훌륭한 기술을 갖춘 자동차,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국가예요. 그럼에도 해외에 있는 700만 한국 교포들은 제일 먼저 개 식용 얘기를 듣게 됩니다. 정말 개고기가 한국 대표 이미지가 되길 원하시나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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