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에서 少로 ‘부의 이전’ 고민하는 정부… 韓 이제 시작, 日은 한창

세종=박소정 기자 2023. 7.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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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개정안 ‘결혼자금 증여 공제’ 주목
정부 “세대 간 富 이전 촉진” 고민 결과
韓 가계 자산 46%는 ‘60세 이상’ 차지
‘고령 국가 선배’ 日, 증여 유도에 진땀

대한민국이 고령화되면서 ‘부’(富)도 늙어가고 있다. 가계의 금융 자산이 60세 이상 노인에게 쏠리고 있다는 의미다. ‘자산의 고령화’는 국가 경제의 활기를 떨어뜨린다. 소비력과 생산력이 강한 젊은 층이 경제 활동의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젊은이들이 가난한 채로 노후를 맞게 되면 국가 재정의 압박까지 더해진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정부는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속도다. 한국은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확대’ 등 카드로 이제 막 세대 간 ‘부의 이전’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일찌감치 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도록 유도하는 ‘생전 증여 제도 확대’, 손주의 교육비와 육아비를 증여하면 과세하지 않는 ‘육아·교육비 증여 비과세’ 등 갖가지 정책을 구사하는 데 한창이다.

지난 5월 4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노인복지관에서 관내 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전달하고 머리 위로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스1

◇ 결혼자금 증여 공제 정책 바탕엔 ‘富 이전’

2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달 말 발표되는 ‘2023년 세법개정안’에는 자녀 결혼자금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 확대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다. 현행 자녀·손주 등 직계 비속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가 1인당 5000만원으로 제한된 것을, 결혼 자금에 한해 1억~2억원으로 늘려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결혼을 장려하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인데, 더욱 근본적으로는 세대 간 부의 이전을 촉진하기 위한 당국자들의 고민 결과이기도 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돈이 없다”며 “(부의 고령화로) 소비로 이어지지 않으니, 내수가 얼어붙고 젊은이들은 더욱 살기 팍팍해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을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전체 유산이 아니라, 상속인 개인의 유산 취득분에만 매기는 세금이다. 현행 상속세는 이런 유산취득세 방식이 아닌, ‘유산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즉 사망자가 남긴 재산 총액에 최고 50%의 누진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주요국과 비교할 때도 이런 방식은 세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면 재산을 일단 상속인들끼리 나눈 뒤 여기에 각각 세금을 부과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상속인이 많을수록 과표가 낮아져 세 부담이 줄어든다. 다만 기재부는 이를 이번 세법개정안엔 포함하지 않고, 더 긴 기간을 가지고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래픽=손민균

◇ 노인 순자산 10년간 79% 증가해 평균 5억원

실제로 시간이 갈수록 노인층에 자산이 집중되는 양상이 관찰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가구주 연령대별 평균 순자산 보유액은 ▲29세 이하 8483만원 ▲30대 2억9938만원 ▲40대 4억6913만원 ▲50대 5억3473만원 ▲60세 이상 4억8327만원이었다. 1년 전과 비교해 50대(14.6%)·60대(11.8%)에서 순자산 증가 폭이 가장 컸고, 29세 이하는 되레 1.2% 감소했다. 30대는 2% 증가에 그쳤다.

10년 전 가구주 연령대별 순자산 규모와 비교해 볼 때도 60세 이상의 자산 증식이 가장 두드러졌다. 2012년 60세 이상의 평균 순자산은 2억6984만원이었는데 10년 새 79% 증가했다. 40대가 76% 증가해 그 뒤를 이었고, 30대와 50대는 각각 65%, 57% 늘었다. 29세 이하는 4% 증가에 그쳤다.

우리나라 가계 순자산에서 노인 세대의 몫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도 상당하다. 서울연구원이 2021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예·적금, 전·월세 보증금 등 금융자산과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모두 합친 세대별 자산을 따져보면 60세 이상이 가진 순자산이 전체의 4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22년 국민 대차대조표(잠정)’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순자산은 1경1236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단 점을 참고하면, 5169조원가량을 노인이 쥐고 있단 소리가 된다.

일본의 80대 노부부가 지난 3월 자택에서 축구 경기를 보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로이터

◇ “재산 증여 빨리, 많이” 유도하는 日 경제 정책

일본은 이미 우리나라보다 더한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다. 일본은행(BOJ)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 잔고는 2000조엔인데, 이 중 60% 이상인 1200조엔을 60세 이상이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노인이 지닌 이런 금융 자산 대부분이 ‘예금’에 치우쳐져 있어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고령 가구가 저축을 늘리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일본 경제 전체적으로는 자산이 움직이지 않아 큰 문제가 된다”며 “고령자의 소비·투자를 촉진하거나 젊은 층으로 자산 이전을 촉구하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내세운 경제 정책인 ‘새로운 자본주의’(新しい資本主義)도 이런 이유로 세대 간 부를 이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매년 110만엔까지 증여세가 면제되는데, 부모 사망 3년 이내에 받은 증여는 사망 후 물려받은 재산과 합쳐서 상속세를 물린다. 최근 일본 정부는 이 기간을 7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즉 일찌감치 증여를 시작하라는 신호다.

육아·교육비 증여 혜택도 있다. 60세 이상 부모가 부채가 많은 40대 이하 자녀에게 ‘손주의 육아·교육비’ 명목으로 증여 시엔 일정 한도까지 비과세를 해주는 것이다. 교육비는 1500만엔, 육아 비용은 1000만엔까지다. 이는 특례 제도로 2026년 3월까지 운영할 방침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3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글로벌 경제 동향과 기업의 대응'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대한상의 제공

고령화와 이에 따른 경제 문제의 대두 양상 측면에서 두 나라가 시차를 두고 닮아 있지만, 한국의 경우 일본보다 부의 이전 작업에 더욱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데다가, 시기를 놓쳐 노인 세대마저 가난해지면 그나마 물려줄 자산까지 쪼그라들 수 있어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포럼에서 “고령화라는 점에서 우리가 일본 경제를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면서도 “한국이 일본 경제를 따라잡았다고 하지만 ‘소득’에 국한한 얘기이며, 보유한 재산을 보면 일본이 훨씬 많다. (그런 점에서 비유하자면) 일본은 잘사는 노인이지만 한국은 돈 없는 노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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