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도, <반지의 제왕> 샘도 파업 나선 헐리우드, 그 이유는?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60년 만에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의 '더블 파업'에 돌입한 헐리우드의 상황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세계 저작권법의 큰 두 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작가, 감독들도 파업하면 되지 않나?' 언뜻 이런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면서 유럽에서는 출판업이 거대한 산업으로 자라났다. 그때 저자와 출판업자 간의 권리와 의무를 법으로 정하게 되었는데, 프랑스는 법의 이름을 '저자의 권리'라고 붙였다. 사상과 예술과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답게 저자의 입장에서 법을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저작물의 권리를 출판업자에게 양도했음에도 '저자의 성명을 저작물에 기재할 권리'와 '내가 쓴 저작물과 출판된 저작물 사이의 동일성을 요구할 권리'를 '저작인격권'으로서 저자에게 부여했다. 저작인격권은 인격처럼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없다.
반면 해협 건너편 영국에서는 '카피라이트', 즉 '복제할 권리'라고 이름붙인 법을 만들었다. 실용을 중시하는 영국답게 산업, 즉 출판업자의 입장에서 법을 정의했다. 따라서 저작인격권은 무시되었다.
이후 미국이 건국하면서 이들은 영국의 법을 모태로 삼았다. 당연히 저작인격권도 빠졌다. 미국은 한 술 더 떠서 철저히 자본과 산업의 입장을 취하면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저작물을 아예 '업무상저작물'로 정의해버렸다. 업무상저작물은 회사에 정직원으로 입사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저작물을 일컫는다. 유럽대륙과 우리나라에선 프리랜서로서 계약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저작물은 업무상저작물이 아니지만, 미국 저작권법은 산업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스튜디오가 자본을 투여하고 여러 사람들이 참여해 만들어내는 영상저작물의 저자는 창작자가 아니라 '스튜디오'가 돼버렸다. 그래서 스튜디오 사장이 제멋대로 대본 크레딧을 적어넣었다. 때로는 애인이, 때로는 애견이 시나리오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래도 미국 작가들은 항의할 근거가 없었다. 성명기재권을 포함한 저작인격권이 미국 저작권법에서는 아예 통째로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작가들은 법원에서 정식으로 자영업자가 아닌 근로자 지위를 확인받고, 1933년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후 스튜디오 연맹 측과 단체협상을 통해 시나리오 크레딧 결정권을 넘겨받았다. 법에 없는 성명기재권을 노동조합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다.
미국작가조합은 1953년에 최초로 파업을 단행했다. 당시 핵심 쟁점은 TV 방송물에 대한 재방료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반에 TV가 가정에 널리 보급되고 상업방송국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방송물에 대한 재방료는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OTT가 전 지구에 퍼지면서 창작물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정당한 보상'이 핵심 쟁점이 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던 것.
1953년 파업의 결과로 '재방료'가 정의됐다. 유럽대륙에서는 프랑스의 저작권법을 모태로 한 '정당한 보상'이 저적자의 저작인격권으로서 널리 정의되어 있었다. 유럽의 저작자와 달리 저작인격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미국 작가들은 이번에도 파업을 통해 '정당한 보상'을 쟁취했다.
2007년 미국작가조합은 온라인 스트리밍에도 '정당한 보상'을 적용해야 한다며 파업을 감행했다. 다만 넷플릭스는 완강하게 시청정보 공개를 거부했고, 당시만 해도 OTT는 '변방의 대체적 매체' 정도였던 탓에 미국작가조합도 '정확히 사용량에 비례하는 보상'이 아니라 '5년 일몰 정액제'에 합의했다.
하지만 15년이 흐르고 보니, OTT가 레거시 미디어를 밀어내고 왕좌를 차지했다.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비가 지난 10년 사이 50% 증가했지만, 작가들의 집필료는 거꾸로 -4% 하락했다. 전체 작가들의 소득도 산업 지형의 변화에 따라 감소했다. 더 이상 OTT의 정액제 '정당한 보상'을 용인할 수 없게 된 작가들은 지난 5월 2일 파업을 선언했다.
미국작가조합 파업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OTT가 작가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제대로 된 보상'이라 함은 집필단계에서 지급하는 집필료를 대폭 인상하는 것과, 작품 공개 이후 '정당한 보상'을 사용량에 비례하게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글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미 대본 생성형 AI의 개발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몇 가지 키워드를 넣고 대본을 생성한 후 그것을 작가가 일부 손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AI가 쓴 것이 저작물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그런 결과물이 과연 퀄리티가 높을까 의문이 든다.
생성형 AI는 그 특성상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그럴싸하게 짜깁기한다. 기존의 것들을 충실하게 참조하면 되는 경우엔 매우 효과적이다. 그런데 영상물을 쓰는 작가의 깊은 고민 중 하나는 '기존에 존재하는 영상물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이다. 시청자들은 기존 것과 유사하다 느끼면 '시시하다', '전형적이다', '무성의하다'고 평하기 때문이다.
항상 새로워야 하는 영상물 제작에 있어서, 작가료 좀 아껴보자고 AI가 생성한 대본으로 작품을 만드는 게 과연 플랫폼 스스로에게 득이 될까? 똑같은 구독료를 내는 구독자 입장에서 붕어빵 찍어내듯 알고리즘으로 몇 분만에 후딱 생성한 대본으로 만든 작품을 보고 싶을까? 그렇게 비용도 절감하고 퀄리티도 하향평준화할 거면 구독료도 따라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이 56일 째에 접어들었던 6월 27일, 배우조합과 사측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배우 1000여 명이 동료 배우들에게 돌린 파업 촉구 연판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지금은 적당히 타협할 때가 아닙니다. 역사의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할 안전망을 끌어내기 위해 힘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우리는 역사를 만들 것입니다."
연판장에는 메릴 스트립, 제니퍼 로렌스, 데이빗 듀코브니, 라미 말렉, 밥 오덴커스, 샤를리즈 테론, 호아킨 피닉스, 제이미 리 커티스, 이완 맥그리거 등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작가조합 파업이 80일을 향해가던 지난 7월 14일, 미국배우조합도 마침내 파업을 결정했다. 배우조합 파업의 핵심 쟁점도 두 가지다. 첫째, OTT들이 '정당한 보상'을 실제 사용량에 비례하게 지급하라는 것, 둘째, 생성형 AI의 사용을 제한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우들을 스튜디오에 나오게 해서 하루 동안 배우의 외모와 음성을 디지털로 '스캔'을 뜬 다음 그날 일당만 주고 돌려보낸다. 그렇게 얻은 디지털 데이터는 스튜디오에 전속돼, 해당 배우에게 추가적 보상을 주지 않고 스튜디오가 마음대로 사용하겠다는 게 사측의 계획이다. AI를 활용해서 특정 배우의 몸짓이나 어투를 익히게 만들면 스캔 데이터를 가지고 마치 해당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영원히 공짜로 말이다. 초상권이 걸린다면 얼굴을 살짝 다르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결단했다. "지금은 적당히 타협할 때가 아니다."
AI 문제도 근본은 '정당한 보상'과 연결된다. 기술의 진보로 내 데이터를 스캔해서 배우처럼 사용할 수 있다면, 기술의 진보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으니 데이터 사용량에 맞춰서 배우에게 비례적인 보상을 해야 공정한 것이다. 배우를 하루 불러내서 스캔 뜬 것으로 무한히 공짜로 쓰겠다는 것은 도둑 심보 아닌가? 헐리우드에서 스튜디오의 뜻이 관철돼버리면, 한국 배우들은 과연 안전할까? CG기술과 AI알고리즘의 발달을 생각해보면, 대본 생성형 AI보다 더 쉬운 기술일 듯 싶다.
배우 파업에 불을 지핀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넷플릭스 초창기에 큰 인기를 끌었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 출연한 일본계 미국인 배우 키미코 글렌은 2013년부터 2019년의 7년간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해외 송출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넷플릭스로부터 받았는데, 그 총액은 27.3달러. 3만5000원이었다. 인기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얼마나 많이 시청되었는지 정보도 일절 공개하지 않은 채, 7년치라고 달랑 3만5000원을 입금받은 배우가 그 정산서를 트위터에 올리면서 끓는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다.
헐리우드의 모든 작가와 배우들이 이처럼 OTT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전면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OTT와 스튜디오들은 이참에 노동조합을 꺾어놓겠다고 벼르고 있다. 2007년 파업 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그때는 레거시 미디어가 주를 이룰 때라 방송이 펑크나는 것은 심각한 사태였다. 계속 재방으로 때우기엔 방송사가 입는 피해가 너무 컸다. 그래서 100일 만에 스튜디오가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OTT는 이미 4000개가량의 콘텐츠를 플랫폼에 올려놨다. 미국이 아니라도 한국을 위시해 세계 여기저기에서 콘텐츠는 계속 올라온다. OTT들이 장기전을 결심한 이유다. 8월 초면 역대 최장 파업 기록인 100일이 되는데, OTT들은 최소한 10월말까지는 어떠한 협상도 개시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싸늘한 크리스마스를 맛보여 주겠다는 것이다. 구독자들이 '볼 콘텐츠가 없다'며 집단으로 구독을 캔슬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들은 버틸 수 있다.
반면 작가와 배우는 6개월 이상 버티기 힘들다. 대다수의 작가와 배우가 월세를 내지 못하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1953년 파업을 시작으로 미국 작가들은 항상 중요한 고비마다 '정당한 보상'을 지켜냈다. 이번에도 발군의 결집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지금까지의 어떤 파업보다 힘겨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미국의 작가와 배우들이 패배하면, 약탈적인 '매절' 계약이 '뉴 노멀'로 자리잡아 버리고, 신진 인력의 유입 없이 AI에 의해 작가와 배우가 대체되면서 '뻔한 콘텐츠'만 양산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시청자들은 시들해질 것이고 한순간에 등을 돌릴 것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겪었던 붕괴처럼, 세계 영상산업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
히틀러가 먼저 핵폭탄을 손에 넣고 연합군을 꺾었더라면 잔혹한 독재가 뉴 노멀이 되고 인류는 인종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면서 우리의 삶은 도탄에 빠졌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 헐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하면 미국 영상산업을 시작으로 세계 영상산업이 긴 퇴조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도 타격을 입으니 그렇게 두지 않을 거라고? 천만에. 그들은 또 다른 수익 창출원을 찾아 유목민처럼 자리를 털고 옮겨가면 그만이다.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은 뭘 해야 할까? 한국은 저작자와 업자 사이의 권리와 의무를 정한 법을 '저작권법'이라 부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대륙식 '저자의 권리법'을 모태로 했다. 저작인격권도 존재한다. 저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이지, '창작에 드는 돈을 낸 자'가 아니며, 저작자는 프리랜서, 즉 자영업자이지 근로자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에 따라 우리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작가나 감독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없다. 자영업자끼리 모여서 근로조건을 정하고 밀어붙는 것은 '담합', 즉 불법이다. 따라서 한국의 창작자들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단체행동이나 파업으로 권익을 쟁취할 수 없고 오로지 법의 보호를 통해서만 권익을 지킬 수 있다.
이 판국에 '사적 자치'를 말하는 법학자도 있다. 개인과 회사 간 계약으로 알아서 해결할 일이지, 왜 그런 법을 만드냐는 의미다. 거대 OTT를 상대로 개인 창작자들이 '사적 자치'를 통해서 공정하게 권익을 지켜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면, 도대체 노동3법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노동자가 사측에 비해 협상력이 부족하므로 단체행동과 합법적으로 파업할 권리를 법으로 주었는데, 이것도 사적 자치를 위배했으니 위헌적 법률인가?
유럽연합(EU)은 이미 2019년 저작권법 개정 명령을 통해 27개 회원국이 전부 저작권법을 개정했고, 그에 따라 저작자들이 OTT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유럽연합 의회는 사적 자치 원칙을 몰라서 그런 입법을 했을까?
2019년 EU 저작권 개정 명령서 제3장 제18조의 보충조항(Recital)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저작자와 실연자는 자신의 권리를 이용허락 혹은 양도함에 있어서 법인에 비해 약자의 입장에 놓이므로, 자연인들이 자신의 권리에서 오는 이익을 완전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법과의 조화 속에서 보호가 필요하다."
한국도 법을 통해 저작자와 실연자를 보호해야 한다. 4대보험료도 납부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력이 없다고 자인 내지 자랑하는 국내 OTT들을 육성한다는 계획경제에 매몰되어 정부와 국회가 이 사태를 방치하면, 우리는 글로벌 OTT들의 생체실험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은 '정당한 보상'을 단 한 푼도 안 내도 되는 국제 '보상금 회피처'가 되고, 생성형 AI를 통해 특색과 개성을 잃어버린 뻔한 작품의 테스트장이 될 것이며, 배우들은 하루 일당을 받고 자신의 소중한 데이터를 스캔당한 채 직업을 잃을 것이다.
급변하는 기술 속에 전 세계 문명국가들은 자본의 횡포와 독주를 견제하면서 영상산업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데, 한국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군다면 당연한 결말 아닌가? 500년 조선왕조도 망했는데 100년 영상산업쯤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손에 물 한 번 안 뭍혀본 '꼰대 선비'들의 완고하고 허무맹랑한 형이상학은 나라의 뼈대를 좀먹는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 (끝)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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