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이 ‘지시’하고 지방이 ‘실행’하는 재난시스템으론 안돼[뉴스분석]

박용필 기자 2023. 7.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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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인해 물에 잠긴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에서 밤사이 시신 4구가 추가로 발견되며 사망자가 13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17일 경찰들이 사고현장에서 끌어낸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충북 청주·경북 예천 등 이번 집중호우로 인명 피해가 많은 지역의 경우 모두 지자체의 초동대응 실패가 1차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중앙 정부가 재난대응 방침과 대책, 예산 등을 정해놓고 지자체가 수동적으로 실행하는 현재 시스템에선 효과적인 재난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잦은 기후변화로 향후 더 커질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선 지자체에 실질적 권한을 늘려주고 자체 역량 및 책임감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지자체의 인건비 총액은 행정안전부가 정한다. 지자체 마음대로 인력을 늘리기 어려운 것이다. 한정된 인력은 자치행정과 민원 대응 분야 등에 우선 배치된다. 재난 분야가 매번 뒷순위로 밀리는 이유다.

한 기초단체 방재담당자 A씨는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고가 ‘소극행정’ 때문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만 상황관리요원 한두명 늘리는 것조차 녹록지 않은 게 많은 지자체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난담당부서 인력이 3~4명인 곳도 있다. 이들이 봄·가을 산불대응, 여름 호우·태풍 대응, 겨울 폭설 대응에 나선다”고 했다.

재난담당 부서가 ‘기피 1순위’인 것도 그래서다. 2018년 한국방재학회가 행안부 의뢰로 수행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전국 지자체 재난담당 공무원의 평균 근무기간은 1.1년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잦은 순환보직과 재난업무 기피로 현장 대응수습 역량 부족”을 지적했다.

‘방재안전직렬’이 2014년 신설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위직급으로만 채용돼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순환보직도 이뤄지지 않아 타 부서와의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청주시 방재안전직원은 이번 사고 직전까지 오송지하차도 인근 미호천 홍수 위험이 시에 통보된 사실도 몰랐다.

‘행정안전부(2021), 자지단체 방재안전직 현황(내부자료) 참조’. 출처:<재난안전관리 역량 제고방안 연구(2021)>, 한국행정연구원
<재난안전관리 역량 제고방안 연구(2021)>, 한국행정연구원

지자체 공무원들은 재난 대응 경험을 쌓을 기회도 적다. 2017년 포항지진 당시 ‘수습지원단’이 도입돼 2019년 법제화했다. 대형재난 시 중앙이 지방에 인력을 파견해 수습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 담당자들은 피해 상황 집계나 행정 잡무 정도의 업무만 맡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처럼 지자체들은 스스로 재난 대응 역량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부족한 인력, 빠듯한 예산, 재난담당자의 열악한 처우와 격무, 중앙에 종속되는 재난대응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있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초동 대처는 지자체가 할 수밖에 없는 만큼 지자체 역량이 중요하다. 그러나 부족한 인력과 전문가, 예산 등은 지자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중앙정부가) 지시만 내리고 이를 감당할 역량은 키워주지 않는다면 책임을 지방에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안전기본계획에 지방 역량 강화 방안이 우선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정부는 올해 초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행안부 장관만 갖고 있던 재난사태 선포 권한을 시·도지사에게까지 확대하고, 지역 경찰과 소방을 동원·총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계획도 포함됐다.

다만 권한을 행사할 역량을 보장하는 방안은 여전히 부족하다.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계획에는 지역 전문가가 위험진단에 참여하는 지역안전관리단 확대, 방재안전직과 재난상황실 상시운영 인력을 차차 보강하겠다는 계획 정도만 언급됐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은 “사고가 터지면 파견되는 수습지원단뿐 아니라 평상시 지자체의 재난 대비를 돕고 자문하는 컨설팅지원단 같은 걸 운영할 필요도 있다”며 “지자체장 재난관리 실적을 교부세 배분율과 연계하는 등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지자체 책임을 함께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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