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마도 지키려면 사회 개혁 시급”···한은서 화제 모은 조윤제 강연 [조지원의 BOK리포트]
직원 반응에 유튜브 통해 공개 전환
이창용 총재에 이어 구조 개혁 강조
경제정책 정치화, 고시 카르텔 지적
“한국에 맞는 구조 개혁방안 찾아야”
한국은행이 20일 유튜브 계정을 통해 두 편의 동영상을 올렸다. 조윤제 금융통화위원이 지난달 7일 이창용 총재 등 한은 임직원 대상으로 비공개로 열었던 2시간짜리 세미나 영상과 이를 30분으로 요약 편집한 영상이다. 당시 강연을 들었던 직원들 사이에서 “조윤제 위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강연”, “석학의 품격을 느낄 수 있던 시간”, “한은 직원만 듣기 너무 아깝다” 등 뜨거운 반응이 나오자 전격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조 위원은 취임 후 개인적인 의견을 되도록 삼가면서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해당 강연이 당초 비공개였던 만큼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우리나라가 과거 선진국이 200~30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겪은 경제·사회적 변화를 불과 50년 만에 압축 진행한 만큼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조목조목 짚은 것이다.
조 위원은 우리 경제가 이나마 발전한 것을 이어가려면 사회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뒤떨어진 사회 과학적 지식 수준, 경제정책의 정치화, 사회 전반의 시계(視界) 단축, 공고한 고시·학벌·지연, 계층 고착화 등 경제 외적인 부문에서의 개혁을 주문했다. 통상 한은에서 잘 들을 수 없던 국가 지배 구조 개편까지도 언급했다.
조 위원의 강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기 대응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마침 이는 5월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가 언급한 바와 일맥상통한다. 이와 관련해 조 위원도 “총재가 (5월 기자회견서) 말한 것에 100% 공감하고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당시 이 총재는 구조 개혁 필요성을 언급하며 “구조적으로 어려운 것을 해결 못 하니깐 결국 재정으로 돈 풀어서 해결하라, 금리 낮춰서 해결해라, 이렇게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부담이 온다”며 “(구조 개혁으로) 해결 못 하는 문제를 재정과 통화로 해결하라고 하면 나라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강도 높은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1990년대 이후 환경 변화로 분배 악화 등 문제 커져
해당 강연에서 조 위원은 우리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울렀다. 먼저 1980년대까지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등 3가지로 요약했다. 관세 무역 일반 협정(GATT)과 브레튼 우즈 체제 출범으로 관세율이 점차 낮아지고 세계적인 제조업 교역 비중이 늘면서 달리 자원이 없던 나라에 성장의 기회(천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 이후 미국의 막대한 원조로 외화 조달에 유리했고 마침 중국이 1980년대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에 성장이 가능(지리)했다고 봤다. 여기에 신분 계급 질서 붕괴로 출발점이 같아지면서 교육 열풍으로 역동성(인화)을 확보하면서 경제발전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환경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조 위원은 “1990년대 이후 경제적 기반이 취약해지고 제조업도 중국 추격을 받으면서 하강하기 시작하고 지식기반 서비스업을 발전시킬만한 충분한 시간과 여유로 갖지 못했다”며 “소득 분배가 악화되고 과다 부채, 인구 고령화 가속, 경제력 집중, 높은 부동산 가격의 앙등과 지속 등 문제가 나타났다”고 했다.
지식 부족·경제정책의 정치화 등 경제 외적 기반 개선해야
조 위원이 보는 우리나라의 취약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먼저 국민 소득 3만 5000달러 국가라는 위치에 비해 부족한 지식을 꼽았다. 조 위원은 “사회과학 지식은 선진국들의 수준을 크게 못 따라가고 있다”며 “이게 결국 금융, 보험, 디자인, 컨설팅 등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된 이후 경제정책이 정치화됐을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정책적 시계도 짧아졌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고시·학벌·지연 등이 작동하는 렌트(지대·rent) 사회가 계속됐다고 꼬집었다. 렌트는 높은 진입장벽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얻는다는 경제학 용어다. 조 위원은 “20대 본 사법고시나 의과대학 입시, 대기업, 학연·학벌·지연 등을 통한 렌트가 공고한 사회”라며 “각 분야의 레벨에서 충분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위원은 경제 정책도 중요하지만 이와 같은 경제 외적인 기반의 취약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은 “한국 경제가 이나마 온 위치를 지키려면 경제 외적인 기반도 빠르게 향상해야 한다”며 “한국 경제 개혁은 단순히 경제 정책 개혁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개혁 없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문제는 우리가 구조 변화 대응을 따라 할 본보기조차 없다는 것이다. 조 위원은 “일본은 구조 대응에 실패해 장기 침체를 겪었기 때문에 따라 할 모델이 없다”며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모델을 가져와도 결국 한국적 변이로 특이한 변종을 낳게 되기 때문에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우리한테 맞는 것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 세력 갖기 위해 협치와 사회적 대타협 필요
그렇다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조 위원은 ‘10년 안에 반드시 해야 할 3가지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국가 지배 구조 개편을 언급했다. 이 총재도 말했지만 지금 정치 체제에선 어떤 개혁도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총재는 5월 발언에서 “노동, 연금, 교육 등 구조 개혁이 정말 필요한데 우리나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를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런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당사자 간 사회적 타협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조 위원은 어떤 정부든 성공하려면 갖춰야 할 4가지 요인을 꼽았다. 그는 “지도자가 제대로 된 비전을 가져야 하고, 그 비전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맞아야 하며 비전을 현실적 정책으로 제대로 재단해서 낼 수 있는 유능한 참모진이 있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정치적 세(勢)’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언론환경과 국민들의 일반적 인식에서 정치적 세를 가지기 굉장히 어렵다”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협치와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는 인센티브 체계의 전반적인 재구성을 언급했다. 조 위원은 “직무 분석을 하고, 직무 분석을 기초로 제대로 된 직무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게 쌓여서 인사와 승진이 결정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맴돌 수밖에 없다”며 “공공기관부터 인사제도를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마지막은 공공 부문의 혁신이다. 조 위원은 “경쟁해야 할 나라가 국민소득 3만 5000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 등으로 주요 7개국(G7) 등인데 그 나라의 탑 엘리트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관료 시스템 가지고는 어렵기 때문에 공공 혁신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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