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9860원, '공익안' 아닌 '노사 최종안' 표결 이유는

강지은 기자 2023. 7.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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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위원, 올해 노사 합의 강조하며 간극 좁히기 주력
'답정너' 최저임금 산식 비판에 '가이드라인' 논란 부담
노사 최종안으로 정부 책임 줄이고 노동계 질책 결과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9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2024년도 적용 최저임금에 대한 투표 결과 앞을 지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9860원으로 결정됐다. 2023.07.19. ppkjm@newsis.com

[세종=뉴시스] 강지은 기자 =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5% 오른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된 가운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공익위원 중재안'이 아닌 '노사 최종안'을 표결에 부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1일 최저임금 심의·의결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 따르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지난 18일 오후 3시부터 다음날인 19일 오전 6시까지 15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노사 최종안인 1만원과 9860원을 표결에 부친 결과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되는데, 구속된 근로자위원 1명이 빠지면서 사용자위원안 17표, 근로자위원안 8표, 기권 1표로 사용자위원안이 채택됐다.

최임위가 노사의 최종안을 표결에 부친 것은 2019년(2020년 적용) 이후 4년 만이다.

지난 3년간 최저임금은 노사가 더 이상 각자의 요구안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노사 대립 구도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들이 심의촉진구간과 중재안을 제시하고, 이를 표결에 부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특히 올해는 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들이 어느 때보다 노사 간 '자율적 합의'를 강조하면서 10차까지 수정안 제시를 요구하는 등 접점 좁히기에 주력했다. 이는 그간 3차례 정도만 수정안을 받고 중재안을 표결에 부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배경엔 우선 '답정너' 비판이 제기된 공익위원들의 '최저임금 산출방식'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공익위원들은 최근 2년 연속 '경제성장률 전망치 +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라는 산식을 이용해 중재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이는 최저임금법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자 생계비 등 최저임금 결정 기준도 아닌 것으로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수차례의 심의를 무색케 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지난 4월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양대노총 관계자들의 권순원 공익위원 사퇴 촉구 등 시위가 이어지자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과 공익위원 등이 참석하지 않아 회의가 지연되고 있다. 2023.04.18. kkssmm99@newsis.com

올해 최저임금 심의 초반에는 노동계가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제기하며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사퇴를 촉구해 첫 회의부터 파행을 빚기도 했다. 권 교수는 2019년부터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사가 8차 수정안으로 각각 1만580원과 9805원을 제시한 뒤 양측의 요청으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9820원~1만150원)도 그 근거가 예년과 달라 노사가 항의하기도 했다.

여기에 '가이드라인' 논란을 부른 정부 고위 인사의 '최저임금 9800원' 보도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김문수 위원장의 '최저임금 1만원 언저리' 발언 등도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제시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준식 위원장은 논란이 일자 심의 과정에서 "내년 최저임금안은 노사가 최대한 이견을 좁히고 합의를 통해 결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위원장으로서 그 결과를 끈기 있게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권 교수도 "공익위원들은 올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함에 있어 공정한 조정자이자 결정의 당사자로서 노사가 자율적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최종 순간까지 적극적 개입을 최대한 자제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둘러 심의촉진구간이나 중재안을 제시해 역풍을 맞기보다 노사가 충분히 합의하도록 함으로써 가이드라인 논란 등 '정부 입김' 의혹에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10차 수정안까지 받은 결과 노사의 요구안이 최초 1만2210원, 9620원(간극 2590원)에서 1만20원, 9840원(간극 180원)으로 좁혀지자 공익위원들은 합의 가능한 수준이 됐다는 판단 하에 중간값인 9920원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이를 거부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과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은 모두 중재안에 찬성했다.

결국 공익위원들은 다른 중재안을 내는 대신 노사로부터 최종안인 1만원과 9860원을 제출받아 표결에 부쳤고,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사용자위원안에 '몰표'를 던지면서 내년도 최저임금은 9860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류기섭, 박희은 근로자 위원 등 최저임금위 노동계가 지난 19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과 결정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투표 결과를 확인하지 않은 채 퇴장하고 있다. 2023.07.19. ppkjm@newsis.com

권 교수는 최저임금 의결 직후 브리핑을 통해 "9920원이라는 숫자는 노동계가 제안한 1만원과 큰 차이가 아니다"라며 "내부 이견으로 중재안을 수용하지 못하고 양측의 최종안 표결로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특히 "(공익위원들이) 9920원을 조정안으로 제안하면서 정부 고위 관계자발(發)로 보도된 가이드라인 논란은 정리됐다고 본다"며 "보도와 다르게 9920원을 공익위원 조정안으로 제시했고, 그걸 받지 않은 건 민주노총"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강력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전날 성명을 내고 "협상 과정에서 현실적 수준을 감안한 노동자 안과 마지못해 최소액 인상만을 거듭한 사용자 안의 산술적 평균을 합리적 중재안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정부 가이드라인을 관철하기 위해 권모술수로 일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익위원들의 이번 합의 촉구 및 노사 최종안 표결에 대해 "1만원 이하의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최임위와 윤석열 정부의 책임론을 희석시키고, '노사공 사회적 합의'라는 아름답고 훈훈한 그림과 미담으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번 최저임금 심의 과정을 두고 공을 노사 최종안에 돌려 결정 방식 논란은 줄이고, 노동계가 질책받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애초에 1만원을 안 넘기는 것을 전제로 한 정부 입장에서는 9920원이든 9860원이든 충분히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을 것"이라며 "합의의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비난의 화살은 민주노총에 돌리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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