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후지나미처럼? 가장 부진한 후지나미, 유일한 ‘PS 日선수’ 될까[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가장 부진했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서 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생겼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7월 20일(한국시간)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오타니 쇼헤이(LAA)가 아닌 다른 일본인 선수를 영입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마이너리그 투수 이스턴 루카스를 내주고 우완 후지나미 신타로를 영입했다(이하 기록 7/20 기준).
볼티모어는 마운드 보강이 필요했다. 팀 OPS 전체 9위(0.750)의 타선에 비해 팀 평균자책점 전체 16위(4.22)인 마운드에 약점이 있는 볼티모어였다. 평균자책점 3.74의 불펜보다는 4.57의 로테이션이 문제지만 강점을 더욱 극대화해 약점을 보완하기로 했다. 좋은 선발투수는 비싸지만 무난한 불펜투수는 그리 비싸지 않다.
후지나미는 '가성비'를 노릴 수 있는 자원이었다. 올시즌 연봉이 325만 달러인 후지나미는 채 절반이 남지 않은 시즌의 잔여 연봉에 부담이 없다. 이미 포스트시즌에서 일찌감치 멀어진 오클랜드 입장에서도 굳이 지킬 필요가 없는 선수였다.
올시즌을 앞두고 태평양을 건너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후지나미는 초반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돼 선발투수로 데뷔했지만 처참했다. 첫 4번의 선발등판에서 15이닝 24실점, 평균자책점 14.40을 기록했고 4패를 떠안았다. 결국 오클랜드는 4경기만에 후지나미를 선발진에서 제외했다. 불펜에서도 여전히 문제였다. 불펜 이동 후 13경기에서 15이닝 16자책점, 평균자책점 9.60을 기록했다.
하지만 6월부터 달라졌다. 후지나미는 6-7월 17경기에서 19.1이닝을 투구하며 평균자책점 3.26을 기록했다. 제구가 안정되며 5월까지와는 다른 투수가 됐다. 4-5월 30이닝 동안 무려 24개의 볼넷을 허용한 후지나미였지만 6-7월 19.1이닝에서 허용한 볼넷은 6개. 최근 11경기에서는 단 하나의 볼넷도 허용하지 않았다. '공짜 주자'를 내보내지 않으니 실점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볼티모어는 최근 후지나미의 반등세에 주목했다. 선발 출신으로 멀티이닝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불펜이 더 긴 이닝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다면 로테이션이 가진 약점도 어느정도는 보완할 수 있다.
사실 후지나미는 일본 무대에서 신인 시절 오타니의 라이벌로 이름을 날린 선수다. 두 선수는 1994년 동갑내기로 2013년 나란히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프로 데뷔 첫 해에는 오타니보다 뛰어난 성적을 썼고 첫 3년 동안은 오타니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이후 급격히 무너진 후지나미는 이제는 과거 오타니와 라이벌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의 위치가 됐다. '옛 라이벌'인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역사를 바꿀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후지나미는 300만 달러가 겨우 넘는 단년 계약으로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볼티모어가 후지나미의 최근 상승세에 주목해 그를 영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지나미의 위상이 올라간 것은 아니다. 후지나미는 여전이 올시즌 종료 후 거취가 불투명한 '8점대 평균자책점의 불펜투수'에 불과하다(34G 49.1IP, 5승 8패 3홀드, ERA 8.57). 오타니와의 격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트레이드로 후지나미는 일본인 메이저리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올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생겼다. 볼티모어는 빅리그 로스터에 일본인 선수를 보유한 구단들 중 현재 가장 성적이 좋다. 현재 빅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일본인 선수는 총 8명. 8명은 모두 다른 팀에서 뛰고 있다.
볼티모어는 20일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로 올라섰다. 20일 경기를 마친 시점의 승률이 0.611.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2위이자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다. 탬파베이 레이스와 치열한 동부지구 1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볼티모어는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도 3위에 5경기 이상 앞서있는 상태다. 아직 시즌이 두 달 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현 시점에서 성적은 '포스트시즌 안정권'이라 할 수 있다.
기쿠치 유세이가 있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볼티모어에 5.5경기 뒤쳐진 동부지구 3위. 그리고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도 3위다. 4위 보스턴 레드삭스와 승차는 2.5경기. 연승과 연패가 맞물리면 3연전 시리즈 한 번 만에도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토론토는 20일까지 승률 0.552로 선전 중이지만 가을야구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보스턴(승률 0.526)에서 맹활약 중인 요시다 마사타카는 소속팀이 토론토를 넘어서야 포스트시즌을 꿈꿀 수 있다.
마에다 겐타가 로테이션에 복귀한 미네소타 트윈스는 현재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1위다. 하지만 승률은 0.515로 동부지구 최하위인 뉴욕 양키스와 같다. 지구 2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 승차는 2.5경기. 와일드카드보다 지구 1위팀 승률이 낮은 만큼 무조건 지구 우승을 차지해야 하지만 안정권은 아니다. 오타니가 팀을 이끌고 있는 에인절스도 가을야구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 승률 0.505로 간신히 5할 승률을 넘어선 에인절스는 서부지구 우승 경쟁에서 9경기,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4.5경기 뒤쳐진 상태다.
다르빗슈 유가 에이스인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센가 코다이가 올해 입단한 뉴욕 메츠는 상황이 더 어렵다. 샌디에이고는 20일까지 승률 0.479를 기록해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 경쟁에서 9.5경기나 뒤쳐졌다.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도 6.5경기 뒤쳐진 상황. 5할 승률까지도 아직 길이 멀다. 메츠는 승률 0.474로 더 상황이 어렵다. 이미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 경쟁에서 16.5경기나 뒤쳐졌다. 와일드카드 경쟁도 7경기나 뒤쳐진 상태다. 스즈키 세이야가 뛰는 시카고 컵스도 메츠와 똑같은 승률 0.474를 기록 중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8명의 일본인 메이저리거 중에 후지나미의 성적이 가장 부진하다는 것이다. 이미 아메리칸리그 MVP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 오타니는 물론이고 요시다(84G .317/.378/.503 11HR 50RBI 7SB), 센가(17GS 95.2IP, 7-5, ERA 3.20), 다르빗슈(17GS 97IP, 7-6, ERA 4.36), 기쿠치(19GS 98IP, 7-3, ERA 4.13), 스즈키(77G .263/.344/.407 8HR 31RBI) 모두 후지나미보다 좋은 성적을 쓰고 있다.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한 마에다(9GS 42.1IP, 2-5, ERA 5.10)도 후지나미보다는 성적이 좋다.
오타니의 여름 이적 여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 어쩌면 올해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는 일본인 메이저리거는 성적이 가장 부진한 후지나미 한 명 뿐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만약 오타니가 여름 시장에서 트레이드되지 않고 후지나미가 볼티모어와 함께 높은 곳에 오른다면 오타니가 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으면서도 이루지 못한 포스트시즌, 그 이상의 꿈을 후지나미는 빅리그 진출 첫 해 부진한 성적으로도 달성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야구는 팀 스포츠. 개인의 능력으로 얻어내는 결과에는 결국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최고 수준으로 소화하는 선수라도 이 '진리'를 바꿀 수는 없다. 과연 후지나미와 오타니의 운명이 올시즌 어떻게 엇갈릴지 남은 시즌의 향방이 주목된다.(자료사진=위부터 후지나미 신타로, 오타니 쇼헤이)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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