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가계부채…대출 '총량제' 다시 등장할까
한은, 가계부채 증가에 "DSR 건드리지 말아야"
이복현 "마이크로한 정책 필요" 언급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증가폭이 확대되자 금융당국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최근 물가 상승률이 하향 안정화되면서 올리던 기준금리를 네 차례 연속 동결했고, 이 기간 가계부채는 다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를 누그러뜨릴 정책 수단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역전세난이 벌어진 뒤 세입자 보호를 위해 보증금 반환목적 대출에 대해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를 적용하는 대신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하는 등 대출규제를 완화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DSR 예외 사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21년 행정 조치를 통한 가계부채 관리 사례를 언급하면서 '총량제'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금융권에선 무턱대고 총량제를 시행하기보다는 가계부채를 질적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가계부채 빨간불인데…DSR 엇갈린 시선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를 기록했다. 주요 43개국 가운데 스위스(128.3%)와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코로나19 기간 급증했던 가계부채는 지난해 기준금리의 가파른 인상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보합 수준을 유지했다. 올 1분기만 해도 가계대출 잔액은 감소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4월 이후 증가세로 전환했고 점점 그 폭도 확대되고 있다.
은행 가계대출 잔액 증감액은 3월 7109억원 감소에서 4월 2조2964억원 증가로 전환했다. 5월과 6월에는 각각 4조1557억원, 5조8953억원으로 증가액이 늘었다. 한국은행은 "주택구입 관련 자금수요 확대와 입주물량 증가, 전세자금대출 증가 등으로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 부담에 대한 연착륙 방안 중 하나로 DSR 적용 예외 대상을 축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른 주요국에 비해 국내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이유로 DSR 도입이 늦었고 대출 시점과 종류에 따라 상당수의 대출이 DSR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목적 대출에 한해선 DSR 40%가 아닌 DTI 60%를 적용하며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세입자 보호를 위한 조치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가계부채 증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3일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역전세 관련 제도(보증금 반환에 한해 DSR규제 완화)는 분명히 가계부채를 늘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미시적인 정책으로 자금시장에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와 계속 모여서 거시적으로 (가계부채가) 커지지 않도록 규제와 통화정책도 조정할 수 있어 (규제완화가) 과도하다고 평가하기는 시기상조"라며 "많은 우려가 있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책을 추진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금리 인상 어렵다면…총량제 재도입?
가계부채 증가 우려가 커지는 것은 통화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한은 금통위는 올 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3.5%로 결정한 이후 네 차례의 통화정책회의(2·4·5·7월)에선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올 들어 물가 상승률이 하향 안정화되면서 물가에 대한 부담이 줄었고,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간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증가세로 전환하면서 한은의 부담도 커졌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14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기준금리를 3.5%로 했더니 3개월 동안 가계부채가 늘었고, 이는 장기적으로 큰 부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앞당기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물가 안정에 목표를 두고 통화정책을 펼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추가 인상 가능성은 제시했지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금리 인상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은행 연체율 상승 등 취약 차주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금융 안정 차원에서도 부담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세밀한 정책 수단을 통한 가계부채 관리"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원장은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21년 가계대출 급증 상황은 금리로 조정한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감독 행정 조정으로 팽창세를 관리한 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리 등 거시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 큰 칼이라면 (감독원이) 세밀하게 행정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작은 정책 수단일 것"이라며 "가능하다면 타게팅할 수 있는 정책을 사용해 컨트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이복현 금감원장 "가계대출 증가 우려, 100% 공감"(7월17일)
이복현 원장이 되짚은 2021년, 당시 금융당국은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가계부채 총량제를 도입, 은행별로 전년대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넘지 못하도록 관리했다. 이에 일부 은행에선 주담대 등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이 원장이 미세정책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총량제 시행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미지수다. 금융권에서도 가계부채 질 관리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총량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부진 등으로 인해 금리인상 압력에도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게 가계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총량 자체를 억지로 줄이는 차원이 아닌 금리 정책을 적절히 수행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취약 차주에 추가대출이 나가지 않도록 가계부채 질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일시적으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가계대출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총량제를 실시했던 시기에 비해 현재는 금리도 높은 수준이라 현 시점에선 (총량제) 도입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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