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장 완료 역학과 회색지대 전략 [fn기고]

이종윤 2023. 7.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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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길주 서강대 국제지역연구소 책임연구원
-이라크·시리아 핵개발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무력화
-북 핵 프로그램 고도화 뒷배는 소련과 중공의 비호
-북 국제정치 역이용한 회색지대전략이 추동력
-북 6·25 전쟁 중부터 70여년 핵 기획, 개발 이어와
-에너지 연구로 강변... NPT 가입과 탈퇴, 관심분산
-'92년엔 '비핵화 공동선언' 핵보유 의지 없는 듯 위장
-이젠 북핵 기정사실화, 고도화.. 핵보유국 지위 공식인정 노려
-엄청난 파괴력 지닌 북 장기 회색지대전략에 명쾌하게 대응해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서강대 국제지역연구소 책임연구원
북한이 핵무장을 완료할 수 있었던 내재적 역학은 무엇이었을까? 북한과 달리 이라크와 시리아는 개발 초기단계에 핵 프로그램이 제거되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라크 핵시설은 1981년, 시리아 핵시설은 2007년에 무력화되었다. 그런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제는 제2격 능력 보유까지 나설 정도로 고도화되었다.

북한이 이라크나 시리아와 달랐던 점은 사실 국제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자신을 두둔하거나 최소한 침묵을 유지해 줄 강대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있었다. 냉전기에는 소련이 있었고 탈냉전기에는 중국이 있었다. 반면 이라크와 시리아의 뒤에는 이런 강대국이 없었다. 북한은 신냉전기인 지금도 중국과 러시아의 침묵, 혹은 사실상의 묵인속에서 핵 프로그램 고도화를 지속하고 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직접 도와주거나 독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 도발에 침묵하거나 거부권 행사를 통해서 강경한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에 제동을 걸면서 사실상 핵 프로그램 고도화를 도와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북한은 국제정치를 역이용해 핵 프로그램 고도화를 시도해 왔지만 이와 동시에 북한이 자체적으로 핵 개발 차원에서 가동한 전략도 핵무력 완성을 이끈 추동체였다. 그것은 바로 회색지대전략이다. 회색지대전략은 상대방이 모르거나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조금씩 축적하는 방식을 이용한 점진주의, 흑백구분이 애매한 모호성, 원하는 사안이 이미 사실로 작동되고 있다는 기정사실화를 통해 상대방의 이익을 잠식하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우회전략이다.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한 비결 중 하나가 장기간 회색지대전략을 구사한 것이라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걸렸던 것일까? 사실 북핵 고도화는 70년 동안 회색지대 역학을 가동한 결과물이다. 놀랍게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6·25 전쟁 중에 시작되었다. 1952년 북한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원자에너지 조사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사실상 핵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을 시작했다. 에너지의 연구라고 강변하는 모호성을 통해 상대방의 관심을 분산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1965년에는 소련의 원조로 2메가와트급 연구용 원자로인 IRT-2000을 도입하며 조금씩 핵 프로그램 가동을 위한 지식을 축적하게 된다.

한편 1985년 북한은 비확산체제인 NPT에 가입하면서 핵무기 보유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신호를 보내며 한국과 국제사회 등 상대방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회색지대 역학을 가동하게 된다. 1992년에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핵무기 보유에 대한 의지가 없는 척 위장했다. 1993년 북한은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 요구를 계기로 NPT 탈퇴를 선언하며 1차 북핵위기가 발생한다. 1994년엔 북한은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해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을 것처럼 시간을 끌면서 점진주의 방식으로 핵 프로그램을 지속 가동하게 된다. 그러던 중 2002년 켈리 대북 특사가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포착하자 북한이 이를 시인하면서 2차 북핵위기가 발생했고 2003년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협상만 잘되면 핵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을 것처럼 2003년 1차 6자회담에 응하다가, 2005년에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게 된다.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후 은밀히 핵 개발을 지속하는 점진주의를 통해 핵 보유 능력에 점점 근접하게 된 것이다. 결국 2006년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차례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핵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기정사실화하는 수순으로 진행하게 된다. 2018년에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오직 억제력 차원에서만 사용하겠다는 원칙을 통해 상대방의 안보이익을 교묘하게 잠식하게 된다.

하지만 2022년 핵무력정책법을 통해 억제력을 넘어 군사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능력’의 고도화를 넘어 ‘의지’의 고도화까지 도달한 상태다. 이는 70년간 핵무력의 회색지대전략이 가동된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회색지대전략이 제대로 통했다고 판단한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 기정사실화에 나서면서 핵보유국 지위의 공식인정을 노리고 있다. 장기간의 시간을 엄청난 파괴력으로 진화하는 회색지대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다. 회색지대 역학을 제대로 간파하고 명쾌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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