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찍기 [책&생각]

한겨레 2023. 7.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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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주로 맑은 하늘, 웃는 표정이에요. 사진으로 다른 감정도 담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 사진 수업을 신청했어요. 여러 작품을 보면서 사진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요."

보통 피해 사진은 증거용 혹은 자극적인 서사에 이용되는 방식으로 '찍힌다.' 그런데 골딘은 상처를 '찍는다.' 골딘은 렌즈를 응시한다.

두 사진은 내게 다른 감정을 준다.

그 사진 뒤에 내 상처와 다른 이의 상처를 찍어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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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골딘 Nan Goldin
열화당 사진문고
열화당 편집부 엮음 l 열화당(2003)

“저는 주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주로 맑은 하늘, 웃는 표정이에요. 사진으로 다른 감정도 담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 사진 수업을 신청했어요. 여러 작품을 보면서 사진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요.”

내 소개를 들은 류는 수업 끝 무렵 말했다. “낸 골딘을 소개하고 싶어요. 승은이 관심 가질 작가일 것 같아요. 금기된 욕망과 밀려난 존재, 관계의 생과 사를 포착한 작가예요.” 류는 인터넷을 검색해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에는 나체로 섞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편안하고, 쓸쓸하고, 충만해 보였다. 마치 벽으로 둘러싸인 자기만의 방에서 목 늘어난 티를 입고 힘껏 풀어진 모습 같았다. 사진 속 인물들은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사회적인 얼굴 근육과 옷을 벗을 수 있었을까? 류는 관찰자가 아닌 투명 인간이 되어 그들과 경계 없이 섞인 작가의 태도가 드러난 거라고 했다.

1953년에 태어난 낸 골딘은 관계성을 탐구하며, 사회적 터부에 정면으로 다가가는 작가다. 결혼식과 장례식, 아이와 노인, 마약, 섹스, 드랙, 성소수자. 사진 속에 담긴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속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왜 류가 골딘을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밀려난 사람들. 드러나지 않거나 왜곡된 모습으로만 잠시 얼굴이 소환되는 사람들. 그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함께 살아간 작가의 생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중 나를 붙잡은 건, 왼쪽 눈에 멍이 든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1984년에 찍은 낸 골딘의 자화상이다. 그녀는 당시 만나던 애인에게 폭력을 당했다. 보통 피해 사진은 증거용 혹은 자극적인 서사에 이용되는 방식으로 ‘찍힌다.’ 그런데 골딘은 상처를 ‘찍는다.’ 골딘은 렌즈를 응시한다. 보라색으로 덮인 왼쪽 눈은 부어 있다. 흰자는 핏줄이 터져 붉게 번져 있다. 가만히 사진을 보다가 차마 지우지도 꺼내지도 못한 사진 뭉치가 떠올랐다. 5년 전 내게 온 사진. 사진 속에는 술에 취해 뻗은 엄마가 있고, 왼쪽 날개 뼈에는 손바닥 크기의 파란 멍이 있다. 당시 엄마가 만나던 사람에게 맞은 흔적이다. 엄마 지인이 몰래 찍어 내게 보낸 사진이다. 나중에라도 필요할지 모르니 사진첩에 두었다. 골딘과 엄마의 사진. 두 사진은 내게 다른 감정을 준다. 골딘이 먼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골딘은 상처를 스스로 기록했고, 엄마는 찍혔다.

골딘은 자신에게 다가온 폭력 역시 직면한다. 그는 폭력과 상처를 타자화하지도, 쉽게 동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그것들과 관계 맺는다. 적극적으로 자기 서사로, 세계의 책임으로 끌어안는다. 두 번째 시간, 나는 혼자만 간직한 엄마 사진을 꺼내서 발표했다. 그 사진 뒤에 내 상처와 다른 이의 상처를 찍어 연결했다. 상처와 슬픔을 연결했다. 사진은 잊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 아름다움 안에는 슬픔과 상처와 소외도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내게 상처가 되었던, 상처 입은 엄마의 모습을 다시 다르게 본다. 다만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 사랑과 폭력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상처 입은 사람. 그 사람의 섞이고 싶은 욕망, 살고 싶은 의지를 본다. 멍은 사라져도 생은, 욕망은 끝나지 않는다. 뒤엉킨 폭력 속에서도 상처를 볼 힘이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사진 속 멍을 만진다. 꿈틀대는 힘을 만진다.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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