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차에 몸 싣던 멕시코인, 더 높아진 미국과 ‘공존선’ [책&생각]

최원형 2023. 7. 2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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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연구자의 미-멕 국경 탐구
‘세계화’ 시대에 더 두터워진 경계선의 역설
2018년 11월, 온두라스 출신의 39살 이주 여성이 미국으로 가기 위해 티후아나 쪽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다 국경수비대가 쏜 최루탄 가스를 피해 5살 쌍둥이 딸들의 손을 잡고 몸을 피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라 프론테라

미국-멕시코 국경을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조우

김희순 지음 l 앨피 l 1만8000원

2018년 11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놓인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500여명의 ‘불법이민자’ 행렬(‘캐러밴’이라 한다)을 해산시키겠다며 미국 국경수비대가 최루가스를 쐈다. 가족 단위가 대부분인 캐러밴 무리 가운데 온두라스 출신 여성 마리아 메자(39)가 양손에 쌍둥이 딸들의 손을 꼭 쥐고 황급히 몸을 피하는 모습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의 남쪽과 멕시코의 북쪽은 3100여킬로미터에 걸쳐 맞닿아 있는데, 두 나라의 국경은 같은 지구 위에 있으면서도 뚜렷하게 다른 두 세계를 경계 짓는다. 북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부유한 세계와 빈곤한 세계. 빈곤, 마약과 폭력 등으로 황폐해진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단지 먹고살 기회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부유한 나라로 가는 경계를 넘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연구자인 김희순이 쓴 <라 프론테라>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어떻게 조우해왔는지 살피고 앞으로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묻는 책이다. 제목인 ‘라 프론테라’는 멕시코 쪽에서 미국-멕시코 국경을 일컫는 말로, 중립적인 ‘경계’(border)보다는 ‘변경’(邊境)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한다.

지은이는 “미국-멕시코 국경은 형성된 지 채 200년이 안 되었고,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국경 마을에는 경계란 것이 없다시피 했다”고 짚는다. 국경의 역사는 한마디로 ‘노동력’ 교류의 역사였다. 스페인으로부터 라틴아메리카가 독립할 당시(1821년)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애리조나, 텍사스, 캔자스 등 미국 중서부·서부 지역은 멕시코에 속했다. 그러나 흑인 노예 노동력에 의존해 목화 농업을 주된 산업으로 삼고 있던 텍사스와 노예제를 폐지(1829년)한 멕시코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19세기 들어 노예무역은 폐지되던 추세였으나, 목화 재배를 확장하던 미국 남부는 한창 노예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텍사스의 독립과 미국 편입, 미국과의 전쟁 등을 거친 끝에 멕시코는 1848년 영토의 절반 이상을, 1853년 리오그란데강 유역까지 미국에 팔게 된다.

미국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티후아나가 인접하고 있는 접경 지역의 모습. 울타리를 중심으로 왼쪽이 미국, 오른쪽이 멕시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새로 획득한 땅을 농업지대로 조성하고 개척하면서 미국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를 멕시코 노동자들로 해결했다. 멕시코 농민들은 3개월 남짓 한시적인 ‘계절이주노동’에 종사했고, 고용 브로커들이 닭장으로 위장한 트럭에 이들을 싣고 국경을 오갔다. 지금도 이주 브로커들을 ‘닭장수’라 부르는 이유다. 그러다 1943년 미국이 멕시코 노동자들을 초청하는 ‘브라세로’ 프로그램을 실시하면서 노동력이 국경을 넘는 일이 공식화된다. 다만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로 불법이주노동 역시 본격화된다. 사용자 입장에선 ‘불법’이 더 싸고 부리기 쉽고 해고까지 쉬웠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멕시코 노동자들은 미국인에게 ‘외국인 노동자’의 전형으로 인식되었고, ‘멕시코인=불법이주노동자’라는 편견이 형성되었다.” 브라세로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력 수출의 경제적 가치를 깨달은 멕시코 정부는 아예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섰는데, 그 대표적인 결실이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 세운 ‘마킬라도라’ 산업지구다. 국경에서 20킬로미터 이내에 외국인에게 공장 설립과 소유, 면세 혜택 등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사람, 노동력이 국경을 건널 수 없으니 기업들이 국경을 넘어와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라”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 노동이주의 가장 큰 특징은, 더 높은 임금을 위해 노동력이 이동한다는 점”이라고 짚는다. ‘세계화’는 자본으로 하여금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전 지구적인 장을 열었다. 그러나 노동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는 데에는 언제나 제약이 뒤따랐고, 자본 활동으로 이익을 누리는 나라와 노동력에 의존해야 하는 나라 사이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졌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계다. 미국-멕시코 국경에는 샌디에이고와 티후아나와 같이 양쪽 나라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쌍둥이 도시’들이 발달했는데, “두 국가 간의 경제적 격차가 도시경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 도시는 부유함이 멕시코 도시는 빈곤함이 나타난다.”

이 경계는 단지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만의 경계도 아닌데, 20세기 후반 들어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주요 인구 유출 지역이 됐기 때문이다. 과거 식민지배 치하의 경제구조를 제조업 중심으로 바꿔내려 했던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의 실패, 농업 부문의 소외, 미국이라는 거대한 소비처가 농민들에게 강요한 마약 생산 산업 등이 세계 체제의 주변부인 라틴아메리카, 그중에서도 더 빈곤하고 더 소외된 계층을 절벽으로 내몰았다. 마리아 메자의 사례에서 보듯 오늘날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는 캐러밴 무리들은 주로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북부삼각지대’ 국가 출신이다.

지난 2020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공약이었던 미국과 멕시코 사이 높게 세운 ‘국경 장벽’을 방문하고 있는 모습. 미국 백악관 누리집

한때 이주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미국은 오늘날 왜 ‘라티노 위협론’ 등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며 그들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는가? “선진국 경제도 예전에 비해 일자리는 줄어들었지만 임금은 충분히 오르지 않고, 주민들 중 상당수가 저임금의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과의 경쟁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히스패닉계는 미국에서 가장 큰 인구집단으로 떠올랐으나,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식의 이주민 차별·혐오도 대두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미국-멕시코 국경을 ‘이주’가 아닌 ‘국가안보’ 차원으로 다스리기 시작했으며, 트럼프 시대에 와서는 물리적 장벽을 세우는 등 전례없이 공격적인 이민 정책까지 등장했다.

지은이는 이를 두고 ‘21세기 마녀사냥’이라 비판한다. 궁극적으로 미국인들의 삶이 팍팍해진 것은 ‘불법이민’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한 세계경제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그리고 “이주민의 불법성을 강조해 그들을 착취 가능한 시스템에 영속적으로 묶어 놓는” 것, 그러니까 ‘불법이라서 싸게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 그 구조의 핵심에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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