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같은 아버지·할아버지”의 제물들이 들고 일어나 [책&생각]

임인택 2023. 7. 21.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보수 정치인의 사위 비서는 장애 아들을 위해 도시 생활을 접는다.

고래와 나무가 정당한 권리를 부여받도록 그들을 대변하는 삶을 살겠다며 이름도 바꾸길, 오키 이사나(大木勇魚, 큰나무 고래)다.

올해 3월 별세한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의 소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전 2권)는 아들 때문에 삶의 경로를 크게 틀었다가 반사회적 청년 무리와 만나 교감하고 함께 '무장 투쟁'에까지 나서는 이사나의 삶을 그렸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평화운동에 헌신했던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 <한겨레> 자료사진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1·2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현경 옮김 l 은행나무 l 각 권 1만7000원

보수 정치인의 사위 비서는 장애 아들을 위해 도시 생활을 접는다. 고래와 나무가 정당한 권리를 부여받도록 그들을 대변하는 삶을 살겠다며 이름도 바꾸길, 오키 이사나(大木勇魚, 큰나무 고래)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 진은 새 소리를 식별하며 제 언어능력도 찾는 듯 활기를 얻었으니 자연은 이들 부자에게 은둔처이자 그나마의 안식처다. 실제 도쿄 교외의 습지대 초입 이들의 거처는 핵전쟁 대비용으로 지었다 방치된 민간 핵 셸터를 개조한 것. 부자는 ‘모순의 공간’에서 쌍안경으로 자연이나 살핀다.

올해 3월 별세한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2023)의 소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전 2권)는 아들 때문에 삶의 경로를 크게 틀었다가 반사회적 청년 무리와 만나 교감하고 함께 ‘무장 투쟁’에까지 나서는 이사나의 삶을 그렸다. 대지진으로 도쿄가 붕괴되리라 전망하는 ‘자유항해단’의 탈주 계획에 동참하면서인데, 결국 정부에 제압되어 죽고 진만 살아남는다. 진과 같은 사회적 약자가 유토피아를 꿈꾸는 당위와 망상적 양태를 ‘비관적 낙관’의 알레고리로 그린 셈이다.

홍수, 고래 등 종교와 신화적 상징은 물론이거니와 가령 청년들이 항해에 대비해 이사나로부터 영어교육을 받으며 “기도(prayer)”의 의미를 나누는 대목도 주요 상징 가운데 하나겠다. 이사나는 자주 넘어지는 아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스스로 넘어져 이를 부러뜨린 경험을 말하고 “아픔과 격투를 벌이는 동안 나는 pray했던 거라고 생각해. …그 덕분에 나는 아픔으로부터 벗어난 것이고, 그 자체로 스스로에 대한 education(교육)을 체험한 게 아닐까”라고 말한다.

고통과 패배에 맞선 응전의 열망, 불멸의 믿음으로서 인류는 비로소 교화된다는 듯 들린다. “…관동대지진 때 우리의 괴물 같은 아버지들, 할아버지들은 조선인을 희생 제물로 바쳤었지? 그건 다른 누구보다 조선인이 약했기 때문이야. 이번 대지진이 일어나면 혐오의 대상이 될 약한 인간이란 바로 우리들이야. 우리들이 오늘날의 괴물 같은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에 의해 희생제물이 되는 거라고. 그 전에 대항해에 나갈 수 있다면야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안 되면 우리 스스로를 그 자리에서 구할 수단을 생각해야지…”

<홍수는…>은 1994년 국내 소개되었다가 단시간 절판되었다고 한다. 1973년 일본 초판본 디자인이 이번에야말로 정식출간된 것이라 출판사는 소개한다. 원전 출간 반세기 만이다. 번역자 김현경씨는 다만 여성 차별적 시각의 한계를 짚어둔다. 그럼에도 작가 오에가 지성인으로 추앙받은 이유는 “저는 스스로의 문장을 부정합니다”라는 말로 대변될 법하다. ‘문체에 대한 비난과 비판을 수용하여 다시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나간다’는 자기부정 정신. 이 책을 두고 평론가 와타나베 히로시와 나눈 대담에서 강조한 말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