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통령의 말에 왜 자꾸 멍해지는가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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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로 벌어진 수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뇌의 작동이 잠시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대통령이 내놓았던 숱한 말들에 왜 그토록 멍해질 때가 많았는지, 분명 우리말인데도 어째서 무슨 의미인지 머릿속에 닿지 않았는지 알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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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로 벌어진 수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뇌의 작동이 잠시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과 ‘수해 복구’ 사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어서였죠.
기호학자 마셀 다네시는 <거짓말의 기술>(21세기북스)에서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를 중심으로 삼아 통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거짓말을 활용하는지 분석합니다. 지은이는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작가 조지 오웰이 지적한 “‘이중 언어’(doublespeak)의 완벽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짚습니다. ‘이중 언어’란 한마디로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모호한 표현의 말장난으로 ‘대안적 현실’을 마치 현실인 양 불러내는 말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한 지은이의 비유가 아주 적확합니다. “말하자면 이중 언어는 정상적인 분자 화합물을 형성하지 못하는 ‘언어적 화학 물질’ 간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 언어다. 의미를 왜곡하기 위해 ‘상반되는’ 원소를 억지로 이어 붙인 결과물인 셈이다.”
그동안 대통령이 내놓았던 숱한 말들에 왜 그토록 멍해질 때가 많았는지, 분명 우리말인데도 어째서 무슨 의미인지 머릿속에 닿지 않았는지 알 듯했습니다. 현실 세계와의 대응을 생각하면 도무지 화합물을 형성할 수 없는 단어들을 그저 언어적으로 결합시켰기에 그 속에서 아무런 의미값도 찾아낼 수가 없던 것이겠죠. 다만 어떤 이들은 그 속에서 ‘대안적 현실’을 찰떡같이 읽어낼 거라 생각하니, 심란해집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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