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는 김 대리, 살아는 있었던가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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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이유, '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왜'에는 관심이 없다.
어쩌면 김 대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적 시스템의 은유였을까? 어느 날 그 시스템이 홀연히 사라지면 조직은 아수라장이 되지만 사람들은 새 시스템을 도로 세우는 일보다 이전 시스템의 흠을 찾는 데만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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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김 대리가 죽었대
서경희 지음 l &(2023)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이유, ‘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왜’에는 관심이 없다. 이 자체 모순인 명제는 다시 쓰면, 사람들은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저 사람이 왜 그랬을까? 궁금하지만 그 진짜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아는 세계의 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다. 유튜브에서 소위 사이버렉카라고 하는 채널들이 범람할 수 있는 환경이다. 편향된 세계의 논리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짜 이유들을 던져주니까.
<김 대리가 죽었대>는 속옷회사 홍보팀 직원들이 회사에서 가장 사랑받던 김 대리의 사망 이유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추석 연휴 이후, 찌뿌듯한 몸과 마음으로 출근한 사람들, 김 대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유도 없고, 출처도 명확하지 않다. 김 대리가 출근하지 않자 회사는 엉망이 된다. 사실 그는 운동으로 가꾼 탄탄한 체형에 직접 꾸민 회사 주방에서 드립 커피를 내려주고, 모든 업무를 착착 처리하며, 동료들의 감정적 문제까지도 다 받아주는 초능력 회사원이었다. 홍보팀 직원들은 김 대리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서서히 그의 사인을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어디로 보나 건강해 보였던 김 대리는 갑자기 왜 죽었을까? 지병일까, 사고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홍보팀 직원들은 미스터리 드림팀을 결성하여, 김 대리의 주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편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는 릴레이 집회가 열리고, 물대포 진압으로 광장은 물바다가 되어버린다.
널리 신뢰받던 한 사람이 죽은 후에 주변인들이 그의 비밀을 발견한다는 설정은 드물지 않다. 일본 소설 후지사키 쇼의 <신의 숨겨진 얼굴>(김은모 옮김, 엘릭시르 출간)도 존경받던 선생님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선생님의 실체를 의심한다는 설정이 유사하다. 하지만 <김 대리가 죽었대>는 이와 비교하면 미스터리적 외피를 쓴 소셜 코미디로서, 약간은 환상적으로 진행된다. 잘 따져보면 김 대리는 존재 자체가 신비한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다른 직원들은 다 구체적인 이름과 가족 배경이 있다. 하지만 김 대리는 이름도 없는 김 대리로만 등장한다. 사실 이처럼 완벽한 인간이 있을까? 그는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고, 아침 운동을 이끌고, 스타일 코치를 해주고, 업무를 다 해결하고, 퇴근이나 휴일에는 동료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쩌면 김 대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적 시스템의 은유였을까? 어느 날 그 시스템이 홀연히 사라지면 조직은 아수라장이 되지만 사람들은 새 시스템을 도로 세우는 일보다 이전 시스템의 흠을 찾는 데만 집착한다. 어차피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하면서.
<김 대리가 죽었대>는 김 대리라는 환상적 인물에 대조되는 현실적 인간의 비루한 삶을 시원하게 묘사하며 사실성을 획득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선의를 기억하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선정적인 소문에 쉽게 매료된다. 자신의 고통은 운명적 재난이지만, 타인의 비극은 그 자신의 과오여야만 한다고 믿는다. 인정하긴 쓰라리지만, 유튜브 알고리듬이 밀어 보낸 “소문과 진상” 유의 가짜 뉴스 영상을 자기도 모르게 클릭하는 현대인 모두의 일면이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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