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로 진격해도 어떤 믿음은 이뤄지지 않으니까 [책&생각]
28회 수상작 출간
믿음 없이 존재 불가능한 세계
“근래 가장 완성도 높은 공모작”
탱크
김희재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5000원
“도저히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적 안간힘” “텅 빈 탱크에서 텅 빈 마음을 채우려는 사람” “실체가 없으므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믿음” 그러한 “믿음의 역설”…. 심사위원들의 독후감이 이러할진대, ‘믿음’이라는 관념어가 이처럼 넘치는 소설을 만나보긴 어려울 것이다.
믿음의 실체를 낚아내는 경로는 둘이다. 소설은 일단 이 세계 ‘믿음’의 방법론을 구체화해 보인다. ‘탱크’라는 독특한 기도실이 그 구실을 한다.
김제 어느 야산에 위치한 탱크는 빈 컨테이너다. 탱크를 관리하는 손부경(36)을 통해 이용자는 예약하고 혼자 그곳을 찾아간다. 안과 밖엔 십자가도, 미륵불도, 하물며 촛불 하나 없다. 신이 없다. 교주, 교리도 없으나 사용 규칙은 있다. 둘이 들어가선 안 된다. 자신의 기도는 자신에게서 자신에게만 닿으리라. 컨테이너 자체를 훼손해선 안 된다. 믿는 행위를 훼손하는 행위다. ‘바깥’은 훤하고 ‘안’은 암막으로 컴컴하다.
규칙보다 이용자들이 ‘기도발’을 키우려는 규칙 아닌 규칙이 더 많은 듯하다. 마침 마을은 옛 서낭당이 있던 공터를 ‘신성한 구역’이란 푯말로 구분해뒀는데 탱크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거기서부터 기도하려는 자들은 “천천히 마음을 다림질해야” 한다. 기도 전 눈물이 쏟아지면 그냥 우는 게 낫다. “안 울려고 해도 결국 어떻게든 울게” 된다. “일단 실컷 울고 나면” “덜 우는 날이 오는 거”고 “그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문을 외우면” 된다.
왜 우는가, 무슨 기도문인가, 무엇을 위해서든 필요한 건 기도하는 탱크가 아니라 기동하는 탱크 아닌가.
이런 의문 앞에서 소설을 가득 채운 믿음은 종교적 믿음이 아닌 개인적인 ‘의지’, 의지 이전의 자책과 슬픔이라 기도는 제 절망과 상실을 견뎌내려는 지극히 자폐적인 ‘독백’임을 알게 된다. 사랑의 고백.
그렇게 정도선(38)은 이혼 후 슬럼프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탱크는 지인이 알려줬다. 작가로서의 성공은 미국에 두고 온 딸 로사를 만날 유일한 방법인 터 도선은 탱크를 더 절박하게 찾는다.
도선은 이 소설을 이끈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둡둡(26)과 양우(28)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다소곳하던 소설이 초입 한번 비등하는 지점이 바로 둘의 등장 이후다. 이즈음이겠다, 작중 시점으로 치면. 사람이, 길이, 도시가 장맛비에 잠기던 한여름 사랑하던 둘이 ‘믿음’으로 틀어지기 시작한다. (지난해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강성봉 작가도 둘이 채팅하는 때부터 읽던 자세가 달라졌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둡둡과 양우는, 탱크로 형상화된 믿음의 동기와 방법론을 넘어, 믿음의 부유 상태와 결과를 통해 믿음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이 시대를 핍진하게 감각시킨다.
감성적인 대학생 둡둡, 공장 노동자 양우는 영화 채팅앱을 통해 만나 마음을 나누게 된다. 양우는 10대 때 어머니와 할머니를 여읜 이래 홀로 바라고 말 것도 없이 “노동이라는 분쇄기에 갈려 나가기 바빴던 하루하루”를 살아온 자다. 둡둡은 부모와의 소중한 시절을 어제처럼 기억하며, 동성애 커밍아웃 뒤 가정의 화목이 산산조각 난 오늘을 견디는 중의, 하여 내일은 더 절망스러운 이다. 그가 간절히 바라는 건 하나다. 부모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길, 다 함께 무지개색 찬란한 거리를 걸을 수 있길. 둡둡이 탱크에 기댄 까닭이다.
여기서 놓칠 수 없겠다, 어떤 믿음은 열정과 노력만으로, 가령 진격하는 탱크로도, 실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애타게 기도하고 더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절실하여 집착할수록 불신받는 믿음 아니던가. 결국 양우조차 둡둡에게 “정신 차리라” 소리 지르고 만다.
가장 ‘외롭고 낮고 쓸쓸한’ 믿음조차 품는 데가 즉 탱크다. 과연 둡둡이 탱크 안에서 울음으로 토했을
기도문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도 그것을 듣진 못한다. 다만 한 대사로 가늠해볼 법하다.
비가 퍼붓던 날 자살한 게이 친구를 조문하고 초췌히 돌아온 둡둡은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소동을 독백하듯 양우에게 읊는다. (단행본상 5쪽이 넘는) 한 호흡의 유려한 말들은 둡둡이 매일 바라면서 비관하고 또 애원하는 믿음의 현주소다. (마치 단편 한 권이 압축된 듯) 믿음, 믿음의 배반, 배반의 웃음, 웃음의 배반이 접목되어 듣는 자를 격동시킨다. 이후 겨우 쥐고 있던 한 가닥 믿음조차 끝내 놓았을 때 둡둡이 선택할 삶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탱크가 놓인 야산에 큰불이 나고 하필 그 시각 둡둡이 탱크 안에서 목숨을 끊으며 사태는 급변한다. 탱크를 만든 황영경, 매니저 손부경 의붓자매가 처벌을 받고, 탱크는 광신도들의 일탈처럼 세간에 알려진다. 하지만 당초 탱크를 불신했던 양우는 달라져 있다. “탱크를 믿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다는 마지막 말이 핵심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에서 죽었다고. 그렇지만 그게 탱크의 잘못이나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었다고. 그것은 무언가를 강하게 믿고 희망을 가질 때 따라오는 절망의 문제였고, 세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맞닥뜨리는 재해에 가까웠다고. 그러니 언젠가 당신에게도 재해가 온다면 당황하지 말라고. 대신 잠깐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보라고. 그러면 한 번도 기다린 적 없던 미래가 평생을 기다린 모양을 하고 다가오는 날이 올 거라고.”
또 탱크를 믿는 자들에게? 그렇다. 탱크가 불에 타고, 사람이 죽고, 누군가 처벌을 받고, 그 지역에 또다시 산불이 일어나는데도 탱크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야흐로 하나에서 각지로 번져나고 있었다.
<탱크>는 ‘한겨레문학상’ 사상 이례적으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30분 만에 추려진 당선작이다. 심사위원들이 제기한 드문 ‘흠’ 중 하나가 제목이었다. 협소하고 강렬한 이미지 때문이다. 김희재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의 이야기들이 모두 탱크를 향하고 있어 바꿀 수 없었다”고 지난 18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설명투의 한계는 소재의 독특함, 믿음과 냉담, 사이비와 사이비 아닌 것의 옅은 경계에서 살아가는 세태에 대한 깊은 이해로 너끈히 극복된다. 더불어 소설 속 표명된 ‘글쓰기에 대한 믿음’은 신예 작가의 것처럼 단단해 보인다. 글이라는 것을 읽지 않다 도선의 소설에 빠져드는 둡둡의 연인 양우, 제한된 습성과 규범으로 살다 스스로 글을 써가는 둡둡의 아버지 강규산이 그러하다. 모두 ‘안’에서 ‘바깥’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이다. 도선은 마침내 둡둡의 믿음을 실현시켜주는 소설을 쓴다. 도선은 말한다.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어떤 미래는 오고 그 미래의 모양은 매우 익숙해서 주인공은 그것이 누군가의 꿈이었고 바깥이었던 것을 알아차린다.”
심사위원들의 추천사는 소설에 대한 ‘믿음’도 가득 담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추천사를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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