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힘들어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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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의 표지에는 제목 글자가 커다랗게 올라앉아 있다. 그랬구나!>
책을 돌려 아래쪽 그림을 보면 소의 말이 어떻게 와전되었는지 진상이 밝혀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누군가 힘들어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우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진짜 힘든지 아닌지, 그와 자신 중에서 누가 더 힘든지, 힘들다는 말에 저의는 없는지 의심하기에 앞서 먼저 큰 느낌표를 준비하고 몸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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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그랬구나!
작은별밭그림책 10
치웨이 글·그림, 조은 옮김 l 섬드레(2023)
<그랬구나!>의 표지에는 제목 글자가 커다랗게 올라앉아 있다. “그랬구나!”는 누군가의 사정을 알아주는 말, 공감 먼저 해주는 말이다. 느낌표 때문일까? 몰랐던 게 미안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표지에서 소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고, 어떤 사람이 위로하듯 소를 쓰다듬고 있다. 모두 윤곽선으로만 표현되어서 그 사정이 더욱 궁금했다.
이 그림책은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면은 위아래로 나뉘어 있고 전반부는 윗부분, 후반부는 아랫부분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어 있다. 독서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라면 나중에 책을 거꾸로 돌려서 먼저 진행된 이야기의 이면을 알게 되리라 짐작할 수 있다.
밭을 갈고 온 소가 자신을 반기며 달려온 개에게 “나 오늘 너무너무 피곤해. 내일 하루는 진짜 푹 쉬고 싶다!”라고 하소연한다. 개는 고양이에게 소가 힘들어했다며 “내일 하루는 쉬어야겠대”라고 말한다. 고양이는 여기에 “솔직히, 농부 아저씨가 소를 너무 심하게 부려 먹지!” 하는 의견을 보태 거위에게 소식을 전한다. 염소, 수탉, 돼지를 거쳐 가는 동안 이야기는 조금씩 거칠어져서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전할 때는 “소가 다른 농장에 가겠대. 당신 성질 나쁘다고 엄청 욕하나 봐”가 된다.
이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볼 차례. 책을 돌려 아래쪽 그림을 보면 소의 말이 어떻게 와전되었는지 진상이 밝혀진다. 문제는 그 전에 아저씨가 다짜고짜 소를 야단치는 장면이다. 소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표지와 달랐다. 나는 그 장면의 소가 너무 안되어서 화가 났다. 옛이야기 같은 설정을 감안해도 열심히 일하는 소한테 아저씨가 고작 “하루 푹 쉬라고” 휴가를 주는 것도 야속했다. 그림 덕분에 다행히 따뜻한 느낌으로 책을 덮었지만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아저씨 귀에 들어간 소문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바로 소가 힘들다는 것이다. 농장의 어떤 동물들은 재미로 말을 부풀렸겠지만 어떤 동물들은 “아저씨는 소가 안쓰럽지도 않나 봐” 하며 소를 걱정했다. 늦게나마 사정을 헤아리는 이들은 몸을 숙여 소의 말을 경청한다. 그러니 아마 표지는 소의 억울함과 아저씨의 미안함을 담은 연출일 것이다. 나는 이 그림책의 주제가 ‘연기가 나는 굴뚝 아래를 살펴보자’는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가짜 뉴스’를 가려내고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한 건 물론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누군가 힘들어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우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진짜 힘든지 아닌지, 그와 자신 중에서 누가 더 힘든지, 힘들다는 말에 저의는 없는지 의심하기에 앞서 먼저 큰 느낌표를 준비하고 몸을 기울여야 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소식이 잘 전해지지 않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덧붙이자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소문을 사실로 돌려놓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작가의 말>). 그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읽은 것 같지만 독자는 좀 그래도 된다.
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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