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이후 40년, 여전히 미쳐 있는 여성들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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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나온 페미니즘 문학 비평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 첫 문장은 강렬하고 도전적이다. 다락방의>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등 19세기 영국 소설가들의 작품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한 이 책은 페미니즘 문학론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
<여전히 미쳐 있는> 은 그 책의 두 지은이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가 2021년에 낸 후속작으로,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미국 사회 변화와 그에 대한 페미니즘의 응전을 다루었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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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년간 미국 페미니즘 다뤄
주요 작가·작품과 운동 꼼꼼히 소개
“분열과 백래시에도 희망은 여전해”
여전히 미쳐 있는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l 북하우스 l 3만3000원
“펜은 페니스의 은유인가?”
1979년에 나온 페미니즘 문학 비평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 첫 문장은 강렬하고 도전적이다.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등 19세기 영국 소설가들의 작품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한 이 책은 페미니즘 문학론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 <여전히 미쳐 있는>은 그 책의 두 지은이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가 2021년에 낸 후속작으로,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미국 사회 변화와 그에 대한 페미니즘의 응전을 다루었다.
두 지은이가 다시 협업을 결심한 배경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로 귀결된 2016년 11월 대선과 이듬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튿날 열린 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 행진이 있었다. 지독한 절망과 환멸, 그리고 그에 이어진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노익장을 부추긴 것이다. 문학과 가정의 양립을 꿈꾸었으나 결국 좌초하고 만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책은 지난 70년 간 명멸한 작가·이론가·활동가들의 삶과 작업의 궤적을 좇은 끝에 2020년 2월4일 미국 의사당에서 펼쳐진 인상적인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탄핵 소추 대상이 된 대통령 트럼프가 거짓말로 가득찬 연두교서 연설을 마치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상징적이고 극적인 몸짓으로, 침착하게 대통령 연설문 각 부분의 각 장을 반쪽으로 찢는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이 모습은 “미친 낸시”의 증거로 다가왔겠지만, 길버트와 구버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타당한 이유로 여전히 미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에이드리언 리치, 오드리 로드, 조앤 디디온, 베티 프리단, 수전 손택, 케이트 밀릿, 토니 모리슨, 어슐러 르 귄, 글로리아 스타이넘, 앨리스 워커, 마거릿 애트우드, 주디스 버틀러, 앤 카슨, 리베카 솔닛… 지은이들은 이 여성들의 작업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 서로 간의 영향과 협력 및 긴장 관계 등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흔들리는 1950년대, 폭발하는 1960년대, 깨어난 1970년대, 페미니즘을 다시 쓴 1980년대와 1990년대, 후퇴와 부활의 21세기. 책을 이루는 다섯 개 부의 제목은 미국 페미니즘의 흐름을 적절히 요약한다. 이 연대기의 가운데를 차지한 1970년대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참정권 운동으로 대표되는 제1물결에 이은 제2물결 페미니즘이 본격 개화한 시기다.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제안, 정치 집회, 보육 센터, 매 맞는 여성들의 쉼터, 강간 위기 센터, 차별 철폐 정책, 페미니스트 예술 공동체, 서점과 출판사, 여성학 연구 프로그램, 무수히 많은 저널들”이 이때 나왔다.
페미니즘은 퀴어 운동과 흑인 민권 운동 등과 연대하며 폭을 넓혔지만 분열과 갈등, 게토화로 위축되거나 백래시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에필로그에서 지은이들은 2021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낭독한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시인 어맨다 고먼의 시를 인용한다. ‘우리가 오르는 언덕’이라는 제목의 이 시에서 고먼은 자신의 세대가 후퇴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겁을 집어먹었다고 해서 다시 뒤로 돌아가거나/ 가로막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자신들보다 대략 두 세대 아래인 고먼의 다짐에서 두 지은이는 희망의 근거를 확인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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