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농장, 우박 이어 과수화상병…“보상기준 현실화해야”
연이은 재해로 확산세 가팔라
동량면 등 피해규모 17㏊ 육박
“손실보상금으론 재기 힘들어
농작물재해보험도 개선 시급”
“우박이 갑자기 내려 사과농장을 망쳐놓더니 이젠 과수 화상병이 덮쳐 평생 일군 사과나무를 하루아침에 땅에 묻었습니다.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합니다….”
6월11일 우박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지 한달여 만에 찾은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장선마을은 곳곳에서 굴착기 작업 소리만 요란하게 들릴 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산비탈을 따라 펼쳐졌던 사과 과수원은 검붉은 흙을 그대로 드러낸 채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매몰작업 중인 굴착기를 바라보던 박기환씨(76)는 “우박으로 사과밭이 망가졌어도 어떻게든 과일 하나라도 더 건지려는 간절한 마음에 중원농협에서 지원해준 살균제와 영양제를 뿌리고 밤낮으로 정성을 쏟았는데 화상병이 발생해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확을 10여일 앞두고 화상병 피해를 본 강규봉 원예조합동량사과작목반장(65)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병이 여기저기 터져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며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사과농사를 평생의 업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릴지 막막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화상병은 사과·배 등 장미과 식물에서 주로 발생한다. 가지나 잎에 검은색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해 불에 타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말라 죽는 병이다. 한번 걸리면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과수 에이즈’라고도 불린다.
올해 충주에서는 7월 중순임에도 병 확산세가 멈출 기미가 없다. 5월8일 지역에서 첫 양성 판정이 나온 이후 이달 10일 기준 발생규모가 16.8㏊(55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우박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동량면과 용탄동을 중심으로 6월 중순 이후 18곳의 과수원에서 7.1㏊의 피해가 났다.
충주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매년 6월말 이후 기온이 상승하면 화상병 발생이 주춤해졌다”며 “하지만 올해는 우박 피해로 줄기와 잎에 상처가 나 사과나무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데다 예년보다 이른 장마로 병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피해 농민은 정부의 보상 기준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화상병 발생에 따른 손실보상금 단가는 10a(300평)당 재배 그루수(심긴 나무수)와 나무 수령으로 세분화해 과수 잔존가치, 당해 연도 농작물 가치, 향후 2년간 영농 손실 등을 고려해 산정한다.
전국재씨(62)는 “화상병으로 매몰된 과수원엔 2년간 사과나무를 심을 수 없고, 심은 후에도 제대로 수확을 하려면 4∼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현재 기준으로 지급되는 손실보상금으로는 그동안 들어간 영농비용과 융자금 등을 갚고 나면 손에 남는 게 거의 없어 농사를 다시 시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6월 우박 피해에 따른 농작물재해보험금에도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화상병이 발생해 나무를 모두 매몰한 농가는 보험금을 한푼도 받지 못한다. 보상을 안해주면 보험료라도 돌려줘야 하는데 남은 계약기간에 해당하는 비용만 주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박씨는 “우박 피해와 화상병은 엄연히 별개의 사안인데 화상병 발병을 이유로 보험금을 주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며 “보험금을 못 받을까 봐 농가는 화상병 신고를 꺼리게 될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제도가 병 확산을 부추기는 꼴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서 그는 “정부 차원에서 한순간에 삶의 기반을 잃어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농가의 심리치료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화상병 창궐로 충주 최대 사과 생산지인 동량면의 지역경제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과는 동량면 농산물 생산액의 80%를 차지하는 작물이다.
진광주 중원농협 조합장은 “앞으로 6∼7년간 사과 생산이 급감해 지역경제가 침체하고 농협의 판매·경제·신용 등 사업 전반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재난에 버금가는 피해를 본 만큼 정부가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