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대맛] (45) 요즘빙수 vs 옛날빙수
요즘빙수
신선한 생과일 가득 … 고급 식재료도 ‘협연’
‘스몰 럭셔리’ 누리는 먹거리로 인기 상승세
재료 다양해져 사계절 즐기는 메뉴로 거듭
옛날빙수
‘전설의 팥빙수’ 파는 대전 성심당
옛맛 찾는 손님 발길 끊이지 않아
“얼음 빙수라 끝맛 깔끔한게 매력”
[요즘빙수] 우유 눈꽃 위 트러플까지…빙수, 하나의 장르가 되다 와그작와그작. 입안에 얼음을 가득 넣고 씹으면 금세 땀이 마르고 시원해진다. 다채로운 고명을 올려 구수하거나 달곰한 맛을 더하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무더위를 날리는 맛있는 방법, 바로 빙수다. 소박하게 차린 옛날 팥빙수부터 고급 과일과 이색 재료를 올린 요즘 빙수까지 취향대로 골라 먹자.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주목할 외식 트렌드’ 10대 키워드 가운데 첫번째는 ‘양극화’다. 사람들은 고물가 시대를 맞아 저렴한 것을 찾아 먹으면서 동시에 헉 소리가 날 만큼 비싼 음식을 즐긴다.
평소 소비생활보다 큰 지출을 감행하는 것을 ‘플렉스(Flex)’라고 한다. 요즘 가장 인기를 끄는 음식계 플렉스는 단연 빙수다. 2008년 신라호텔이 2만원대 제주산 애플망고 빙수를 선보인 후 여러 호텔 식당과 카페에 고급 빙수가 등장했다. 소박한 옛 팥빙수와 달리 요즘 빙수는 고소한 우유얼음에 생과를 듬뿍 넣어 신선하면서 영양이 풍부하다. 가장 흔한 고명인 팥을 빼고 빙수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색 재료를 더하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카페인 ‘투썸플레이스’는 치즈케이크 한조각을 통째로 올린 빙수도 내놨다. 재료에 따라 가격은 1만원대부터 10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빙수를 맛보러 서울 중구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에 갔다. 르메르디앙은 올해 ‘오솔레일 빙수’를 내놨다. 그중 눈길을 끄는 빙수 두개를 주문했다. 먼저 국내산 블루베리가 듬뿍 든 블루베리 빙수다. 세가지 맛 아이스크림이 꽂힌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각각 블루베리·망고·딸기 아이스크림이다. 한입 베어 무니 과육이 씹히며 상큼함이 미각을 깨운다. 고명으로 장식된 모나카까지 해치우고 본격적으로 빙수를 맛볼 차례. 블루베리맛 우유아이스크림을 곱게 간 얼음은 씹을 것도 없이 금세 녹는다. 우유의 고소함은 진하고 단맛은 은근해, 새콤한 블루베리와 잘 어울린다.
두번째는 트러플(송로버섯) 팥빙수. 팥·흑임자·쌀 아이스크림에 무려 금보다 비싸다고 알려진 송로버섯이 올라간다. 우유얼음 위에 송로버섯오일이 둘러져 있는데, 한술 뜨면 특유의 향이 확 퍼진다. 얇게 저민 송로버섯은 씹는 맛도 재밌다. 잘게 부서지면서 향이 한층 진해지며 존재감을 뽐낸다. 첫입엔 어색해서 갸웃했던 고개가 숟가락질을 반복할수록 끄덕임으로 바뀐다. 빙수는 달아야 한다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그릇이 반 정도 비면 함께 나온 초콜릿을 올려 달게도 즐길 수 있다.
가격은 블루베리 빙수가 5만3000원, 트러플 팥빙수가 6만3000원이다. 디저트 가격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잠시나마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작은 사치로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행위)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빙수 전문점 ‘부빙’은 오픈런을 부르는 곳이다. 여름은 물론, 가을·겨울에도 1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 다달이 제철 농산물 한가지로 맛을 낸 빙수를 판다. 7∼8월 대표 메뉴는 초당옥수수 빙수다. 달곰 짭짤한 초당옥수수크림이 얹어져 나온다. 후추를 뿌리면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지난겨울에는 흑임자 빙수, 유자 빙수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가격은 9000원에서 1만원이다.
제철 농산물과 고급 식재료를 얹은 요즘 빙수는 디저트라고 얕보기엔 영양이 좋고 맛도 다채롭다. 이 정도면 여름철 보양식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
[옛날빙수] 물얼음에 단팥 듬뿍…추억의 힘은 강하다
“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마 녹지마.”
가수 윤종신이 부른 ‘팥빙수’는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빙수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한다. 곱게 간 얼음에 달곰하게 쑨 팥을 얹고 설탕시럽을 머금은 과일과 찹쌀떡까지 더하면 한여름의 별미 ‘옛날 빙수’가 완성된다. 요즘에는 우유얼음을 갈아 만든 ‘눈꽃 빙수’, 팥 대신 다양한 과일을 올린 빙수도 나오지만 추억의 옛 맛을 못 잊어 그 시절 ‘빵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빙수를 언제부터 먹었을까? 조선 후기 문신 유만공이 쓴 ‘복일’이라는 한시에는 ‘수박 주발에 수정 같은 얼음 부셔놓으니/ 차가운 기운이 삼복더위를 물리치네’라는 구절이 등장해 조선시대부터 얼음을 넣은 수박화채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콘텐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빙수의 근대성에 관한 고찰’에 따르면 얼음을 갈아 만든 빙수는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 상인을 통해 전래했다. 그 후 빙수는 큰 인기를 끌었고, 1915년엔 경성(지금의 서울) 내 빙수가게가 432곳에 달했다.
초기 빙수는 잘게 간 얼음에 딸기 등으로 만든 알록달록한 시럽을 뿌려 완성했다. 정확한 시기를 알 순 없지만 팥이 빙수 위에 올라간 것은 나중 일이다. 팥빙수라는 말도 1970년대초에야 등장했다. 팥에는 몸의 열을 식히는 효능이 있고, 복날엔 팥죽을 먹었을 만큼 사람들에게 여름 음식으로 익숙한 곡물이었다. 팥빙수는 얼음뿐이던 빙수에 씹는 맛과 든든함까지 더했다.
1956년 문을 연 대전 대표 빵집 ‘성심당’은 1960년부터 팥빙수를 팔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성심당을 운영하는 임영진 대표(69)는 1983년 빙수 포장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실용신안·특허까지 받았다. 집에서 양푼을 들고 와 빙수를 포장해가던 손님들을 보고, 병원에서 링거를 보관하던 스티로폼 상자에서 영감을 얻어 빙수 용기를 제작했다. 이 용기에 넣은 빙수는 무려 3시간 동안이나 녹지 않았다고 한다. 빙수를 사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 사람도 있었고, 성심당에선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빙수를 대전 곳곳에 배달했다.
임 대표는 “장사가 잘될 때는 빙수가 하루에 5000~6000그릇씩 팔려 온 가족이 얼음을 가느라 아주 힘들었다”며 “병원·관공서에 배달을 갔을 때 손님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고생이 싹 가시는 듯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구 은행동 성심당 본점 옆에 있는 성심당 옛맛솜씨에선 현재 옛날 빙수인 ‘전설의 팥빙수’를 판매하고 있다. 흰 눈 같은 얼음 위에 매장에서 쑨 국산 단팥, 딸기절임, 찹쌀떡, 생크림을 올리고 꿀시럽을 뿌려 마무리한다. 가격은 단돈 6000원. 성심당 옛날 빙수를 제대로 즐기려면 얼음과 팥·딸기절임을 한번에 먹어야 한다.
성심당 빙수를 맛보러 서울에서 온 유정은씨(32·서울시 관악구)는 “얼음 빙수는 끝맛이 깔끔하고 시원한 게 특징”이라며 “여름이 가기 전 성심당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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