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값 내렸는데 파스타값 왜 오르지?…'그리드플레이션' 논란

최정희 2023. 7.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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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플레이션-기업 마진, 물가 죄인인가]①
주요국 '물가잡기'용 추가 금리 인상 한계
생산자 물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는데 근원물가 더디게 둔화
'기업 마진'이 고물가 원인으로…"기업들, 2년간 34조 추가 이익 얻어"
IMF "향후 물가 전망, 기업의 비용 흡수 여...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국제 밀값은 떨어졌는데, 왜 라면, 파스타 가격은 그대로인 거지?’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 논란이 확산된 것은 이런 작은 의문에서 시작됐다.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만큼 올려 정책적 한계에 다다른 데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임에도 왜 물가상승률은 목표치(2%)로 빠르게 돌아오지 않을까. ‘탐욕(Greed)’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그리드플레이션’이라는 용어로 기업의 높은 이익이 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주범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만 기업 마진을 통제할 경우 물가 상승세가 억제될 것인지, 오히려 부작용만 커지는 것은 아닌지 등의 우려도 제기된다.

생산자 물가 떨어지는데 소비자 물가는 여전히 높아

그리드플레이션 논란은 올 들어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서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빠르게 낮아지는 데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더디게 떨어지면서 제기됐다. 생산자와 소비자 물가간 격차가 커질수록 기업의 마진이 커지기에 ‘탐욕’이란 단어가 붙었다.

주요국의 생산자 물가상승률을 보면 대체로 마이너스 또는 0%대로 급격하게 떨어진 상태다. 디플레이션 논란을 겪는 중국의 경우 6월 생산자 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5.4%를 기록해 9개월째 하락세이고, 유럽은 5월 -1.5%를 기록했다. 유로존의 생산자 물가상승률은 작년 8월 43.4%에서 올 5월 마이너스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미국 역시 6월 0.1%의 상승률을 기록할 정도로 낮아졌다. 주요국 중 물가가 가장 더디게 하락하는 영국도 6월 0.1%로 내려앉았다. 우리나라 역시 5월 0.6%에 불과했다.

하지만 0%대 또는 마이너스 수준의 생산자 물가상승률에도 소비자 물가는 빠르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0%대 생산자 물가상승률의 한국과 미국의 6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각각 2.7%, 3.0%로 집계됐다. 유로존은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이지만,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6월 5.5%에 달했다. 영국은 6월 기준 7.9%다. 주요국의 소비자 물가와 생산자 물가간 상승률 격차는 2~7%대로 벌어졌다.

특히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의 경우 둔화세가 매우 더디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근원물가 상승률은 각각 3.5%, 5.0%로 고점(4.3%, 6.3%) 대비 각각 0.8%포인트, 1.6%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둔화하는 와중에서도 근원물가 전망치는 상향 조정될 전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올해 근원물가 상승률은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과 양호한 서비스 수요 등으로 지난 전망치(3.3%)를 소폭 상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조적 물가 상승 원인은 수요·비용 인상 가격 전가

기조적 물가상승이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 수요와 기업의 누적된 비용 인상 가격 전가가 꼽히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작년 내내 수요 억제를 위해 정책금리를 중립금리 이상으로 인상하면서 정책 여력이 소진됐다. 우리나라는 기준금리를 3%포인트 올린 3.5%에서 금리 인상이 사실상 종료됐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리를 5%포인트 올렸고 추가로 올려봤자 1~2회일 것으로 전망된다. 높은 금리에 금융불안이 반복되고 있어 추가 금리 인상에는 한계가 있다.

남은 것은 기업의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다. 작년까지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어 소비자 가격 인상에 대한 반발이 덜 했으나, 올 들어선 원자재 가격 하락에 생산자 물가까지 빠르게 둔화함에 따라 소비자 가격 인상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포브스 글로벌 2000에 속한 우리나라 대기업 45개를 분석한 결과 2021~2022년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악화로 인한 물가상승기때 34조원의 추가 이익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의 고통을 받는 동안 기업은 돈을 벌었으니 이제는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기업이 비용 흡수하면 물가 잡히나

기업이 누적된 비용 부담을 자체 흡수할 경우 물가가 잡힐 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최근 보고서에서 “유럽의 물가 전망은 기업 이익이 임금 상승을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물가상승률이 유럽중앙은행(ECB) 목표치인 2%에 도달하기 위해선 기업들은 더 작은 이익 배분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IMF는 2022년 1분기부터 2023년 1분기까지 소비 디플레이터를 통해 유로존의 물가상승 요인을 분석한 결과 45%는 기업 이익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향후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늘더라도 흡수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 IMF의 설명이다.

반론도 나온다. 물가를 잡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닐 시어링 영국 캐피탈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은 기업들의 이익 추구로 2~3%포인트 더 높아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업의 이익 확대가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는 비난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일부 기업의 이익이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에서 가격 전가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IMF가 소비 디플레이터를 통해 물가상승 요인의 절반 가량이 기업 이익이라고 분석한 것에 대해서도 과대 추정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을 타깃으로) 가격상한제와 같은 정책을 펴는 것은 공급을 억제해 물가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통화정책은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데, 아직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 중앙은행은 수요 억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희 (jhid02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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