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공간으로 채집한 팬데믹의 불안과 상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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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으로 묘사한 방 안.
한편의 스마트폰 형상과 어우러지는 무음 진동소리, 방울소리, 악기 조율 소리 등과 함께 불안감을 자극한다.
하필 불안하고 암울했던 시절이다.
한주옥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큐레이터는 "팬데믹 시기 누구나 느낀 불안감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과거와 현재의 중간에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서 있는 '중간계'의 자아를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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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 회화·아날로그 기반 미디어 아트 독창성
아라리오 갤러리... 이승애 개인전 '서 있는 사람'
흑백으로 묘사한 방 안. 삼각뿔, 원뿔과 같은 기하학 구도의 형상이 일상의 물건이나 사람 형태로 나열된다. 하지만 이내 하나, 둘, 서서히 사라진다. 언뜻 보면 이미지 배열의 규칙성이 안정감을 주는 듯하다. 하지만 뜯어보면 이들은 바닥에 안착하지 않거나 위태롭게 서 있는 구조다. 한편의 스마트폰 형상과 어우러지는 무음 진동소리, 방울소리, 악기 조율 소리 등과 함께 불안감을 자극한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지난 12일부터 열리고 있는 이승애 작가의 개인전 ‘서 있는 사람’ 전시작 11점 가운데 하나인 '디스턴트 룸(Distant Room)'이다. 19년간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해 온 작가는 어두운 전시장 안 패널에 프로젝터 빛을 쏴 보여지는 이 전시에서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기간에 느낀 감정과 정서를 표현했다.
공간(작가의 런던의 작업실)을 보여주지만 시간과 기억을 액자에 담아 전달하는 셈이다. 하필 불안하고 암울했던 시절이다. 불편하지만 공감은 있다. 한주옥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큐레이터는 “팬데믹 시기 누구나 느낀 불안감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과거와 현재의 중간에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서 있는 '중간계'의 자아를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는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는 지난 2020년 잠시 귀국했다가 영국의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로 런던의 작업실 공간을 원격으로 비워야 했다고 한다. 팬데믹 시기에 부친상도 당했다. 공간과 인연의 단절 속에 부유하는 듯한 자아를 화방을 소재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단색 회화의 아날로그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 아트 방식의 표현 기법도 독창성이 있다. 작품 속 형상은 대부분 나무 등 사물 위에 종이를 대고 흑연을 칠해 물성을 드러내는 탁본 이미지의 결합이다. 이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뒤 스톱 모션으로 연결했다. 소리도 작가가 직접 채집하거나 사들여 이어 붙인 것.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완성까지 1년여 공을 들였다.
탁본 회화를 '콜라주(Collageㆍ여러 요소를 한데 오려 붙이는 예술기법)'로 완성한 벽화도 전시됐다. 회화 ‘서 있는 사람 I(The Wanderer I)’도 같은 기법을 쓴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추상이지만 멀리서 보면 구상이다. 작가는 “기-승-전-결의 내러티브에서 해방돼 이미지를 쌓아 올리며 의미를 확장함으로써 작업 당시 정서나 기억을 붙잡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전시는 8월 19일까지.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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