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수수께끼 시 한 편… 20년 전 과거로 문이 열렸다 [세계의 콜드케이스]
중학생·싱글맘 피살 배후 동일인 정황
관심에 갈증… 잊히기 싫어 침묵 포기
“예술로 몸속 야수 통제” 딸에 고백도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결국 빨간 공이 가라앉는 순간/ 앉아서 생각하는 남자를 나는 안다./ 20년 전 일어난 그 사건의 단서를.// 당신이 훔쳐보도록 이 메모로 유혹한다./ 애초 찾지 않은 곳들을 살펴보면/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발견한 두 구의 시신에 대한 답을.// (하략)”
1984년 봄 어느 날, 캐나다와 국경을 접한 미국 동북부 메인주(州) 소읍 포트페어필드에서 출판되는 지역 주간지 ‘포트페어필드 리뷰’ 편집장 톰 하비의 책상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봉투에 든 것은 손으로 쓴 수수께끼 같은 시 한 편이었다. ‘미스터리 게스트’(정체불명의 손님)라고 서명한 필자는 뭔가 암시를 주려 했지만, 그가 풍기는 냄새가 사실상 글의 전부였다.
그래도 하비는 직감했다. 20년 전 과거로 문이 열리고 있었다. 오래된 미제 살인 사건의 대단원이 시작될 참이었다. 열쇠는 우편물 소인이었다. 접수일(1984년 3월 28일)과 함께 찍힌 반송 주소가 코네티컷주 소머스였는데, 주 교도소를 뜻했다. 용의자 필립 리로이 애덤스가 수감돼 있는 곳이었다.
말썽꾼의 아파트
1964년 12월 크리스마스 이튿날 저녁 6시. 포트페어필드 중학교에 다니는 14세 소년 사이러스 에버렛이 프레스크 아일가(街)의 집을 나와 겨울빗속으로 들어갔다. 수금을 위해서였다. 사이러스는 신문 배달로 용돈을 벌었다. 소년이 현관문을 두드릴 때마다 동네 고객들은 미소로 그를 맞았다. 팁을 넣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대금과 함께 건네는 이도 있었다.
그날 사이러스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밤 8시 30분이 그가 목격된 마지막 시간이었다. 소년은 신문 배달 경로의 종점인 디포가의 한 아파트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22세였던 필립 애덤스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엄마 메리 에버렛은 아들이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3,000명 남짓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 한 소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달쯤 뒤 같은 아파트였다. 이번에는 24세 ‘싱글맘’이자 주점 종업원(칵테일 웨이트리스)인 도나 마치가 숨진 채 발견됐다. 둔기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쪼개졌다. 사이러스 실종 당시 연루 의심을 샀던 필립이 다시 용의자로 떠올랐다. 휴식이 필요하다며 필립이 정신병원에 들어가자마자 그가 살던 집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가 도나였고, 일주일 만에 퇴원한 그가 해당 건물 내 이웃집으로 이사 온 지 엿새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필립은 동네가 다 아는 말썽꾼이었다. 사기를 저질러 복역하고 나온 지 얼마 안 된 데다 아동 성폭행 전과도 있었다.
포트페어필드의 겨울은 길다. 봄까지 땅이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다. 5월 초 해빙이 되자 실종된 사이러스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필립이 사는 아파트 근처 늪지에서 아이 셋이 놀다가 찾았다. 키 150㎝(5피트), 몸무게 45㎏(100파운드) 남짓 체구가 약 300㎏(670파운드) 나무 몸통에 깔려 있었다. 필립은 궁지에 몰렸다.
수사당국 vs 주민
수사당국은 무능했다. 헛다리가 대표적이었다. 사이러스가 증발했을 때 경찰은 아빠가 사는 캐나다로 소년이 떠났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넘겨짚었다. 짐작 근거는 부모의 이혼 사실뿐이었다. 그럴 리 없다는 엄마 얘기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도나 사건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나의 직업과 두 차례 이혼 경력, 복잡한 연애 편력에 매몰된 나머지 치정 살인으로 성급하게 단정했다. 증거도 없이 알리바이(현장 부재 증명)를 갖고 있는 전남편과 남자친구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풀어 주기를 반복했다.
당국이 헤매는 사이 두 사건을 연결하는 시나리오가 마을에 퍼졌다. 하나는 사이러스를 죽인 필립이 물증을 없애러 예전에 자기가 살던 아파트에 갔다가 도나를 보고 당황해 그녀까지 죽였다는 가설이었다. 필립을 향한 주민들의 확신에 가까운 불신과 이를 밑받침할 여러 사정이 토대가 됐다.
정황은 풍성했다. 우선 필립의 알리바이가 명확하지 않았다. 사이러스 실종 이튿날 탐문을 온 경찰에 필립은 목 주변 상처를 보여주며 전날 아파트 주변 부친 차고에서 괴한한테 공격을 당해 생긴 것이라고 신고했다. 본 사람은 없다. 차고는 소년의 시신이 있던 늪과 가깝다. 진짜 소재를 감추려 둘러댔을 개연성이 있었다.
시신 유기 장소에 필립이 자주 나타났다는 목격담이 존재하기도 했다. 빨간 차를 타고 와 쌍안경으로 늪을 꼼꼼히 살피는 남자를 겨울에 몇 번이나 봤다는 주민 진술이었다. 필립의 형제 중 하나가 그 차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주민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소년의 수금 주머니가 시신이 나온 뒤에도 행방불명인 것 역시 소문의 불쏘시개 노릇을 했다.
또 하나는 음모론이었다. 유력 정치인이 낀 지방 유지 2명이 음주 상태로 차를 몰고 집에 가다 사이러스를 치어 죽였고, 당시 그들과 함께 있었거나 사건의 존재를 알아채 협박을 가하기 시작한 도나도 함께 처치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사이러스 사망을 살인 사건 대신 사고사로 서둘러 종결하려 한 검찰 시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안간힘을 쓰는 편은 거꾸로 주민이었다. 십시일반 돈을 걷어 주 경찰 형사 출신 사립 탐정 오티스 라브리를 고용했다. 그는 소년 시신의 추가 부검을 이끌어냈고, 사이러스 역시 도나처럼 두개골 골절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두 사건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필립을 더 강하게 옭아맬 강력한 근거가 확보된 셈이었다. 그러나 이 성과마저 당국은 묵살했다.
델릴라와 삼손
당국이 애먼 이들에게 도나 사건을 추궁하던 무렵, 필립은 연인 캐런 스프레이그와 결혼해 코네티컷주 월링포드로 이주했다. 고향을 떠난 뒤에도 그는 포트페어필드 리뷰의 충성 독자였다. 톰의 전임 편집장이자 부친인 킹던 하비는 미제 살인 사건이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물음표 모양 테두리를 쳐 희생자 이름과 출생·사망일을 1면에 계속 실었다. 그 덕에 주민들은 살인범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얄궂은 것은 억울한 죽음을 망각의 늪에서 구하려는 편집장의 노고가 핵심 용의자 필립에게 쾌감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나중에 캐런이 언론에 한 얘기에 따르면, 자신이 살인자라는 세간의 추측을 필립은 즐겼다. 그는 살인을 시인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런 식으로 ‘살인의 추억’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선입견대로 필립은 ‘폭력 남편’이었다. 그러나 여고생 때 만난 도나 살해 용의자 시절의 필립은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는 관심을 갈구했다. 신이 유독 필립에게 가혹하다고 여겨졌다. 어릴 때 엄마를 잃었고, 출옥한 그에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캐런은 자기가 곁에 있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국 진저리를 내게 됐다. 함께 산 지 6년 만에 캐런은 용기를 냈다. 아이 셋을 데리고 포트페어필드로 돌아가 농부 짐 에버렛과 재혼했다. 필립과 판이한 사람이었다. 말을 빙빙 돌리는 법이 없었다. 첫 결혼 직전 필립이 죽였을지 모를 사이러스와 성(姓)이 같다는 점은 공교로웠다. 짐은 캐런과 필립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전부 자식으로 거뒀고, 에버렛으로 성을 고쳤다.
필립은 다시 감옥에 갔다. 월링포드에서도 10세 소년을 폭행했다. 10년이 넘는 징역형이 선고됐다. 1980년대 후반이나 돼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문제는 장녀 조디의 호기심이었다. 1983년 16번째 생일에 옥중 친부로부터 받은 수제 카드가 흥미를 자극했다. 정이 깊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연락도 자제하겠다는 게 필립의 약속이었지만 믿기 힘들었다.
역시 필립에게 정직은 반칙이었다. 집착이 시작됐다. 성을 도로 애덤스로 바꾸고 자기가 석방됐을 때 곁에 머물겠다는 서약을 하지 않으면 범행을 실토하고 사형되거나 자살하겠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20년 전 살인 사건들이 언급된 것은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였다. 연하장을 만들고 손 글씨를 연습하며 “예술로 몸속 야수를 다스리고 있다”고 조디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딸에게만 자백한 건 아니었다. 형 웨인에게 돈을 찾으러 옛집에 갔다가 자다 깬 도나를 죽였다고 털어놓았다. 아마 신문사에 편지를 보낸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제 얘기를 경찰에 알린 딸을 그는 “내 작은 딜라일라”라고 불렀다. 이스라엘 장사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의 힘을 빼앗은 연인 델릴라를 뜻하는 호칭이었다. 도나 살해 혐의가 인정돼 무기수가 된 지 9개월 만인 1985년 10월 필립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3세였다. 그가 오랜 침묵을 포기한 건 잊히는 게 두려워서였으리라는 게 많은 이들의 추측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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